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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DNA

[정관계]   해병대 첫 여군 장교, 한경아 동문을 만나다

“이화 is everywhere”라는 말,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언제 어디에서든 자랑스러운 이화인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이화인들이 모든 곳에 있다는 말로 어딘가에서 이화인을 만난다면 반가워하며 재학생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하는 말입니다. 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는데요. 해병대 '최초'의 여군 영관장교 한경아 동문(사회생활학·01년졸)을 만나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한경아 동문님!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01년도에 해병대 장교로 임관하여 현재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신병교육대대장으로 근무 중인 한경아 중령입니다. 그리고 이화여대 사범대학 사회생활학과 역사교육을 전공했던 96학번 이화인이었고요.


Q. 사범대학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분야인 ‘군인’이라는 꿈을 갖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학창시절부터 역사 과목을 너무 좋아해서 역사교사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시 수능 성적과 본고사 예상 성적 등을 두고 합격 가능한 대학을 탐색하다가 이화여대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 3학년 말부터, 교사가 아닌 학문으로서 역사를 접근하고 싶은 마음이 샘솟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우리 학교에서 해군/해병대 학사장교 설명회를 개최한다고 하길래 무심결에 가게 되었어요. 설명회에서 장교 임관 후 본인이 원할 경우 위탁교육의 기회를 통해서 대학원 공부와 군 복무를 병행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로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호기심도 발동했고요.


Q. 군인이라는 꿈을 결심하셨을 때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일단 제 성격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결심이 서면 계산 같은 것은 안 하는 타입이거든요. 우선 지원하고 합격한 뒤에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당연히 놀라셨고, 반대도 조금 하셨고요. 과 친구들의 반응은 조금 달랐어요. 제 성격 자체가 외향적이고 활발해서, 대동제 때에 과 축구 대표로도 활동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잘 어울린다며 반색하더라고요.


Q. 많은 군대 중에서도 특별히 ‘해병대’를 선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지원하던 2001년도에는 해군·해병대 여군 장교를 처음으로 선발하던 해라서 최초라는 타이틀이 주는 의미가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해병대 이미지가 타군과 달리 더 터프한 이미지라는 점이 더 끌렸고요. 그런데, 당시 경쟁률이 아마 17:1 정도로 너무 세서 떨어질까 걱정되어 육군 여군(46기)과 복수지원을 했었어요. 운이 좋게도 두 군데 다 합격했고 최초라는 타이틀에 더 끌려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Q. 현재는 이화에도 ROTC가 있지만, 당시 ROTC 제도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졸업과 동시에 해병대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하셨는데, 재학 중에 어떻게 준비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후배들 보면 학교 인재개발원에서 다양하게 지원해주는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그래요. 듣기로는 장교 입시반이라는 것도 조직해서 지원해준다고 들었어요. 제가 다니던 때에는 그런 지원들이 없어서, 인터넷과 몇 다리 걸쳐 있는 육군 여군 선배를 통해 관련된 정보를 얻었습니다. 당시에는 학교 정문에서 이화광장 오른 편으로 올라가면 우측에 체육대학이 있었고 지하에는 헬스장과 운동장이 있었어요. 그 시설들을 많이 활용해서 체력적인 면을 대비했습니다. 필기시험은 우리 학교 다니는 정도면 준비하기 어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당시 과목은 국어, 국사, 영어였는데, 1~2달 정도 준비했습니다.

Q. 해병대 최초 여군 소령, 중령 등 다양한 ‘최초’ 타이틀을 얻으셨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처음 입대할 때는 ‘최초’라는 타이틀에 우쭐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이런 감정이 산산이 부서지더라고요. 처음 대대에서 업무를 배우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자존심과 자만심은 정말 하잘것없음을 깨닫게 되면서 진짜 군인이 되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후배 여군 장교들에게는 여군 장교가 아닌 그냥 해병대 장교가 되어, 자신의 분야에서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해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최초라는 타이틀을 부담감보다는 책임감으로 여기며 항상 자중하려고 하고, 후배 장교들에게 여군 중령, 여군 대대장이 아닌 그냥 해병대 중령, 대대장으로서 좋은 롤모델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Q. 한경아 동문님의 대학 시절 모습도 궁금한데요, 이화 재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선 학비를 벌기 위해 과외 및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한가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틈틈이 학교 중앙도서관 950번대(역사학 코너)를 얼쩡거리면서 책을 많이 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2학년 대동제 때 과 대항 대학축구대회에 나간다고 연습했던 것도 생각이 많이 나네요. 아쉬웠던 점은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한다고 동아리 활동을 제대로 못 했던 것이 조금 후회가 돼요.


Q. 학부 시절 세웠던 인생의 목표나 가치관과 지금 인생의 목표가 같으신 지, 그리고 그 목표나 가치관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부시절에는 집안 형편이 안 좋아서 하루 교통비를 걱정하던 시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때 '현재의 상황을 비관해야 달라질 것은 없다'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면서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현실을 비관하고, 슬퍼한다고 상황이 바뀌지는 않으니까요. 대신 내가 애를 쓰면, 현실이 나아지지는 않아도 그 노력은 남아 있거든요. 누가 평가해주지 않아도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으니까, 후회는 없다.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중에 후회되지 않도록 살자.’ 이렇게요.


Q. 인터뷰를 보고 있을 이화 재학생들처럼 대학시절로 돌아간다면 가장 하고 싶으신 일은 무엇인가요?
동아리 활동이오. 학비와 생활비를 번다고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동아리 활동을 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특히 영화동아리! 지금도 '누에'라는 동아리가 있나요? 그때 동아리 면접까지 보고, 가입을 못 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영화는 아주 광적으로 좋아한답니다.


Q. 대학교는 ‘배움 ’을 통해 학생들을 성장시키는 곳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화여대의 배움을 통해서 어떤 성장을 이루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대학시절의 어떠한 배움이나 경험이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학교 다닐 때,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었어요. ‘일반 회사에 입사했을 때 남녀공학을 졸업한 여성과, 여대를 졸업한 여성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사무실에서 책상을 옮기거나 험한 일을 하려고 할 때 거침없이 나서서 하는 여성은 여대를 나온 직원이다.’ 학교 다닐 때는 아무리 육체적으로 힘든 거라도 남자들의 힘을 빌리기 힘들잖아요. 그러니까 여대 졸업생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 있다는 것이죠.
즉, 제가 학교 다니면서 체득한 것은 독립성, 자주성인 것 같아요. 힘들어도 기대지 않고 어떻게든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는 힘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화가 갖는 백그라운드는 제가 평생 가져갈 든든한 배경입니다. 졸업을 하면 그 의미를 절감하시게 될 거예요.


Q. 현재 이화에는 ROTC가 있어 군인을 꿈꾸는 이화인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군인이란 직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신가요?
군인이라는 것을 돈을 벌기 위한 생활의 방편으로서의 직업으로 접근하면 오래 버티기 힘들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군인은 소명의식과 희생정신이 그 어떤 직종보다도 요구되는 분야입니다.

 
Q. 현재 신병교육대대장이라는 직책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신데, 신병 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제가 취임 이후에 우리 대대에 있는 교육대장들과 훈련교관들에게 일성으로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강한 훈련, 따뜻한 훈육'입니다. 내 동생/자식을 보살피듯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엇이/어디가 문제인지 살피고, 신병훈련을 이수하는데 제한사항이 없는 최상의 상태로 훈육하여 강한 해병대 훈련에 1명의 열외도 없이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최상의 정신 및 건강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는 해병대 신병훈련을 이수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Q. 해병대 장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실 때가 언제인가요?
연합 및 합동 훈련 시 타군이나 미군들이 역시 해병대 장교답다고 하거나, 해병대는 다르다고 치켜세워줄 때 보람을 느낍니다.


Q. 앞으로 어떤 해병대 장교가 되고 싶으신가요? 다른 꿈이나 목표가 있으신가요?
처음 임관 직후에는 영화 <We were Soldiers>에 나온 할 무어 중령과 같은 군인이 되고 싶었어요. <First in, Last out>처럼 솔선수범하고 희생하는 영웅과 같은 군인의 모습. 그러나, 이제는 영웅적인 모습보다는 <Band of Brothers>의 윈터스 중위처럼 본인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며, 부하들로부터 소리 없는 존경을 받는 정직한 장교로 남기를 바랍니다.
글쎄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해외 무관을 지원해서 군사외교 분야의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경아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우리 해병대에서도 해병대 DNA를 강조하고 있는데 'DNA'라는 것이 세포 속에 각인되어 대대손손 전달되는 고유한 특질을 의미하잖아요. 저는 이화 DNA는 "독립된 여성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한경아 동문만의 멋진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요, 학부시절의 아르바이트부터 군인이 되기 위한 스스로의 노력까지 열정을 쏟아왔기 때문에 ‘최초’라는 멋진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독립된 여성성이 이화인들이 품고 있는 DNA라고 말씀해주신 것처럼 여러분들도 동문님처럼 멋진 여성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한경아 동문님과 함께 저희 이투리도 여러분들을 응원하겠습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0기 최가인(융합콘텐츠 17학번), 11기 배정현(국어국문학 18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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