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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대한민국 여성감독의 대표주자, 변영주동문(법학·88년 졸)을 만나다

변영주


혹시 여러분 중에 영화 ‘화차’를 보신 분이 계신가요? 이번에 이화투데이는 영화 ‘화차’의 감독으로도 유명하지만, 영화 활동 외에도 다양한 사회문제와 관련해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시는 변영주(법학·88년 졸)동문을 만나 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화를 만드는 변영주라고 합니다. 이화여대 법학과 85학번이고, 4년 만에 정확하게 졸업을 했습니다.(웃음)

 

Q. 대학시절 법학과를 전공하셨는데, 법과 관련된 진로가 아닌,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어려서부터 영화를 굉장히 좋아했고 고등학교 시절 연극을 했지만, 감히 부모님에게 영화를 전공하고 싶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대신 당시 저에게 대학진학에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재수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어떤 과를 가고 싶은지 물어보셨을 때, 저는 재수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과라고 대답을 했어요. 그래서 법학과를 선택했는데 저에게는 정말 재미없다는 것을 2학년 즈음에 깨달았죠. 그리고 성적이 굉장히 안 좋았기 때문에 제가 법조계에서 활동할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졸업만 하면 부모님께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다 해드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던 중, 4학년 때 ‘여성학 연구’라는 수업에서 친구들과 레포트 대신 단편영화를 만들었어요. 이 계기로 영화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Q. 선배님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화의 재학시절, 선배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제가 재학생이던 1980년대의 학교 분위기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학교 안에 전투경찰이 상주해 있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사복경찰들이 우르르 들어와 밥 먹던 한 명을 연행해 갔던 거에요. 그런데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지나가던 교수님들도 말리지 않았던 것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이 사람이 어떤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는가에 상관없이 학교 안에 아무렇지 않게 경찰들이 들어와서 누군가를 연행해도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이 것이 제가 학생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고, 민주주의나 정치경제를 공부하는 동아리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에 별로 투자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가 하면, 위에서 언급한 단편영화를 촬영하면서 공부하는 장면을 찍으러 도서관에 갔는데, 도서관 경비선생님이 학교에서는 몇 번 봤는데 도서관에선 처음 본다는 말씀을 하실 정도였습니다.(웃음) 저는 성실하거나 자랑할만한 학생은 아니었고, 항상 좌충우돌했었죠. 

 

Q. 이화여대에서의 대학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화나 경험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번은 학교를 더 이상 못 다닐 뻔한 적이 있었어요. 그 당시 제 담당교수님이셨던 신일영 교수님이 학교를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작년 여성 영화감독님들의 활약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영화계에서 활동하시면서 여성 영화감독으로서 겪었던 고충이 있으셨나요?

일단 기본적으로 영화계가 다른 분야보다 환경에 있어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방송과 비교를 해도 영화 쪽이 여성이 일하기에 조금 더 안전하고 평등한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 전체를 봤을 때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은 저희들의 선배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렇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여성감독의 수가 부족하고 현장에서 여성의 성평등적에 대한 인식도 많이 부족하지만, 성폭력 예방교육이나 성평등 교육을 촬영 전에 하도록 규정되어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것이 제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여성감독의 수가 적은 것 같지만 범위를 독립영화까지 넓혀서 본다면 적지 않아요. 예들 들어 작년에 영화제에서 단편영화로 상을 받았던 감독의 수를 따져보면 여성이 훨씬 많을 거에요. 그 친구들이 앞으로 상업영화에 안착을 해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 갈 것이냐가 또 다른 고민이겠지만. 저의 경우에는 영화를 충무로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독립영화를 굉장히 오랫동안 하면서 알려진 사람이 된 다음에 상업영화로 넘어온 경우라서 충무로에서는 스텝 생활을 안 했어요. 그래서 불평등했던 환경을 다른 감독들 보다는 적게 겪었다고 할 수 있죠. 앞으로는 선배들이 만들어놓은 여러 장치들, 국제여성영화제, 여성영화인모임 등을 통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Q. 올해를 포함하여 여러 해 동안 ‘서울 국제 여성영화제’의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함께 하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질문을 좀 더 확대 해본다면, 저는 여성영화제도 그렇고 사회적인 이슈에도 앞장서는 편이고 특히 해고된 노동자들을 위한 일에는 열심히 참여하려고 합니다. 여기에는 제 직업적인 고민도 있어요. 어떻게 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볼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금요일 밤에 내일은 출근할 걱정을 하지 않고 가족들과 영화 한 편 정도 볼 수 있는 여유가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더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가 되어야 하죠. 결국 이렇게 되면 영화를 만드는 저에게 이익이 되는 것 아닌가요?(웃음) 저에게는 돈이 많은 재벌도 팔천 원을 내는 한 명의 관객일 뿐입니다. 또 가난한 사람도 저한테는 팔천 원을 내는 소중한 관객이에요. 그래서 저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팔천 원을 낼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부당하고 불공정한 곳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중년으로서의 의무감, 시민으로서의 의무감도 있어요. 여성영화제의 일을 돕는 것도 젊은 여성들이 영화 쪽으로 진출을 하거나,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할 때 적어도 우리보다는 조금 더 안정되고 평등하고, 공정한 곳에서 출발을 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Q. "영화는 사회를 완전히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역할"이라고 말씀하신 기사내용을 보았습니다. 선배님에게 ‘영화’란 무엇인가요?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웃음) 옛날에는 영화가 세상을 변화시키거나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제게 영화란, 세상을 좀 더 바르게, 좋게 만들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지치고 힘들 때 위로를 얻는 '두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위로를 드리기 위해서 애쓰고 싶습니다. 

 

Q. 영화를 작업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절실함’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장점이 있다면  스스로를 잘 안 믿는다는 것입니다.  '너무 힘들다’라는 생각이 들 때, 그 말을 안 믿어요. ‘그럴 일 없어, 거짓말 하는거야’라고 생각을 하거나 ‘내 능력에서 이 정도면 다 한 것 같은데’라는 등의 자기합리화를 믿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저를 굉장히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한 인간으로 의심합니다. 그래서 ‘이제 됐다’라고 생각했을 때 ‘되지 않았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하는데, 이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나를 완전히 연소시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이 정도면 됐다고 만족하면 자신을 덜 불태우게 되죠. 완전히 자기를 태우기 위해서 제일 필요한 것은 나를 의심하는 것,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스트레스를 푼다’는 말을 믿지 않아요. 스트레스가 풀리나요?(웃음) 저는 스트레스는 풀리는게 아니라 잠시 잊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트레스나 압박감을 단순히 풀려는 것이 아니라, 그에 맞서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변영주


사실 저는 제 20대가 잘 기억나지 않아요.(웃음) 잘 기억나지 않는 이유는 20대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지금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로 20대나 3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지금 50살인 변영주의 삶이 그렇게 대단한 삶도 아니고, 엄청나게 성공한 삶도 아니지만 이 정도 삶의 변영주를 만들기 위해 저는 20, 30, 40대에 열심히 살았고, 투쟁해왔고 가질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법을 배웠고, 해내야 하는 것을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것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을 잃을 정도로 젊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4년 동안의 대학생활이 잘 기억나지 않고 지금의 여러분들보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저 그 때는 사회의 모순적인 것, 비민주적인 것, 억압적인 것이 눈에 금방 띄었던 시기였던 거죠. 1987년 5월 이화광장에 오천 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의 학생들이 모였지만 작년 여러분들이 했던 행동보다 멋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언제나 그 시기에 그 때 그 곳에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는 이화인이 이화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들인 것이지, 과거가 더 중요하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변영주
사진 출처 : 뉴스컬처

Q. 영화 '화차'의 감독님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편의 다큐멘터리, 독립영화를 연출하셨습니다. 영화를 연출하실 때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사이에서 고민은 없으셨나요?
지금 그 고민을 하기에는 독립영화를 너무 오래했다고 생각합니다.(웃음) 이미 하고 싶은 것은 다 해봤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민은 없습니다.
 
Q.  앞으로의 작품 계획이 궁금합니다.
저의 다음 작품은 ‘조명가게’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조명가게는 강풀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지만 많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화차’도 원작과 많이 달랐는데, 이번 작품은 원작과 더 많이 달라요. 올해 12월에서 내년 1~2월에 촬영이 들어갈 예정이고, 내년 가을이나 겨울쯤에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조명가게’ 시나리오는 2014년 3월에 완성했는데, 그 때 시나리오화 했던 내용이 4월의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건과 내용이 흡사했어요. 시나리오를 써 놓고 수정을 하던 중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개인적으로 심하게 충격을 받았고, 그대로 덮어놓고 2년 동안 딴 짓을 했습니다. 못 열어보겠더라구요. 그러다가 2016년에 다시 시나리오를 다시 열어보았는데, 시나리오에서 어떤 공간을 설명한 지문 중에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고 써놓은 것을 발견했어요. 그 때 ‘이건 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죽은 사람 혹은 사라진 사람을 어떻게 잊지 말아야하는가에 대한 원래의 내용은 그대로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고, 이제 겨우 시나리오를 수정을 했습니다.
 
Q. 20대에 꼭 봤으면 하는 영화 추천 부탁 드립니다. 
꼭 봤으면 하는 영화는 없습니다.(웃음) 대신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첫 번째로는 발품을 팔아서 보는 영화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아무 때나 가면 상영을 하고 있는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보다는 서울아트시네마, 인디스페이스, 아트나인과 같은 작은 독립예술 전용 영화관을 많이 찾아가보세요. 젊을 때에 경험하는 양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제 삶을 돌아보면 가장 책이나 영화를 다양하게 접하지 못하게 되는 시기는 점점 나이가 들면서부터였습니다. 저를 가장 확장 시킬 수 있었던 때는 20대 시절이었습니다.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의 20대들이 먹는 종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읽는 책의 종류가 적습니다. 가끔 작가를 꿈꾸는 사람을 보면서 ‘왜 글을 쓰고 싶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소설을 안 읽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대본을 쓰거나 시나리오를 쓰고 싶다는 건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이야기들을 안 읽지’라고요. 영화를 만들고 싶거나, 그림을 그리고 싶거나, 작곡을 하고 싶거나 모두 그 배경이 되는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이 미치도록 좋아해서 먹었던 작품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너무 적으면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20대의 가장 큰 장점이 뭔가요? 무분별한 체력이잖아요.(웃음) 익숙하지 않은 것에 버틸 수 있는 거죠. 그 것에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권해드리고 싶은 영화보다는 예술문화를 향유하는 취향을 넓히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젊었을 때 자신의 취향이 넓어야 점점 좁아지면서도 계속 즐길 수 있는 것이 다양해지거든요. 전 인류의 문화유산을 즐기는 시민이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무엇을 하든지 ‘발품을 많이 팔아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진로의 문제로, 또는 여러 가지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저의 20대와 여러분의 20대의 큰 차이점은 학교가 주는 안정성이 사라졌다는 것이에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조건을 가지고 있는데, 사회는 더 좋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의 어른들이 만들어온 경제사회구조가 이제는 바뀌어야 해요. 사실 여러분들은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위협하고, 때문에 개인의 노동력이 독특해져야만 하는 것을 고민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힘든 위치에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어른세대가 할 일은, 여러분들이 꿈을 꾸다 좌절했을 때에도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안정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업으로 선택했을 때 망했다고 생각을 했어요. 저에겐 사법시험을 보고 취직을 해서 남들이 보기에도 안정적인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연봉 400만원에 내 인생에서 한번도 해보지 않은 영화일을 할 것인지두 가지 선택권이 있었죠. 결국 저는 영화를 선택했는데, 결정을 하는데 있어 중요했던 것은 10년이 지나서 35살에도 이 모습이더라도 나는 불행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민은 저에게 정말 두려운 고민이었고, 가난해지기로 결심을 하는 고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모두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에요.(웃음) 
하지만 그 고민을 끝낸 이후로는 단 한 순간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어요. 잘 되지 않아도 그것은 이미 결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미안한 것이, 저는 동창들의 결혼식에 가 본 적이 없어요. 축의금을 낼 돈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것에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 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질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이 하는 것은 무조건 나도 해야만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하고 싶은 일 중에 나를 가장 즐겁고 미치게 만드는 것을 고르세요. 그 외의 것들은 갖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스스로 결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일 갖고 싶고 해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취직에 대한 걱정만을 하게되니 재미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에요. 제 말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께 제안해보는 거에요. 이처럼 가질 수 없는 것으로부터 마음정리를 하는 순간 불행과 맞서는 튼튼한 심장을 갖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성공이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의 심장을 튼튼하게 할 것인가가 행복을 좌우하는 것이라는 뻔한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가질 수 없는 것, 포기한 것에 대해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정서희(커뮤니케이션 미디어 15), 백승윤(중어중문학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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