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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한겨레문학상 수상 서수진 동문을 만나다

  • 등록일2020.11.04
  • 1201

사회에서의 남녀 차별이 덜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성별의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는 여성들을 종종 목격하게 됩니다. 멀다고만 할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제25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코리안 티처』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네 시간강사들의 목소리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코리안 티처』의 작가 서수진 동문님(국어국문학·06년졸)과의 인터뷰를 통해 속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Q. 안녕하세요, 서수진 작가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어국문학과 01학번 서수진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호주에 살고 있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대학 졸업 후에 소설을 꾸준히 써 왔는데 얼마 전에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면서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었네요. 영광입니다.


Q.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코리안 티처』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나요?

이 소설은 대학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는 여성 강사들의 이야기예요.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이죠. 많이 배웠고, 능력 있고, 그래서 ‘대학 한국어 강사’라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매 학기 계약 연장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썼어요. 대학 한국어학당으로 배경을 한정했지만, 사실은 이 이야기가 모든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우리 어머니 세대와는 달리 요즘은 여자들도 모두 교육받고 사회에서 일하지만 여전히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경력이 단절되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아기를 키우면서 하기 좋은 일들이 여자에게 좋은 직업이라고들 하고, 그런 직종에 여자들이 많잖아요. 다시 말해 전력을 쏟지 않아도 되는 일, 메인은 아기를 키우고 서브로 할 수 있는 일 같은 것들이요. 교육직이 그렇게 이야기될 때가 많죠. 대학 어학당 일도 그렇고요. 하지만 전력을 쏟지 않아도 되는 일은 없어요. 서브로 할 수 있는 일도 없고요. 그러나 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임해도 서브로 취급받죠. 그래서 너무나 부당한 대우를 많이 받아요. 대학 어학당에서 강사들을 대우하는 걸 보면 이 사회가 일하는 여성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볼 수 있어요.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는 책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으니 책으로 확인해 주세요. 


Q. 책에서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들에 대해 다루셨는데, 동문님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이야기인가요? 아니라면 이 글을 어떤 마음으로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여러 대학 한국어학당에서 일하면서 경험했던 일, 또 제 동료 강사들이 다른 한국어학당에서 경험했던 일이 조금씩 들어가 있지만 이 책에서 제가 쓰고 싶었던 건 하나하나의 경험이 아닌 그 모든 경험을 지배했던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제가 대학에서 일할 때 한 번은 강의평가 결과를 가지고 강사들의 3분의 1을 자른다는 소문이 돌았었어요. 사실 우리는 모두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잘리는 것이 아니라 계약 연장이 안 되는 것이었어서 딱히 할 수 있는 건 없었어요. 그저 잘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하는 것뿐이었죠. 우리가 노력한다고 해서 잘리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도요. 간절했거든요. 살아남아야 했으니까. 그런 간절함은 모든 대학의 어학당에서 일하시는 강사들, 넓게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기본권인 생존에 대해 이렇게까지 간절하게 만드는 시스템에 대한 책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Q. 혹시 『코리안 티처』 속 등장인물들처럼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무력감을 느끼실 때가 있나요?

많은 때, 자주 그래요. 대학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고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강의평가에 휘둘릴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강의평가라는 것이 제가 학생들을 대하는 진심, 수업을 대하는 열의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요. 세계정세가 불안정해지면 유학생들의 숫자가 줄고, 그에 따라 한국어 강사도 잘리게 되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항상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또, 소설을 오랫동안 쓰면서도 매번 공모에서 떨어지기만 할 때 역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구나 싶어서 힘들었고요. 그런데 이렇게 한겨레문학상에 당선되다니 꿈같아요. 삶이 주는 선물을 받은 것 같아요. 누구에게나 이런 시간이 찾아오리라 믿어요.


Q. 현재 호주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계신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여기서 한국과 사업적인 연관이 있는 기업들에 출강을 가는 일이 종종 있어요. 기본적인 한국어와 함께 한국 문화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하세요. 그러면 저는 한국의 역사부터 가르치죠. 한국이 어떤 역사를 거쳐왔고, 어떻게 해서 지금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요. 그런 수업을 하면서 저도 새로이 한국을 바라보게 될 때가 많아요. 우리가 지나온 고통의 역사가 우리를 단단하게 하고 간절하게 해 온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죠.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한국어를 보게 하는 일이고, 한국 문화를 가르치는 것 역시 내가 살아온 삶을 바다 건너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해요.


Q. 글을 쓰실 때는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시간을 들이는 거요. 앉아서 노트북을 켜고 쓰는 그 시간이 글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저는 천재적인 영감을 받아 한달음에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아니고, 어찌 됐든 오래 앉아서 글을 써 내려가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소설가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텅 빈 면을 수많은 글자로 채워나가는 노동을 해야 하는 거죠. 누구에게나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고, 또 잘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겠고, 또 이 시대 사람들에게 잘 먹히는 이야기가 있겠지만,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건 앉아서 쓰는 거예요. 그 정직한 시간이 작가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Q. 차기작에서 꼭 한번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으시나요? 

역시 여성의 이야기요. 여성이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고, 주체적으로 연애를 하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한국 여성이 온전한 자신을 찾기란 정말 모험과도 같은 일처럼 여겨져요. 그 모험에 투신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지금 호주에서 살아가는 한국 여성들의 투쟁기가 될 것 같아요.


Q. 언제부터 작가의 꿈을 꾸게 되셨나요? 그리고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셨는데 재학 시절 경험이 진로에 영향을 주었나요?

네, 사실 처음 대학에 인문외국어학부로 지원했을 때는 그 당시 유행이던 중국어를 전공하려고 했었어요. 그런데 중국어 강의에서 C를 받고, 같은 학부 불문과 수업을 들었는데 또 C를 받은 거예요. 외국어는 못하겠으니 국어를 해야겠다 싶어서 2학년 때 국어국문학과를 지원했어요. (웃음)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어요. 전공필수과목으로 마지못해 문예창작론을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숙제로 써서 냈던 소설을 교수님이 칭찬해 주시는 거예요.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리고 이화글빛문학상에 소설을 냈다가 덜컥 당선이 된 거죠. 그 후로 계속해서 글을 썼어요. 10년이 넘게 문학 공모에 떨어지면서 '이화글빛문학상'을 원망한 적도 많았어요. (웃음) 그 상 때문에 이 길로 들어섰으니까요. 지금은 제게 은인과 같은 상이 되어버렸네요.


Q. 동문님은 이화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국어국문학과 공부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복수전공을 했던 여성학은 신나게 공부했어요. 한 번은 '여성과 미디어'였던가, 그런 이름의 강의를 들었는데 과제로 강간 포르노의 남성 중심 서사 분석을 했어요. 친구랑 같이 토할 때까지 포르노를 봤습니다. 교수님이 A++을 주시더라고요. (웃음) 그때 같이 팀 과제했던 친구와 지금도 친한데 그 친구는 여성 전문 변호사가 되었어요. 이혼 사건을 맡기도 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변호하기도 하죠. 그리고 저는 고학력 비정규직 여성에 대한 소설을 썼고요. 이화의 여성학이 우리로 하여금 여성을 대변하게 했다고 농담으로 말하곤 해요.


Q. 이화투데이에서 인터뷰할 때 항상 드리는 질문인데요. 동문님에게 있어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 나는 여성이다, 그런 선언. 나는 글을 쓰는 여성이고, 일하는 여성이고, 내 삶을 꾸려나가는 여성이에요.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힘들 때도 많지만 저는 이대에서 공부하면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여성이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무척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그래서 후배들이 여대에서 공부하는 것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Q. 작가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화인들이 참 많을 것 같아요. 인종, 성별 등의 제약에 부딪혀 미래에 대한 불안정함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요. 비슷한 아픔을 갖고 있는 이화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아직도 사회는 여자에게 혹독해요. 그래서 남자들이 가지는 용기와 의지의 두 배쯤이 필요하죠. 열심히, 치열하게 매일을 살아가는 이화인들에게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돌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우리는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할 테니 그렇게 훌륭한 우리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자신을 많이 사랑하고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는 작가님의 말이 저에게도 무척 와닿네요. 세상을 마주하고 꿈을 향하는 발걸음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 모든 걸 이겨낼 가능성을 갖고 있는 이화인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 이화투데이 12기 리포터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