전문학교 시대 (1925~1945)
이화의 대학과가 목표한 것은 선진국들이 실시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대학교육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이화학당 대학과를 각 교파가 공동후원하는 기독교연합여자대학으로 성장시키려는 논의도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인의 대학교육 기회를 제한하려는 일제 식민지교육정책으로 말미암아 이화는 대학의 꿈을 접어두고 전문학교 인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당 내에서는 대학이 전문학교로 격하됨을 슬퍼하기도 했으나, 이화여자전문학교의 정식출범은 전국에서 고등교육을 갈망하던 여학생들의 열렬한 호응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이 시기에 전문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사회의 책임을 지는 삶을 스스로 택하는 특별한 것이었고, 이화여전 출신들은 식민지하의 한국 사회 여성 선각자로서 각 분야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여주었습니다.
전문학교를 설립한
제6대 앨리스 R. 아펜젤러 교장
4개 국어로 진행된 수업
화학수업
정동 채플
신촌캠퍼스 이전 (1935)
신촌캠퍼스 전경
제7대 김활란 교장
취임 (1939)
재단법인
이화학당의 설립 (19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