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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CJ ENM 공세현 동문(언론홍보영상학부·06년졸)

  • 등록일2022.11.17
  • 716

이화여자대학교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는 1960년 신문학과로 출발, 신문방송학과와 언론홍보영상학부를 거치며 60여 년의 역사를 통해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해 왔는데요. 오늘 만나본 자랑스러운 이화인은 CJ ENM 커머스부문 라이브 PD로 활동하고 계신 공세현 동문(언론홍보영상학부·06년졸)입니다. 국내 최초로 쇼퍼테인먼트, 미디어 커머스, 콘텐츠 커머스 분야에 도전하며 한국의 홈쇼핑을 K-POP과 같은 글로벌 상품으로 만든 열정과 에너지의 화신 공세현 동문 이야기,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01학번 언론홍보영상학부(현.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공세현입니다. 올해로 만 마흔이 된 직장인 17년 차입니다. 학부 내 #광고홍보 #언론정보 #방송영상을 모두 복수전공하고 부전공으로 #미술사 를 공부했어요. 욕심이 많았죠. 현재 CJ ENM 커머스부문 라이브 PD로 재직 중입니다. 영상과 이미지를 다루는 방송일을 하고 있지만, 저 스스로는 텍스트 베이스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며 대중매체에 대한 칼럼을 썼었고, 지금은 크고 작은 강의와 심사역으로도 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요 몇 년 저를 지배하고 있는 정서는 뭐니뭐니해도 ‘워킹맘’일 것 같아요. 한창 출산과 휴직·복직 등으로 고군분투 구간을 통과 중인 애 셋 워킹맘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둘째, 셋째가 쌍둥이입니다. 일과 가정의 지속성장 가능한 건강한 밸런스가 요사이 저의 가장 큰 테마이고, 다른 많은 선배나 동료 워킹맘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열망이 큽니다. 요즘에는 대한민국 다둥맘·쌍둥맘 종합 포털 커뮤니티 플랫폼을 만들고 싶기도 해요. 


Q. 다양한 언론·방송 분야 진로 중 현재의 길을 선택해 걸어오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재학 중에 이화여대 신방과 30주년을 맞았는데, 당시 30주년 기념 다큐 영상의 제목이 <그대가 걸어온 숲은 길이 되고>였습니다. 무언가 초반에 길을 닦는다는 것은 참 어렵지만 지나오고 나면 보람 있는 것 같아요. 학부 때도 기존 매체인 학보사보다는 당시의 뉴미디어인 인터넷 방송국 2기로 #이화티비 활동을 했어요. 광고와 방송, 글쓰기 모두 두루 관심 있게 공부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정통 방송국에서 커머스와 접목된 콘텐츠에 발 디디게 됐습니다. 이를테면 융복합, 컨버전스 등 공부해 온 것들을 모두 알차게 잘 써먹고 있는 셈이죠.

당시도 지금도 저는 물욕이 많고, 호기심도 많고, 쇼핑을 좋아하거든요. 재미 중에 가장 큰 재미가 소비에서 오는 재미예요. 타임킬링용 오락 콘텐츠도 있고, 사회의식을 선도하는 다큐도 있겠지만, 쇼핑만한 빅재미가 없거든요. 그리고 매스미디어가 수용자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낸다면, 지갑을 열어 결제하게까지 하는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옛날엔 '장사'를 좀 천시하는(?) 그런 경향이 있었는데, 제가 하는 커머스 라이브가 사실 고가의 사치품이나 상위 1% 소수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굉장히 우리 생활 전반에 밀접하게 걸쳐 있거든요. 모두의 일상에 조금이라도 합리적으로 좋은 딜을 만들고, 또 몰랐던 신제품들을 소개하는 재미가 상당했고, 내가 하는 퍼포먼스의 결과치가 실시간으로 바로바로 피드백이 온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었습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중요하다"라는 주철환 지도교수님의 가르침에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평범한 우리 주변 많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하고 그 속에서 변화를 캐치하고 트렌드도 일구어 나가는 것이 바로 '문화'잖아요.


Q. 홈쇼핑 방송 PD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일과라고 하기엔 하루하루, 매일 달라져서 고정된 건 없어요. 그래도 크게 보면 방송 자체는 스튜디오물이라 볼 수 있죠. 외부 촬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하루 24시간 중 약 20시간 정도의 생방송이 매일 연중무휴로 돌아가기 때문에 스케줄이 타이트하게 돌아갑니다. 맡고 있는 상품이 편성되면 이에 대응하는 팀크루처럼 움직여요. 상품을 처음 만나고, 분석하고, 어떻게 보여줄지에 대한 고민과 회의와, 시각화 작업류(무대연출, 미술, VCR 제작, 그래픽, 자막 작성 등)의 방송 준비를 하고 또 방송 끝나고 난 뒤에는 매출 분석과 리뷰 작업도 합니다. 위클리로 고정으로 맡고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또 서너 개의 데일리 방송들, 시즌별 각종 특집들과 아침 방송, 점심 방송, 오후 방송, 저녁 방송, 심야 방송 …. 시간대별로 모두 시청자들의 라이프 패턴에 민감하게 맞닿아 있어 신체리듬도 그에 맞게 가변적으로 관리해야 해요. 


Q. 홈쇼핑 분야 PD로서 어려운 점은 무엇이고, 이런 부분을 극복하기 위한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산업 자체가 복합적인 필드예요. 최근 이런 서비스 프로덕트 사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죠. 방송, 마케팅, 머천다이징은 또 완전히 새로운 영역이고. 또 물류, CS, IT, 법률 등 서로 너무 다른 직군들이 모여 하나의 업을 이루는 종합예술이죠. 그만큼 다양한 베이스를 가진 직무의 사람들과 만나고, 늘 생방송이다 보니 시간에도 쫓기고, 또 다양한 출신의 여러 사람과 얽혀 있다 보니 갈등 상황도 첨예합니다. 다들 예민해요. 이에 따라 스트레스 관리와 갈등 조정에 굉장한 에너지를 쏟아요. 워낙에도 방송국 PD는 미술, 무대, 음악, 작가적 소양, 디렉팅 능력, 편집, 섭외, 기획, 예산 집행 등 조율하고 관여할게 많은 직종이잖아요. 커머스 라이브는 여기에 MD적 감각과 마케팅 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야 해요. 그뿐만 아니라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것이 이 업의 어려움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제 잘 나갔다고 해서 오늘도 절대 그냥 잘나가진 않거든요. 과거의 성공 방정식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아요. 수많은 변수를 고려하고, 늘 새롭게 보여야 하고, 타이밍에 대한 분석과 실행이 명확해야 합니다. 일종의 파도타기 같은 체화된 감각과 오랫동안 운동선수처럼 훈련해 키워온 근육으로 그때그때 수많은 판단을 내리고, 또 그에 따른 책임도 져야 하죠. 단순히 이 모든 과정이 '감'이나 '경험치'로만 정해지는 것은 아니고 기획과 전략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요샌 데이터사이언스도 또 더해졌죠.

처음엔 굉장히 공부도 많이 하고, 인풋도 많이 넣고, 찾아보는 것도 많고, 남들보다 절대적인 시간 투하로 우위를 꾀하려 했어요. 성과로 보여주고 싶었고 이를 위해 싸움도 마다하지 않고. 날이 서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러다가 한 십 년쯤 일하고 나니, 중요한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일 뿐 다른 나머지는 하등 남지 않고 다 사라지거나 잊히거나 부질없다는 깨달음이 오더라고요. 매출이나 숫자 이면에 그 뒤의 사람을 보기 시작했고, 저뿐 아니라 이 업계의 많은 사람들이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하루에도 거의 24시간 늘 생방송이 있다 보니 지칠 수도 있고, 주변에 사람은 많지만 굉장히 휘발되고 얄팍한 관계로 만났다 헤어지기 일쑤입니다. 

요즘은 또 비대면의 시대죠. 그 속에서 인간성을 지키며 온기 있게 일하는 것만이 나 자신과 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후배들에게도 강조하고 있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또 이 일이 아무래도 생활이 들쭉날쭉해요. 건강을 위한 자기 관리도 원칙이 서있지 않으면 타인의 욕망에 좌지우지되어 이끌려 다니는 삶을 살게 되더라고요. 일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자신만의 원칙을 정해 루틴을 지켜내려고 합니다.

Q.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방송 끝나면 바로, 비워내듯 다 잊는 편입니다. 그래도, 내가 걸어온 길이 업계를 바꾼 경험이라든가 또 하나의 시류와 기준이 된 시도들은 제 일기장에 남아 있죠. 시청률 문제로 섭외부터 절치부심했던 때, 반드시 몇 년 안에 이 채널을 바꾸어 놓겠다 곱씹었어요. 스타일리스트, 헤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들과 함께 상품 개발부터 고민하고, 스토리텔링을 덧입혀 전문가 집단을 발굴하고, 보여주는 방식도 강매(hard push sale)가 아닌 정보(info)나 재미(fun) 적인 요소들을 전진 배치했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기반으로 국내 최초 쇼퍼테인먼트, 미디어 커머스, 콘텐츠 커머스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 아무래도 큰 성과죠. 공중파 이외 채널에서도 시청률이 나오기 시작한 특이점에 만든 <불금 란제리쇼>도 남자 MC와 진행하다 방송심의위원회에 불려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성 뷰티 인플루언서들도 당연스러워진 걸 보면 무언가를 선도해오긴 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는 국내외 유명 디자이너들과의 콜라보도 흔한 풍경이 됐으니 말입니다. 그만큼 바잉 파워도 세지고 규모의 경제도 이루었어요.

눈이 온 날 방송에 늦지 않으려 속도를 내다 동작대교에서 두 바퀴 차가 돌아 정말 죽을 뻔한 일. 과로로 목과 입이 돌아가지 않아 병원에 실려갔던 일. 새해 첫날 새벽 첫 방송 출근길에 회사 간판을 들이받아 회사 액땜 다 짊어졌던 일. 아기띠에 애를 안고 출근해야 했던 일. 김연아 선수의 금메달이 걸린 경기 도중의 생방 분위기. 갑자기 조명이 터져 크게 다칠 뻔한 사고나 웃참 실패, 시연 실패 등의 흔한 사건사고들은 예사고요. 게스트 출연 불발로 제가 대신 출연한 적도 있었는데, 방송을 보고 오래전 친구와 연락이 다시 닿기도 했어요. 승용차 아닌 승합차를 판매했던 일, 개 사료 방송에 강아지들이 70분 내내 밥을 먹지 않아 난감했던 일도 떠오르네요. 아침 생방송에 늦는 악몽은 십수 년째 지금도 꿉니다. 실제로 생방을 펑크 낸 적은 여태껏 없네요, 하하. 

또 유세윤·뮤지 듀엣 그룹 UV의 2집 발표 퍼포먼스(?) 방송을 위해 하던 소개팅을 끊고 회사로 튀어들어갔던 일, 지면에 기고하던 칼럼 마감을 맞추느라 결혼식 날 새벽 4시까지 작업하고 잠 한숨 못 잔 채 신부 화장 받던 일… 한 번은 홈쇼핑 티셔츠 세트 상품이 6종, 7종, 8종까지 가길래 이럴 거면 걸그룹 댄스를 추자고 하기도 했었는데,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는 <루시드폴의 귤이 빛나는 밤에> 방송도 이런 앞선 발상의 작은 뒤틀림 시도들이 모였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해요. 장르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또 홈쇼핑을 역으로 활용한 사례가 될 수 있었어요. 늘 해오던 연출이 아닌 디지털 마케팅과 기획으로 프로듀싱했던 건이라 저에게도 의미가 있었고요. 하던 대로만 똑같이 일하는 건 저에게 지속적인 동기부여를 주지 않더라고요. 일부러 주문을 받지 않는 <안 팔아요> 방송도 해보고요. 매일매일이 특집인 게 지겨운 나머지 하다 하다 '납량 특집'도 해봤습니다. (웃음)

한국의 홈쇼핑은 미국이나 일본과는 다르게 굉장히 엔터테인먼트적이고 다이내믹하며 쇼(show) 적인 요소가 강해서 어느 순간 K-드라마, K-POP이 글로벌 클래스가 됐듯 중국·동남아·유럽·남미까지도 영향을 미쳤죠. 뉴미디어 시너지 컨설턴트로 일하던 해외 파견 근무도 해봤고, 플라잉 PD(Flying PD: 한국을 거점으로 중국을 왕래하며 중국과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피디)로 중국의 뷰티 프로를 원격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일들은 지금 생각해도 그런 일이 있었나 싶어요. 최근 파리 몽쥬 약국과 연결한 모바일 라이브를 보면서, 앞으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은 더 없어지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십몇 년 전에 쇼핑 드라마를 찍겠다, 서바이벌 리얼리티를 하겠다, 하면 허황된 꿈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것들이 기술적으로나 시청자들의 문화 인식적으로나 다 가능해진 시대가 온 것 같습니다. 


Q. 사내 혹은 관련 분야에서 이화 동문들의 네트워크가 있나요? 이화인임을 느끼거나 자랑스러울 때가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이화인이라고 조직 내에서 더 끈끈하게 네트워크를 맺거나 하지는 않아요. 굳이 말하자면 집단적 유대감보다는 1:1 개별적 관계들이 돈독하죠. 하지만 다양한 분야의 직장인 네트워크는 단과대학 별로도 있고, 오픈카톡방 형식의 소통 채널로도 있어요. 저도 이러한 공간에 나름 의존도 많이 하고 있답니다. 

제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영화 대사 때문에 많이 위축됐었고, 실제로 편견이 존재했어요. 도대체 이대 나온 여자가 뭐 어떻다는 건지 모르겠고, 세간에서 말하는 소위 이대 나온 여자스러움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통용되는 말일 거라고 생각 못 했는데 회사 선배들이 저더러 전형적인 “이대 나온 여자”라고 하더군요. 

그게 무엇일까 몇 년 더 지내오며 되짚어 보니 '참지 않는다'인 것 같아요. 긍정적인 의미로는 그렇고, 부정적인 면으로는 '손해 보지 않는다' 정도의 의미가 아닐까. 이 부분은 한 번씩 생각해 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부러지지 말고 휘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니까.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에서 그러는 것처럼요. 지금 당장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전체를 생각해야 할 때가 분명 있긴 하거든요. 이화를 졸업한 모든 이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언제 어디에서나 자신이 이화를 대표하고 대변하고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각자 최선을 다해 잘 살자, 개개인이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Q. 이화에서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대학시절은 제 인생 중 다양성을 가장 많이 존중받았던 시간이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큰 자산이라면 동아리 활동인 것 같아요. 이화티비 보도국 생활을 했었고, 영상 프로덕션 캠쿨에서도 활동을 했었는데요. 특히 입학처와 함께 이화의 홍보 영상을 직접 제작하며 각 단과대의 걸출한 선배님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담아냈던 경험이 제 안의 이화 DNA를 형성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 같아요. 동아리 친구들과는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엇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을 만난 것이 대학생활의 가장 큰 자산이었지 싶어요. 지금도 각자 하고 있는 일들 어느 정도 정리하면 모여서 같이 일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얼마 전에 학교 앞에 작게나마 스튜디오도 하나 마련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있던 동아리방처럼 모여 창작할 수 있는 공간이 늘 생각나더라고요. 코로나로 여러 변화가 생겼지만 미약하게나마 후배님들에게도 언니네처럼 친근하고 편한 공간 대여로도 활용하고 싶습니다.

또 100명 남짓한 학부의 100인 100색의 멋진 동기들도 기억납니다. 게임에 관심 있던 친구, 잡지에 관심 있던 친구, 방송에 뜻이 있던 친구, 또 광고에 미쳐 있던 친구들, 다큐에 빠져 있거나 춤을 추던 친구들… 모두 저마다 어디엔가 '미쳐'있었고, 또 그 개개인의 취향들이 존중받던 공간이었죠. 사회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얼마나 이화가 다양성에 대한 수용도가 높았던 문화였는지를요. 

그밖에 주전공이 아닌 다른 단과대였던 미대의 사진 수업들은 저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었고, 또 저희 학부 전공수업에 들어온 타과대 친구들과의 교류도 제게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습니다. 잘 엮어내어 융합(convergence)를 이루는 것이 요새 또 필요한 자질 아닌가요.(웃음)

Q. 언홍영이 위치한 이화포스코관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학교에서 가장 그리운 공간이나 추억은 무엇인가요?

포관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참치김밥이죠. 이화사랑 참치김밥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생각나서 종종 찾곤 했어요. 없어진다는 소리 듣고 일부러 찾아가 사 먹기도 하고요. 깨찰빵도 제 최애였는데, 아쉬움이 큽니다. 포관 5층 동아리방, 편집실에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특별한 일 없어도 앉아서 시간을 때우곤 했었는데, 거기서 주워듣는 것들이 많았어요. 새로 나온 영화, 이 친구는 요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같은 것들?

그리고 저희 학교에 멋쟁이 학우들이 많잖아요? 학교 곳곳에서 다른 학생들 옷차림이며 사람 구경하는 것이 재밌었어요. 요새 뭐가 유행인지도 알 수 있고, 모든 트렌디한 디저트, 브랜드 들의 1호점이 다 이대 앞에 먼저 들어왔으니까요. 때문에 학교 앞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어요. 그냥 학교 주변을 한 바퀴 쓱 도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됐었습니다.


Q. PD 직군을 꿈꾸는 이화인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매체는 계속해서 변합니다. 꼭 매스 미디어가 아니어도 돼요. 불특정 다수에게 흩뿌려지는 메시지보다 요즘은 팬덤과 취향 기반의 콘텐츠 구독이 가능한 세상이죠. 이리저리 휘둘리기보다는 그 속에서 정말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과 말하고자 하는 바, 그리고 나를 지속적으로 행복하게 하는 분야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방향성과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어요. 그걸 찾는 방법은, 20대라면 특히 일단 가능한 한 많이 보고 많이 듣고 경험하는데 주저하지 마세요. '이 길이다!'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이 막연하다면 '해보니 이건 아니네!'라고 깨닫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건 결코 시간 낭비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단,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요. 밥값과 나잇값은 중요하거든요. (웃음)

다음으로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자기에 대한 고찰, 연구, 확신과 더불어 중요한 것이 '타인에 대한 관심'인 것 같아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니까요. 여기서 말하는 관심이란 '공감과 소통'입니다. 좋아하는 사람, 관심사가 같은 사람들과의 소통은 참 쉬워진 세상이지만, 요즘 제 고민은 꾸준히 억지로라도 다양한 주제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고 균형감각을 잃지 않으려 둘러보는 것이에요. PD라는 직업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과의 협업을 일구어 나가는 일입니다. 단순히 '멋져 보인다', '리더다'라는 개념은 요즘은 많이 희석됐어요. 그렇게 제왕적으로 일하던 시대도 지났고요.

요새 직업이라는 것, 직무라는 것, 직군·직함도 많이 파괴되고 변모하고 있다고 여기는 편이라 꼭 'PD는 이렇다'라고 규정하고 싶진 않네요. 유연함과 오픈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점 잊지 마시고, 그저 PD가 되려 하기 보다는 세상과 얘기하고 생각을 나누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스페셜리스트로서의 종적인 노력과 시대 전반적인 제너럴리즘의 횡적인 밸런스를 맞추어 나아가다 보면 여러분은 멋진 크리에이터, 디렉터, 프로듀서, 마케터, 작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