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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서울 중앙지방법원 판사 연선주 동문(신문방송학과·94년졸)

  • 등록일2023.04.21
  • 3625

이투리는 법전원 진로를 준비하며 '법조인'에 대해 들어보고자 현재 서울 중앙지방법원 판사로 근무하고 계신 연선주 동문(신문방송학과·94년졸)을 만나 뵈었는데요. 연선주 판사님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시고 프로덕션 PD로 일하시다 사법시험을 거쳐 법조인의 길을 걷고 계신 만큼 다양한 경험과 조언을 전해주셨습니다. 연선주 동문님의 인터뷰,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90학번 연선주입니다. 현재 서울 중앙지방법원에서 판사로 근무 중입니다.

 

Q.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시고 현재 법조인의 길을 걷고 계십니다. 

고등학생 때 판사가 되려고 하는 생각이 ‘1도’없었어요. 꿈이 법조인 쪽이 아니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기자나 방송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에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죠. 심지어 법들을 싫어했어요. 

졸업 후 언론고시를 보기 위해 한창 공부 몇 달 하다 보니 1년 씩이나 준비를 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론고시를 포기하고 중소 프로덕션 회사에 들어가 방송 제작일을 했습니다. 꽤 오래, 6년 이상을 그 일을 했는데 98년도에 IMF가 터지고, 회사가 망했어요. (웃음) 당시 회사가 장비를 리스로 이용했는데, 달러 환율이 올라가니까 그 비용이 너무 커져버린 거죠. 몇몇 PD들이 모여서 회사를 차리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죠. 

그렇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으며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마침 그때 사법시험 정원이 많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친오빠한테 들었어요. “너 이거 한번 해보면 어때?”라고 물으면서요. 프로덕션에서 방송 일을 하면서 지방도 많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방송에 나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우리 지역의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 분들을 만나면서 법을 잘 알고, 법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해왔었어요. 또 이전 회사에서 일하면서 무료 법률상담도 받으면서 '법이라는 게 정말 필요하구나' 생각했던 적도 있고. 마침 기회가 왔는데, 법조인이 된다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사법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된 거죠. 


Q. 새로운 직업과 큰 도전 앞에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또 어떻게 이를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시험에 합격할지 아닐지 모르잖아요. 저는 사회생활도 해보고 월급을 받아 그 돈으로 생활을 해본 사람이니까 수입이 없는 경우에 얼마나 무력해지는지 알고 있었고, 그 점이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내가 만약 4~5년 정도 공부했는데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그 다음에는 뭘 해 먹고 살지?'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내가 다른 일에 도전을 해서 그 일을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보다 그 당시에는 내가 지금 시험에 안 되면 어떻게 될까 눈앞에 걱정만 했어요. 그 이후의 생각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새로운 분야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또 내가 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분야라는 것이 좋기도 했습니다. 그 전에는 계속 일만 하며 배웠던 것을 매번 소진하는 느낌이었어요. 일종의 번아웃 상태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 상태에서 내가 안 하던 분야인 법 공부를 하니까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 들고 재밌었어요. 공부할수록 ‘아, 이런 분야도 있구나!’ 생각하며 신기하고도 했고요. 


Q. 100% 확신이 없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시작하겠다!’라고 생각했던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일까요? 

지금 하는 일이 너무 불안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더 안정적이고, 일정한(regular) 일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또 설사 시험을 붙지 않더라도 프로덕션 피디 경력이 있으니 혼자서라도 내가 정말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서 과감히 도전했죠. 

Q. 2008년 판사에 임용되셨는데요. 판사로서 일하시며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정말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라 이럴 때를 대비해 몇 개 정리해 둬야겠어요. (웃음) 여러 가지 사건 중 층간소음 관련 민사 사건이 있었는데요. 일단 민사소송으로 오면 이미 서로 경찰도 부르고, 서로 상호 폭행 사건으로도 해서 벌금도 내고 한 상태였습니다. 아랫집에서는 윗집 소리밖에 안 들릴 만큼 서로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왔는데, 손해배상 청구가 인용되거나 기각된다고 해서 그 일이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양측 모두 이사를 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만큼 계속 위아래 살며 갈등이 생길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조정을 하려고 많이 애를 썼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다가 층간 소음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회면의 뉴스들을 복사해 주면서 "층간 소음으로 훨씬 더 끔찍한 사건들이 많다. 그중 그나마 나은 것만 추렸다. 나는 당신들이 이렇게까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여러 번 설득을 했습니다. 결국 쌍방이 화해하고 소취하해 끝난 적이 있었어요. 사람들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을 하게 한 케이스 같아 기억에 남고, 보람이 있었어요. 이 외에도 자체적인 분쟁 해결 능력이 없어진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게 할 때 보람을 느끼곤 하죠. 


Q. 학교 다니시면서 인상 깊었던 수업이나 기억에 남는 장소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졸업한 지 오래되어서 수업 이름이 기억은 안 나지만 '종교와 인간' 이런 류의 수업을 좋아했어요. 철학과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샤머니즘부터 다양한 종교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고, 인류 역사에 있어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알려줘서 재미있었던 수업이었어요.

아마도 지금은 없어졌을 것 같은데, 박물관 생기기 전에 그 자리가 숲이었거든요. 가을에 굉장히 예뻐서 낙엽 지는 날에 그곳에서 친구들과 뒹굴면서 사진도 찍고 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무래도 교정이 예쁘다 보니 계절 따라 바뀌는 교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죠. 또 법대 뒤쪽 팔복동산에 올라 친구들이랑 고민 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어요. (웃음) 

90년대 이화교에서 본 이화 교정 | 팔복동산 (출처 : 이화여대 홍보실)


Q. 법조인으로서 목표가 있으신가요? 

열심히 재판을 하고 부끄럽지 않은 판사가 되고 싶어요. 나이가 더 들어서는 퇴직한 판사들끼리 몇몇 모여 그저 좋은 일을 하는 재미있는 법률사무소를 열고 싶다는 생각도 있지만, 제가 게을러서 되려나 모르겠어요. (웃음) 


Q. 법조인을 꿈꾸는 이화의 학생들한테 조언 부탁드립니다. 

우선 법조인은 공부해서 남 주는 직업이에요. 나를 위해서 공부를 하고, 내가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법조인이 안 됐으면 좋겠어요. 제 직업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일하는 것이 굉장히 즐거울 수도 있고, 엄청나게 고통일 수도 있는 직업이에요.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되는 직업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케이스를 봐야 되는 직업이고, 상당히 다루기 힘든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사명감이라든가 어떠한 소명의식이 없이 법조인을 하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다른 법조인을 만났다면 더 정의로운 판결을 받을 수 있는데, 불성실하거나 잘못된 법조인을 만나서 문제가 되거나 사건을 망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소명의식 혹은 공부해서 남주고 싶은 생각 같은 것들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있어야 여러 가지 힘든 상황들을 버티며 본인도 만족감 있게 일을 할 수 있죠.

외부에서 보기에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법조인들의 좋은 면만 보게 되는데, 이 직업이 하루 종일 시험 보듯이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에요. 또 끊임없이 생각해야 하고, 자료도 찾아봐야 해서 결코 쉽게 일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닙니다. 하지만 일단 하게 되고, 자신이 거기에 맞으면 그 일을 하면서 충분히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입니다!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아마 이화 DNA라 하면 '독립성'을 많이 얘기할 것 같은데요. 저는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게 하는 힘, 외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고 본연의 나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하는 힘을 통해 본인의 내면 혹은 인간 본성에 대해서 더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화 DNA가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이화여대를 나와서 가장 좋았던 것은 그거였던 것 같아요. 잔디밭에 누워 신문지 깔고 자도 아무도 신경 쓸 사람이 없잖아요. 사실 남녀공학이면 사실 그렇게 못하니까요. 

하지만 '독립적'인 것과 '배타적'인 것은 조금 구별을 해야겠죠. 독립적이라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내 일을 스스로 한다는 것이고, 배타적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남을 배제한다는 의미거든요. 간혹 그런 것들이 구분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이대생이면 욕을 먹는 거죠. 이대 안에도 여러 카테고리의 사람이 있잖아요. 1년 내내 청바지만 입는 친구가 있고 또 내내 예쁘게 꾸미는 친구들도 있고. 남녀공학에도 똑같이 이런저런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유독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만 프레임이 씌워지는 게 안타까웠어요. 그래서 저는 사회생활하면서 "유형화하지 말아라"라고 얘기합니다. 저보고 이대생 같지 않다고 하면 "이대생이 뭔데? 내 주위는 다 이런 이대생 밖에 없다."라고 많이  얘기했습니다. 사회생활을 할 때에 주체적인 인간이자, 독립적으로 관계를 가져나가며, 학교에 대해 잘못된 프레임과 생각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후배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후배들이 독립적이면서도 배타적이지 않은 이화인, 사명감과 소명의식을 가진 법조인이 되기를 바라는 동문님의 진심이 와닿는 인터뷰였습니다. 꼭 법조인이 아니더라도 진로 결정 앞에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누구의 시선에도 굽히지 않고 본인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해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끝에 결정한 꿈이라면 누가 뭐래도 도전해야 하겠지요! 이화투데이가 이화인들의 꿈과 도전을 응원합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3기 심유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