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시대 (1910~1925)
1910년, 한일합병조약 조인으로 기울어 가던 국운은 막을 내립니다.
이 망국의 한을 박차듯이 이화학당에는 대학과가 설치되었습니다.
사회 일반은 물론, 동료 선교사들조차 한국에서 여성고등교육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했지만, 프라이 당장은 대학과와 유치원 사범과를 설립해야 한다는 신념에 불타있었습니다.
당시 사회의 조혼풍습으로 지적·신체적으로 성숙되기 전의 어린 여성들이 가정에 갇혀야 했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룰루 E. 프라이 당장은 한국여성에게 보다 광범위한 교육의 기회를 주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일이 바로 질 높은 교육을 받은 한국 여성 지도자 배출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예상과 기대는 적중했습니다. 이화 학생들의 향학열과 소명감으로 1914년부터 1925년까지 배출된 대학과, 대학예과, 유치원 사범과를 졸업한 이화의 졸업생들이 이땅의 근대화 과정의 제1세대 여성지도자군을 이루어 뚜렷한 업적을 남겨놓은 것입니다.
대학과를 설립한
제4대 룰루 E. 프라이 당장
대학과시대 학생
단체사진 (1910)
대학과 야외수업광경
대학과 제1회 졸업생
(신마실라, 이화숙, 김애식 1914)
한국 최초의 유치원
사범과 설치 (1915)
대학과시대
선생님과 학생들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선 7인전도대
대학과 전용건물
프라이홀 (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