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대학교 확립기 (1946~1961)
1945년 8월 15일 조국 광복과 함께 이화는 박탈당했던 교명을 찾고 식민지하에서 접어두었던 종합대학교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교부 제1호로 종합대학교 인가를 받은 이화는 이 땅의 여성교육을 대학교와 대학원 수준까지 고양시키고 여성고등교육 인구를 증가시켜 여성의 사회적 지위향상에 선도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사회 현실은 미군정, 남북분단, 한국전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격동의 시기로 이어져 이화는
시련을 함께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화는 성장과 발전을 계속하여 광복 직후 9개 학과에 학생수 9백 명이었던 규모가 1961년 9월 김활란 총장이 퇴임할 즈음에는 1개 대학원, 7개 대학, 31개 학과에 8천명 학생으로 증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학으로서 필요한 건물, 기구, 연구소 등을 창설하고, 대학 전반에 대한 자체 조사분석을 통하여 질과 양의 측면에서 '대이화'로 약진할 초석을 든든히 하였습니다.
종합대학교 제1호
인가서 (1946)
해방후 학생들 모습
부산 전시교사
부산 전시교사
졸업식
대학원 제1회
졸업식 (1954)
수업광경
창립 70주년
기념행사 (1956)
대강당 건축 (1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