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이화여자대학교

통합검색
nav bar
 
Ewha University

People

[경제계] 세이브앤코 대표 박지원 동문(시각정보디자인·09년졸) 인터뷰

  • 등록일2019.07.31
  • 5023

이화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이화 동문을 만나보았는데요! 여러분 혹시 여성을 위한 착한 콘돔 브랜드 SAIB를 아시나요? 여성의 성(性)을 둘러싼 문화적 금기에 맞서는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 브랜드 SAIB를 만들어낸 #세이브앤코 대표 박지원 동문(시각정보디자인·09년졸)의 스토리를 함께 만나보실까요?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정보디자인 04학번 박지원입니다. 학부 재학 중 삼성디자인멤버십에서 활동했고, 이후 디자인 전문 기업 데어즈(DAREZ)를 공동 창업해 다양한 실무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영국 런던의 브랜드 컨설팅 회사 Brand Environment의 디자이너로 근무하며 디자인 역량을 다졌습니다. 비영리 사회적 캠페인 ‘1/2 프로젝트’와 다학제적 디자인 운동인 ‘Design Can Do’를 공동 창립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미국 국무부 풀브라이트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로드아일랜드 디자인스쿨(RISD)에서 그래픽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현재 미국 텍사스대학 오스틴 캠퍼스(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조교수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으며, 최근 여성을 위해 여성이 만든 브랜드 세이브앤코를 론칭하여 서울과 오스틴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Q. 해외 대학에서 교수로 교육자의 길을 걷고 계신데요, 어떻게 재직하게 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교수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학원에 진학했던 것은 아니었어요.
학부 졸업 후 디자인 전문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면서 비영리 사회적 캠페인 1/2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영역에서의 디자인을 더 공부해보고 싶었고, 미국으로 건너가 효과적인 사회 소통의 툴로서 디자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과 가능성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대기업 근무 경험, 창업 경험,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던 경험들 외에 시도해보지 않았던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 재임 중인 UT Austin의 채용 공고를 접하게 되었는데, 다학제적 디자인 커리큘럼과 사회적 디자인에 대한 포커스 등 제 연구 관심사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호기심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1년만 경험하려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학생들을 가르치며 얻는 보람감과 지속적으로 연구하며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에 만족하여 6년째 교육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해외에서 커리어를 키워 나가는 과정에서 '외국인', '여성'으로 겪은 어려움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그리고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아무래도 한국이면 겪지 않아도 될 고민과 어려움들을 많이 경험해왔고,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쉽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하게 되면서 처음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그때 제 나이가 29살이었는데, 가장 어린 나이의 교수이기도 했고 또 동양인이 더 어려 보이기도 하잖아요. 체구도 작은 편이기도 했고, 영어도 완벽하지 않았고, 티칭 경험도 전혀 없던 상황이었으니까요. 혹시라도 학생들이 무시할까 봐 더 열심히 준비하고, 더 열심히 지도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가르치는 일은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초기보다는 많이 편안해졌습니다만 수업 외 다른 부분들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텍사스가 미국 내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지역이기도 하고. 학계도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별과 젠더에 따른 차별도 분명 존재하고요. 저는 '외국인' '유색인' '여자'라는 조건을 가진 hierarchy(계급)의 최하위에 속하는 데다,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으니 교수 회의에 가면 무시당하거나 투명인간 취급 당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나이 많은 백인 남자 교수님들의 경우 눈도 안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제 의견을 피력하고, 능력으로 인정받고, 존재감을 키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해야 했습니다. 이제 학과와 단과대 내에서는 그런 일들이 거의 없지만, 연차가 쌓이고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하는 지금도 타과 교수님들과 만나는 일정이 생기면 전날부터 긴장하곤 합니다.

 

Q. 대표로 계신 세이브앤코는 여성친화적인 콘돔을 개발하여 유통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업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세이브앤코는 지난 가을 여성의 성을 둘러싼 문화적 금기에 맞서는 섹슈얼 웰니스(Sexual Wellness) 브랜드 SAIB(세이브)를 론칭했습니다. 브랜드명 'SAIB'는 편견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 'BIAS'를 뒤집은 것으로 '한국 사회의 여성 성생활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뒤집는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SAIB는 성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이중잣대에 맞서, 여성의 성생활과 여성 건강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여성의 성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고, 여성의 성생활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기존의 성인 용품 브랜드와 다르게, 여성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고, 여성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브랜드죠. 저희의 주력 제품인 콘돔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상품이기도 해요.

 
Q. 어떤 계기로 세이브앤코를 창업하게 되셨나요?
세이브앤코를 창업하게 된 건 여러 우연이 겹친 결과입니다.
계기 중 하나는, 미국 학생들에게서 받았던 문화적 충격입니다. 교수 부임 후 첫 수업인 <사회적 디자인>의 첫 프로젝트로 학생들에게 사회적 문제를 찾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디자인 장치를 설치한 뒤 사람들의 반응을 기록해 오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과제 발표 시간에 조용하게 수업만 듣던 내성적인 한 여학생이 발표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학교 보건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콘돔을 대량 수거해 금요일 밤 학생들이 술 마시고 노는 유흥가에 설치물을 만들었어요. 콘돔을 가지고 ‘SAFE SEX’라는 글자를 만들어 놓고 가져가도록 한 거예요.
학생이 발표하는 동안 어떻게 크리틱을 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표 중 얼굴 빨개진 건 저 혼자였고, 20여 명 학생 모두가 굉장히 진지하게 피드백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문화, 성인식이 이렇게 다르구나'를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성과 피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콘돔에 관심을 가진 적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었으니까요.
이후 콘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성분을 따져보니 꽤 많은 유해 성분이 함유됐지만 별다른 제재나 정보 공개 없이 팔리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먹거리도 신경 쓰며 살아왔는데, 몸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콘돔은 좋은 성분의 제품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계기는 재작년 초 안식년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였습니다. 예전 동료들과 모인 저녁 자리에서 국내 화장품 트렌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누군가 레드오션인 K 뷰티의 타개책으로 일본의 ‘수치 시장’을 제안했습니다. 이를테면 여성 생식기 미백제나 염색제 같은 화장품을 들며 ‘여성에게 수치심을 안김으로써, 기존에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 필요성을 인지시켜 새로운 시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여성 화장품을 판다는 분이 이런 사고를 한다는 데에 화가 났고, 여성의 민감한 부위에 닿는 이런 화장품이 여성 몸에 좋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현듯 4년 전 <사회적 디자인> 수업 후 찾아봤던 콘돔 성분이 생각났습니다. 진짜 여성에게 필요한 건 ‘유해 성분 제로 콘돔’ 같은 여성의 몸에 유익한 제품이라고 말해주었죠.
몇 달 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데어즈(DAREZ) 공동 창업자가 “그 콘돔 회사 차릴 테니 브랜드, 제품 디자인을 해달라"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브랜드와 제품 디자인 시안뿐만 아니라 상품 기획과 사업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정리해서 보내며 "좋은 브랜드로 잘 키워달라"라고 전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죠. 몇 달 후 다시 전화가 와서 “이 브랜드는 네가 아니면 못할 것 같으니 아예 회사를 맡아달라"라고 하더라고요. 장고 끝에 수락했고 그렇게 지난해 2월 정식으로 회사 ‘세이브앤코’를 설립했습니다.

 

Q. 기존에 여성을 타게팅 한 콘돔 시장이 없는 터라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외에 사업을 하면서 힘든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이미 고객층이 형성된 시장에는 ‘더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들이 따라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여성이 콘돔을 구매하는 비율은 20%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회사가 아무리 성분이 우수하고, 품질이 좋고, 디자인이 훌륭한 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콘돔을 구매하지 않던 여성들이 갑자기 저희 제품을 구매하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조급해하지 않고 길게 바라보는 것도 있고요.
한국 시장의 주요 콘돔 브랜드는 모두 남성 소비자만을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여성에게 유해할 수 있는 성분에 대한 논의 보다 남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섹스 어필에만 더 많은 고민과 노력을 쏟고 있습니다. 여성을 타깃으로 한 콘돔 시장 자체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거죠.
하지만 장차 세이브라는 브랜드가 커져 시장을 조금씩 점유하게 되면 시장도, 제조사도 우리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도 고객이란 걸 보여주면 여성의 요구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러다 보면 경쟁적으로 여성친화적인 제품들이 출시되겠죠. 이러한 건강한 시장의 변화를 세이브가 이끌어나가고 싶습니다.

 

Q. 반대로 사업을 하면서 뿌듯했던 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저희 브랜드 취지에 공감해주시는 여성 고객들을 만날 때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사실 언론에 기사가 소개될 때마다 다양한 공격적인 악플과 이유 없는 비난에 시달리곤 하는데요, 그 사이에서 저희를 옹호하고 응원해 주시는 댓글들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는 합니다.
또 저희 세이브 브랜드와 패키지 디자인은 총 11개의 유수 국제 디자인 어워드에서 수상하며 제품 디자인의 우수성과 브랜드 콘셉트의 참신성을 증명받았는데요, 디자이너로서 매우 뿌듯한 순간들이었습니다.


2019 iF World Design Award에서 선정된 세이브앤코 자세히 보기

 

 

Q. 세이브앤코에서는 앞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 중인가요?
여성을 위해 좋은 제품을 개발해 제공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세이브는 제품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에 대한 편파적인 분위기를 없애고자 합니다. '성생활에 주체적인 여성'을 향한 부정적인 사회적 시선에 도전하고, 문화적 편견을 바꾸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이를 위해 다양하고 건강한 제품 개발 이외에도 여성의 권리 증진과 건강을 위해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제품 판매 이익의 10%는 여성 권리 강화를 위한 캠페인에 사용하며, 캠페인의 일환으로 다양한 굿즈를 제작·판매하고 굿즈 판매 이익의 100%는 여성 관련 단체에 기부하고자 합니다.

 

세이브앤코 홈페이지 바로가기

 

Q. 이화 재학 시절이 궁금합니다. 동문 님은 이화에서 어떤 학생이셨나요?
1학년 때는 정말 열심히 놀았었고요, 2학년 때부터는 학교생활도, 외부 생활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디자인학부에서 시각정보디자인을 전공하며, 언론홍보영상학부 광고디자인을 부전공했고요. 대학생활 동안 교내·외, 국내·외, 디자인과 타영역을 넘나드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최대한 많은 사람과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방송국의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알게 해 준 MBC 아트센터 의상디자인팀의 보조 디자이너 경험, 『월간 디자인』지의 어시스턴트 에디터로서 기사 작성 경험, 쌈지스페이스 갤러리에서의 큐레이터 인턴 경험을 통한 전시기획 과정 참여, 비주얼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소비자-클라이언트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제일기획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경험 등입니다.
특히 우수한 디자인전공 학생들을 소수 선발해 집중 지원하는 삼성디자인멤버십 멤버로 활동하며 만난 국내외 사람들과의 수준 높은 경험은 디자이너로서의 기초를 탄탄히 해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Q. 이화에서 배운 것 중 창업을 하고 커리어를 쌓아가는 데 도움이 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창의성이 기반이 되는 디자인이라는 학문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수업을 들었던 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인문학, 사회학, 경영학, 광고 마케팅학 등 다양한 타과 수업을 통해 보다 더 넓은 사고를 하게 되고 비즈니스 소양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동문님이 생각하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자주성 그리고 독립성인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도움받기보다는 스스로 주체적으로 어떤 일이든 개척하고 추진해 나갈 수 있는 역량이오!

 

Q. 마지막으로 이화인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돌이켜보면 저는 학생 때부터 참 많은 다양한 경험들을 해왔고,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제 아이덴티티가 더 확고해진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몰랐던 세상을 배워나가는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나와 잘 맞는 일이 뭔지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 이화투데이 11기 리포터 곽다현(융합콘텐츠학과·18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