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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곽배희 동문(법학·69년 졸)

  • 등록일2015.11.13
  • 4854

곽배희1


화려한 경력과 굵직굵직한 업적들에 긴장해 소장실에 들어가는 리포터의 발걸음은 무겁고 온몸이 굳어 있었다. 하지만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친숙한 라디오 소리와 곽배희 동문의 인자한 인상에 이내 편안한 인터뷰 분위기가 이어졌다. 곽 동문의 이야기에는 이화에 대한 사랑과 후배들에 대한 애정, 격려가 가득했다. 요즘 후배들은 참 힘들게 공부하면서 먹고 살 걱정까지 하고 있는 것 같아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곽배희 동문. 그녀를 여의도 한강 옆에 위치한 가정법률상담소에서 만나보았다.


1. 2000년에 제3대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에 취임하셔서 현재까지 소장직을 역임하시고 계십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서 주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어느 회사나 조직의 장과 마찬가지로 우리 상담소 또한 장(長)은 그 기관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이라고 하면 그 기관의 구성원들이 각자 자기 위치에서 맡은 바 의무를 다하고 최선을 다해 일에 충실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죠. 나의 입장에서 보면, 상담소를 운영하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겠습니다. 상담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과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제적인 문제가 없어야 그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죠. 경제적인 문제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을 잘 관리해서 각자 능력과 적성에 맞게 배치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이 두 가지를 포함해서 상담소를 잘 이끌어 가는 것이 바로 소장의 역할입니다.


(서포터 같은 리더를 추구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중대한 일을 결정하고 문제가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하면서 그 기관을 보다 넓고 보다 깊게 발전시키는 것이 다 소장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 모든 일들을 소장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구성원들과 함께 합니다. 상담소로 말하면, 위로는 이사님들과 상담 위원 그리고 상담 위원 외에도 출판, 총무, 경리, 기술부와 같이 법률구조업무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혼자서 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어진 역할에 따라 그 일을 책임을 다해 편안하게 해내도록 뒤에서 힘쓰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곽배희2


2. 이태영 선생님께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하셨을 때 선뜻 방송 프로듀서를 그만두고 함께 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발을 들이시면서 꿈꾸신 비전이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가정법률상담소는 민간단체로는 최초의 법률구조 법인이고, 법률구조 기관의 성격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법률구조 기관의 상담위원으로 들어왔으니까 상담자의 역할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기는 진급 개념이 없기 때문에 높이 올라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요. 상담소는 돈 없고 법을 몰라서 자기의 권리를 제대로 찾지 못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내가 그동안 공부한 법률적인 지식으로 그들을 열심히 도와야겠다는 생각만이 있었습니다.


3. ‘나를 있게 한 그 사람’이라는 제목의 이태영 선생님에 관한 칼럼을 보았습니다. 이화여대 법대 학장이자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이셨던 이태영 선생님의 어떤 면이 소장님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제가 20대 후반이었는데, 선생님의 어떤 면이 좋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분석했다기보다는 그저 존경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이태영 선생님이 학장님이셨어요.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사법고시 여성 합격자이자 최초의 법학 박사이며 최초의 변호사이셨던 것과 같이 선생님에게는 '최초'라는 말이 참 많이 따라붙었습니다. 법조 분야의 선구자적인 인물이셨기 때문에 선생님은 훌륭하신 분이고, 존경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되는 분이셔서 ‘나도 선생님처럼 저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어렸을 때 링컨 전기를 읽고 ‘법을 공부하면 좋은 일을 할 수 있구나’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면, 이태영 선생님은 저에게 보다 구체적으로 다가오셨어요. 또 60년대에 여성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선생님처럼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제 머릿속에 들어왔고, '나도 선생님과 같은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존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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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으로서 가정 내의 민주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셨습니다. 소장으로 일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가족법 개정 운동을 통한 호주제 폐지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호주제 폐지는 이태영 선생님이 계실 때부터, 즉 1948년 이후부터 시작된 문제였는데 그 조문 하나 없애는 데 6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호주제 폐지는 저 혼자 했다고 볼 수 없고 대한민국 모든 여성들이 다 함께 노력해서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 외에도 동성동본 금혼규정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낸 것과 그 이후에도 11차 이상 가족법 개정을 이뤄낸 것을 기억합니다.


소장이 된 이후에는 주로 상담소를 튼튼한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을 중점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전에는 민간단체의 상황이 참 열악했어요. 상담소에 들어온다는 것은 자원봉사를 한다는 개념이었고, 상담소는 직장이라고 생각하면 있을 수가 없는 곳이었습니다. 내가 법학 공부를 했으니까 내가 갖고 있는 지식을, 법을 몰라서 자기 권리를 못 찾는 사람을 위해서 나눠줘야겠다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아니면 일을 못하는 상황이었고 그것은 지금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에 대한 희생, 봉사의 마음이 있을 때 상담소에 들어와서 일하는 것은  맞지만, 이런 좋은 일을 하기 때문에 돈을 받지 말고 자원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입니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면 시킬수록 그들에게 응분의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소장인 나는 그 문제로 고민합니다. 봉사 정신을 가져야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직원들이 적어도 경제적인 것 때문에 좌절하거나 일에 대한 회의를 느끼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늘 생각합니다. 상담소가 하는 일은, 정신소모가 큰 일이에요. 듣기 좋은 말도 세 번이라고 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각자 방에서 하루 종일 갈등하고 고통받는 부부간의 문제를 듣다보면, 건강한 정신상태의 사람들도 상담을 받아야하는 할 만큼 힘이 들어요. 이렇게 고생하는 직원들이 적어도 경제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를 잘 뒷받침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대학에 입학하신 1965년 당시에는 여성으로서 대학에 간다는 것도, 더구나 법학 공부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법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때 읽은 동화책을 통해서 처음 링컨을 알게 됐는데, 많은 위인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링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때 ‘아,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법을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면 남을 도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거죠.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한 그 생각이 시간이 가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법학을 전공하게 된 것입니다.


6. 이화에서 배운 가르침과 이화에서 보고 느낀 것이 사회에서 어떤 힘이 됐는지 궁금합니다.


학교 다닐 때는 이화의 영향력을 잘 실감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보니, 이화에서의 가르침과 정신이 암암리에 내면화돼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진선미의 가치 속에서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희생과 봉사, 그리고 남을 섬기는 이화 정신이 이 자리의 저를 만들어 주지 않았나 싶어요.


우리 상담소에서는 1년에 약 8만 여건의 가정문제를 다루고 있어요. 사회 발전을 이룩하고 사회 변화를 꾀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법을 바꾸는 것과 사람의 의식을 바꾸는 것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 사람들은 법을 그저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저는 법 공부를 하면서 참 많이 화가 났어요. 특히 가정문제에 적용되는 친족 상속법이 너무도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이며 비인간적인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가부장적인 풍조가 짙은 우리 한국 사회의 단면이 그대로 법 조항에 녹아 있더라고요. 법 모르고 가난해서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고통 받는 계층도 똑같이 차별받지 않고 인간답게 살 기본권인 헌법상 행복추구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법적으로 도와주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열어주는 정신을 저는 이화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7. 앞으로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으로서 이루시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금의 법률구조사업은 이태영 선생님께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씨를 뿌렸고, 정착시킨 사업입니다. 이태영 선생님께서 본 사업을 시작하셨던 그 당시는 지금보다 더욱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이었어요. 그런 까닭에 많은 법조인들이 보장된 명예와 부, 권력을 마다하고 가정법률상담소를 열어 무료로 법률구조사업을 시작한 이태영 선생님을 비웃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죠. 그럼에도 이태영 선생님께서는 꿋꿋이 사업을 시작하셨고, 그 덕분에 지금 우리 사회에 법률구조사업이 정확한 개념으로 정착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이 사업을 보다 전국적으로 확대·확장해서 지금까지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상담소를 통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목표로 두고 있는 것은 가정법률상담을 통해 통일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통일은 사실 정치적인 이해관계도 많이 얽혀 있고 거국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쉬이 언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혹시 기회가 된다면 평양, 개성 같은 북한의 중심 도시에 우리 지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가족 문제에 있어서 남북한 문제가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남북 분단 가족들과 관련한 이중 혼인, 상속 문제 등이 면면히 들어와 있죠. 이태영 선생님께서는 늘 “가정의 평화가 이뤄지면 그것이 곧 사회의 평화, 국가의 평화로 이어지고 나아가 인류의 평화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나라의 국민은 어떤 형태로든 가족 구성원이기 때문에 가정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서부터 통일의 실마리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직원들에게 좋은 직업 환경을 안겨주는 것은 과거에도 제가 많이 힘써왔고 현재도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당장은 힘들 것 같지만, 남성 상담 위원을 확보하는 일입니다. 여성이 주된 대상이긴 하지만 남성분들도 많이 찾아오세요. 대략 70:30의 비율인 것 같습니다. 가정문제는 남녀를 아우르는 일이기 때문에 남성 상담 위원도 있어야 하는 것이 사실인데, 아직은 현실적 제약이 꽤 있어요. 우선 경제적인 문제도 그렇고, 사실 우리 기관이 가족 같은 분위기가 짙습니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기반 위에 인격과 적성이 맞아야 이 곳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죠. 특히 가정 문제 상담은 다른 것보다 더 섬세해야 하고, 공감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점에서 남성보다는 여성을 주로 뽑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성 상담 위원 확보도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곽배희4

 


8. 앞으로 사회로 나아갈 후배 이화인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얘기가 많지만 추려서 해야겠네요.
이제 후배들이 사회에 나오면 직업을 가지겠죠. 그런데 자신이 지금 하고 싶고 원하는 일과, 먹고 살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때 보통 우리는 당장 부딪힌 현실과 여러 부담 때문에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보다는 무조건 당장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선택하기가 쉬워요. ‘나중에 여유가 되면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대개 하죠. 많은 사람들을 보고 상담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나중’이 오기란 참 힘든 것 같아요. 사회에 내딛게 되는 첫발이 참 중요하고 또 한편으로는 무서운 것인데, 너무 계산적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먹고 사는 일이 중요하죠. 현실에 발을 딛되, 자신의 목표가 그저 ‘잘먹고 잘살자’에 그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상담소에 실습이나 자원봉사를 오는, 혹은 사회로 나가려고 준비 중에 있는 많은 학생들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일에만 매달려서 주변상황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나는 이 사회의 지성인, 그리고 민주 사회의 시민이라면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회가 우리 국민 모두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항상 고민하고 나의 인생관, 세계관과 비교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저 일은 내 일이 아닌데. 오로지 내 목표만 이루면 된다’는 생각으로 사회나 국가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후배들만큼은 열심히 준비해서 원하는 곳에 가서 일을 하되, 늘 마음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명감, 정의로움, 올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사태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고 원인과 상황 파악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내세요 우리 후배들!


이화투데이 리포터 이다솜(영어영문·13), 문해리(국어교육·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