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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포스코 홀딩스 상무 한영아 동문(비서학·94년 졸)

  • 등록일2024.03.14
  • 1246

오늘 이화DNA의 주인공은 포스코 홀딩스 한영아 동문님(비서학·94년 졸)입니다. 한영아 동문님은 삼성증권, 메릴린치 등 국내외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활약하고, SPC그룹 경영전략총괄을 거쳐 작년 5월 포스코 홀딩스 IR팀 상무로 부임하여 기업가치 제고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함께 만나 보시죠!

포스코 홀딩스 상무 한영아 동문(비서학·94년 졸)

Q. 안녕하세요, 동문님. 자기소개와 함께 현재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포스코홀딩스 IR 팀장 한영아입니다.

IR(Investor Relation)의 주요 업무 중 첫 번째는 주주와 투자자를 대상으로 회사의 전략과 재무 정책을 알리는 일, 두 번째는 주주총회처럼 주주들이 의결권을 행사하는 모든 절차와 사업보고서, 공시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일, 세 번째는 배당 정책 또는 자사주 매입 소각 같은 주주 친화 정책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일입니다. 포스코 그룹에는 포스코 홀딩스, 포스코 케미칼, 포스코 인터내셔널, 포스코 엠텍, 포스코 스틸리온, 포스코 ICT까지 6개의 상장사가 있는데 포스코 홀딩스는 포스코 그룹의 지주회사라서 저는 6개 회사의 IR 정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Q. '애널리스트'로서의 커리어를 기반으로 현재 IR팀을 이끌고 계신데요. '애널리스트'라는 분야에 대해 소개 부탁 드립니다.

애널리스트 는 국내외 금융시장과 산업, 기업에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어떠한 자산의 가치를 측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분석 대상인 자산에 따라서 채권의 가치 및 기업의 신용을 분석하는 '크레딧 애널리스트(credit analyst)', 주식에 대해서 분석하는 '에쿼티 애널리스트(equity analyst)', 환율, 원자재, Quant 등 다양한 분야가 있어요. 같은 에쿼티 애널리스트도 반도체, 소비재 등 산업별로 있어 각자의 분야가 따로 있습니다. 저는 투자은행에서 소비재 산업을 담당하던 에쿼티 애널리스트였는데요. 주로 해당 산업의 기본 다이내믹을 이해하고, 경제 상황과 산업의 트렌드, 경영진의 전략 등이 어떻게 그 기업에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서 미래의 이익과 성장성, 그리고 내재된 위험을 분석해서 그 기반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일을 했습니다. 의견이 정리가 되면 투자의견이 포함된 자료를 작성하고, 국내외 자산운용사의 portfolio manager과 소통하게 됩니다. 

에쿼티 애널리스트는 또 '셀 사이드 애널리스트(Sell Side Analyst)'와 '바이 사이드 애널리스트(Buy Side Analyst)'로 나눌 수 있는데요. '바이 사이드 애널리스트'는 자산운용사 안에서 주식을 분석해서 내부 투자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고요,  '셀 사이드 애널리스트'는 투자은행에서 일을 하면서 외부 고객, 즉 자산운용사의 펀드 매니저를 대상으로 투자 의견을 이야기합니다.


Q. '애널리스트'라는 커리어를 선택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학부 졸업 후, 삼성그룹의 공채로 입사했습니다. 대학교 졸업할 때에는 ‘어느 회사에 들어가야 하나’라는 것이 유일한 질문이었는데, 몇 년 회사 생활을 하면서 커리어 패쓰(career path)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삼성증권에서 리서치센타를 강화하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 리서치 어시스턴트로 직무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다소 늦게 시작하여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격에 잘 맞아서 그 이후 꾸준히 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잘 할 수 있었던 것도 직무 전환과 확장에 도움이 되었고 호기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고, 어떤 일의 본질을 끝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오래 할 수 있었던 동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Q. '베스트 애널리스트'에도 다수 선정되시며 커리어를 이어오셨는데요. 지금의 자리에 이르시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합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에 들어가 처음 몇 년은 보조 업무를, 애널리스트가 되고나서 처음에는 스몰캡팀에서(시가총액이 작은 종목들을 담당하는 팀) 종금사, 리스사, 중소형 건설사 등의 산업을 담당했어요. 아무도 관심이 없는 업종이었지만 아주 열심히 했고, 지나고 보니 그 때 사양 산업, 리스크가 많은 산업을 경험했던 것이 나중에 큰 도움이 되었답니다. 이후에 코스닥(KOSDAQ)팀에 들어가서 전자상거래 및 미디어산업 분석 담당 애널리스트를 했었어요. Tech bubble이라고 불리는 시기를 경험하면서 성장성 있는 주식의 평가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버블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떨 때 꺼지는지 등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라지캡팀(대형주)으로 승진하면서 소비재 산업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매경, 한경, 조선일보 등에서 'Best Analyst'로서 상을 받고 인정을 받게 되면서, 소비재 미디어팀 팀장으로 승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미국계 투자은행 메릴린치(Bank of America Merrill Lynch)에서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만류했었어요. 국내 증권사에서 오래 일해서 고객층이 이미 쌓여 있는데, 왜 새롭게 외국계로 가서 새 고객을 만나려고 하는지, 관계와 이름을 새롭게 알릴 수 있을지 걱정을 많이 해 주시더라구요. 더구나 저는 교포가 아니라 영어가 아주 완벽하지 않았는데 모든 자료와 소통을 영어로 해야 하니까, 사실 걱정이 좀 되기는 했지요. 그런데 그 때 'global top finance platform'을 경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고, 지금의 안락함과 안전에 빠져서 도전해 보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더라구요. 그렇게 옮긴 메릴린치에서 15년간 일하면서 승진을 계속해 마지막에는 Managing Director로서 Asia Pacific Consumer Research Coordinator까지 올랐습니다. 사실 한국이 제일 큰 시장이 아니라 한국인이 Sector Head를 하기 어려운데 운이 좋았습니다. 다양한 나라의 기업을 분석하면서 또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되었거든요. 이후 우리나라 기업의 글로벌화에 기여하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SPC삼립이라는 회사로 옮겨 3년 반의 기간동안 경영전략총괄(부사장)으로 일했습니다. 제조업을 처음 경험하면서 전략이 전략으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실행’될 수 있는지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포스코가 새로이 지주회사를 설립하면서 기업의 가치를 제고하겠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고, 이때 IR담당 임원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포스코 그룹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세계적 경쟁력을 이미 확보한 철강 사업에서 나오는 잉여현금흐름을 활용하여 미래 친환경 쪽으로 분야를 넓혀 전기차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양극재, 음극재, 리튬, 니켈 등)와 에너지(LNG, 수소 등) 지속 가능한 미래로 가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소재 사업으로 전략적 다변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동적인 변화기에 포스코에서 일하게 되어 즐겁습니다.

포스코 홀딩스 상무 한영아 동문(비서학·94년 졸)

Q. 한국계 회사와 외국계 회사에 모두 근무하시며 느끼신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국내 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이나 하는 일 자체는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금융기관에서 글로벌 플랫폼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이는 시장과 프랜차이즈(franchise) 규모 차이이지 개인의 능력 차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문화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금융업계에서 외국계 기업은 완전히 실적 중심(performance driven)입니다. 실적이 나면 근무시간 중이라도 커피를 마시든 운동을 하든 상관없지만, ‘어쨌든 넌 잘해야 돼. 못하면 아웃이야.’라는 게 명확해요. 실적이 좋다면 나이와 상관없이 승진이 되고, 이런 부분에 대해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워낙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사람들이 근무하기 때문에 학벌 같은 부분도 일단 채용 이후에는 그다지 중요한 사항이 아닙니다. 실적이 좋아도 허용이 되지 않는 유일한 기준은 윤리(ethics)에 대한 것인데, 금융시장 내에서 중요한 규칙을 어기는 경우는 예외없이 즉각 해고가 됩니다. 반면 한국기업은 조금 더 팀워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Q. 애널리스트로 일하시며 어떤 순간에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저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궁극적으로는 보다 성장성이 높고 효율이 높은 산업과 기업으로 세상의 자본이 이동하게 하는 기여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본질적인 보람이 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 주가가 왔다 갔다 하는 변동성을 마주하게 되면, 어려움도 느끼고 일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시장은 효율적이어서 매일 매일 주가는 이해하기 어려워도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산업과 기업의 미래를 상당히 명확히 반영해 준다는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주 큰 산업의 흐름을 이해하고 예측해 내면 기분이 참 좋고 자부심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기업형 유통이 들어왔을 때, 혹은 우리나라 화장품 회사들이 처음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을 때, 혹은 작게는 어떤 회사가 채널을 새로 개척해 그로 인한 이익이 갑자기 확 좋아질 때, 그 구조적인 사이클을 파악하게 되었을 때 짜릿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재미는 전 세계의 다양하고 열정으로 충만한 투자자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배우는 일입니다. 물론 서로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어려운 대화일 수 있지만 그 긴장감이 일에 대한 열정을 자극하더라고요.


Q. 애널리스트로서 지녀야 할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단 '집요함'. 딥 다이브(Deep dive) 해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걸 찾을 수 있어야 해요. 두 번째는 산업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 세 번째는 그것을 전달하는 소통 능력. 마지막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윤리성(Ethics)이에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은 내가 하는 말이 남한테 영향을 주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일할 때 자신이 유명해지기 위해서, 아니면 자신이 먼저 그 주식을 사고 얘기를 하는 등의 비윤리적인 행위는 절대로 하면 안 돼요. 내 이야기가 투자가들에게 옳은 의사 결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게 가장 중요한 거예요. 'Last'이지만 'not the least'죠!


Q. 애널리스트 진로를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재밌는 직업이다.’  스트레스도 있지만, 분명 전문성 있는 직업이기에 도전해 볼 만한 직군입니다. 사전에 회계나 재무, 영어 등을 준비해놓으시면 도움이 되겠죠. 애널리스트는 자리가 많지 않고 진입장벽(entry barrier)이 높은 편입니다. 준비가 안 되면 진입(entry)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이를 위해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막상 진입해도 스트레스도 많고 워킹 아워(working hour)도 길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재미있는 직업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성향에 맞으면 즐길 수 있는 직업이니 도전해 보면 좋겠습니다.

포스코 홀딩스 상무 한영아 동문(비서학·94년 졸)

Q. 학창 시절, 동문님께서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남들이 보면 학교 수업에 꼬박꼬박 들어가는 모범생이었을지 모르겠는데, 사실은 늘 노는 학생이었어요. 탈춤, 합창을 하는 연합동아리, 등산, 학회, 독서토론회, 심지어 성당 성가대까지… 동아리 활동을 아주 많이 해서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학생. 그렇다고 속칭 ‘인싸’같이 재미있고 춤, 노래 잘하는 이런 신나는 사람을 아니어서 늘 존재감도 없는데 끝까지 집에 안 가고 모임이 파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는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생각해 보면 그 때 공부를 별로 하지 않고 그렇게 동아리 활동을 많이 했던 것이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었어요. 공부를 잘한다고 주목받는 것은 고등학교 때 뿐이예요. 사회로 나가면 내가 어떤 조직 내에서는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고, 내가 회사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거죠. 좋은 대학을 나와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시는 분들이 '왜 내가 인정받지 못하지?'라는 부분에서 지나치게 급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데, 대학교 때 다양한 활동과 인간관계를 겪으면서 부러지지 않을 정도의 감정의 굴곡을 겪는 것이 나중에는 도움이 되실 겁니다.


Q. 이화에서의 4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인가요?

친한 과친구들하고 ‘해사랑’이라는 애칭을 만들어서 여행을 다녔어요. 차도 없이 주섬주섬 땅끝마을도 가고, 지리산 종주도 하고, 같이 여행도 하고, 사회과학 책으로 가열차게 독서 토론도 하곤 했습니다. 밤늦게 도서관에 앉아서 믹스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곤 했고, 4.19기념 마라톤 대회 혹은 축제 기간에는 이화여대 주변도로를 돌면서 춤을 추고, 대강당 앞에 철퍼덕 앉아서 막걸리를 마셨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귀한 시간이고 귀한 친구들이었어요. 아직도 봄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법정관에서 내려오는 길의 그 밤 공기와 불빛이 떠오릅니다. 

너무 노는 이야기만 한 것 같아서, 첨언하면 대학 생활 동안 꾸준하게 이화어학당(현. 언어교육원)을 다녔어요. 이화어학당은 그 당시 일반 학원들과 달리, 스피킹 뿐만 아니라 쓰기(writing) 코스가 있어서 도움이 되었거든요. 영어를 어중간하게 잘하는 건 회사에서 소용이 없어요. 그게 언어든, 기술이든, 지식이든 간에 여러가지를 어중간하게 하지 마시고, 하나는 실제 활용 가능한 수준까지 올려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려면 어떤 일도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해요. 


Q. 동문님께서 생각하시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독립성! 지나고 보니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 독립성과 자주성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 저는 이화를 다니며 많이 독립적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Q. 기업 임원으로서,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사회 초년생 혹은 진로를 준비하는 이화인들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옛날 초등학교 때 우리 반에 급훈이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자'였어요. 이상하게도 그 급훈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프로페셔널한 마인드라고 생각해요. 프로페셔널하다는 것은 전문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가짐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만약 펀드매니저라면 고객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시간을 써야 합니다. 그저 저 사람에게 잘 보여 실적 순위를 올리려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밤을 새워서라도 새로운 걸 찾아줘야겠다는 그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직장인에게는 내가 받는 돈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장은 나를 그저 인정해 주고 예뻐해 주는 곳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기까지는 몰입과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려운 시간이겠지만 이를 버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남이 잘 되는 걸 기뻐하세요. 주위 사람들이 잘 된다는 건,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내 네트워크가 커진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옆에 있는 친구가 먼저 승진하거나 더 좋은 회사에 하면 축하해 주세요. '너랑 나랑 다 같이 잘 되자!' 그게 팀워크입니다. 제가 메릴린치로 이직할 수 있었던 것도 제 옆에 있던 사람이 "한영아 괜찮은데 데려오세요."라고 추천해 성사될 수 있었어요. 그 사람이 더 잘 됐었어야만 가능했던 일이었죠. 반대로, 내가 먼저 잘되면 옆 사람을 도와줄 수 있잖아요. 내 주위 사람들이 잘 되는 걸 지원하고, 그들이 잘 되는 걸 응원할 필요가 있어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잘되면 내가 잘 된다.' 이건 정말 꼭 기억하시길 바라요. 이 세 가지가 되면 직장 생활은 사실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포스코 홀딩스에서 IR 상무로 재직하고 계신 한영아 동문님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시장의 구조적인 변화를 예측하며 산업의 가치 발전을 이루고 계신 동문 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벗들이 한영아 동문님과 같이 이화에서의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성과 전공에 관한 실무적 능력을 키워 꼭 꿈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이화인 여러분들을 이투리가 응원합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4기 남현수, 15기 송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