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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남보현 에이치지이니셔티브 대표(언론홍보영상학부·03졸) N

  • 등록일2025.09.10
  • 62

자본이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을까? 수익 추구를 넘어 진정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까?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시작한 '임팩트 투자'는 재무적 수익과 사회적 임팩트를 동시에 추구하며 자본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 남보현 대표는 임팩트 투자 패러다임을 개척해 온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오로지 수익만 바라보던 시장에 작은 틈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평가했는데요, 단단한 신념 위에서 탐색해 온 '수익과 가치가 공존하는 새로운 길'은 점점 더 많은 이들에게 현실적이고 매력적인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SK커뮤니케이션스에서 '싸이월드' 기획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녀가 임팩트 투자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소명을 발견하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향한 생각을 들어보았습니다.



Q. 에이치지이니셔티브(HGI)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와 임팩트 투자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려요.

글로벌 임팩트 투자 업력에 비해 역사가 짧은 국내에서 '임팩트 투자' 개념을 설명하는 일은 여전히 만만치 않아요. 수익을 추구하지 않는 기부성 자산운용 정도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임팩트 투자는 비즈니스 모델이 사회적 가치 창출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설계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말해요. 자본시장의 힘으로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도, 동시에 명확한 재무적 수익 실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선 활동과는 다르죠. HGI가 지향하는 바는 바로 이러한 지속가능한 투자 생태계의 구축이에요. 지속가능한 투자의 조건은 명확해요. 건강한 성장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면서도, 동시에 사회와 환경, 그리고 사람들에게 긍정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Q. HGI의 비전과 미션에서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이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에요.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은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또 이것을 내세우게 된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요.

삶의 필수적인 요소들이란 먹고, 자고, 배우고, 돌보는 것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여기지만 실제로는 지속적으로 확보되어야 하는 생존과 번영의 기본 토대들이에요.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본질은 우리 세대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자원과 기회를 다음 세대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있죠. 따라서 저희의 투자 대상은 필연적으로 '사람', 그들이 살아가는 '지구 환경', 그리고 상호 연대하며 공존하는 '커뮤니티'의 세 영역으로 수렴돼요.


Q. '네거티브 스크리닝'이라는 투자 방식이 인상적이었어요. 이에 대한 HGI의 철학이 있다면 설명을 부탁드려요.

기업이 성장했을 때 사회에 부정적 외부효과를 야기할 수 있는 영역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어요. 이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업계에서 이미 체계적으로 활용되고 있는 투자 방법론으로, '네거티브 스크리닝'이라고 해요. HGI는 기업과 관련한 모든 이해관계자가 함께 성장하며 상생할 수 있는 건전한 비즈니스 모델을 지닌 기업에 주목하고 있어요. 단순히 수익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성장 과정에서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저희의 철학이에요.


Q. 임팩트 투자 분야에서 '측정 가능한 임팩트'가 어려운 문제이면서 또 큰 화두인 것 같아요. 사회적 영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지 여전히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임팩트 투자에서 가장 까다로운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측정 가능한 임팩트'예요. 재무적 성과는 명확한 숫자로 평가할 수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은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측정 기준은 다양해요. 유엔개발계획이 채택한 IMP(Impact Management Project)를 비롯해 SROI(Social Return on Investment), VBA(Value Balancing Alliance) 등의 국제 표준과 기술보증기금의 '소셜벤처 판별기준' 같은 국내 기준까지 여러 규범이 있어요. 

하지만 임팩트 측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해요. 측정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측정의 목적과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본질적이죠. 저희는 격년마다 임팩트 리포트를 발간하여 포트폴리오 기업들의 사회적 영향력을 체계적으로 자료화하고 있어요. 다만 아직 국내에서는 임팩트를 입증하거나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주체가 많지 않아요. 의지가 있다 해도 임팩트 측정과 관리에 소요되는 비용을 부담할 의향이 있는 곳은 더욱 제한적이죠.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LP(Limited Partner, 출자자)보다는 투자자가 강력한 의지를 갖고 주도해야 하는 한계가 있어요.


Q. 직접 발굴한 스타트업으로 메디픽셀과 째깍악어가 있다고 알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투자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온라인 보육 플랫폼 '째깍악어'나 인공지능 기술을 헬스케어에 접목해 심장질환 치료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메디픽셀' 등은 제가 직접 발굴하여 투자를 결정한 기업들이에요.

이 외에 특히 인상 깊었던 투자 사례로는 요양보호사 플랫폼 '케어링'을 언급하고 싶어요. 처음에는 수익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판단하고 이 사업에 진입한 대표가 요양보호사와 어르신들을 직접 만나면서 점차 이 사업이 단순한 비즈니스가 아닌 삶의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체감하게 된 거죠. 전형적인 숫자 중심의 접근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복리에 집중하게 된 대표적인 사례라 가장 기억에 남아요.


Q. 앞으로 집중적으로 해결할 사회문제와 또 이와 관련한 HGI의 투자 방향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드려요.

현재 HGI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사회적 이슈는 급격한 인구 구조의 변화예요. 저출산, 고령화, 생산가능인구 감소, 1인 가구 급증으로 인한 사회적 고립 등 구조적 변화가 전례 없는 속도로 진행되고 있거든요. 저희는 투자회사이고 수익성을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에 사회 문제 자체에만 골몰할 수는 없어요. 결국 '규모가 있는 사회 문제'에 투자의 기회, 시장의 기회가 있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요. 인구 구조의 변화와 함께 기후변화와 환경 문제, 그리고 AI와 로보틱스의 급격한 발전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의 영역까지 이렇게 총 세 축을 집중해서 보고 있어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혁신적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에 투자하고, 그들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원하면서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어요.


Q. 사회생활의 첫 시작이 '싸이월드' 메인 페이지 운영 및 기획 업무였다니 무척 신기해요. 대표님의 커리어 여정에서 중요한 순간들을 꼽는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생각하고 일하는 습관은 사회생활의 시작에 형성된 소중한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현재의 저를 형성한 결정적 경험 중 하나는 첫 직장인 SK커뮤니케이션스에서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신입사원 시절 그 당시 대다수의 국민들이 사용했던 미니홈피 '싸이월드'의 운영과 기획을 담당했거든요. 숫자와 통계를 보면서 최적의 서비스를 만들어 내야 하는 플랫폼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업무 피드백은 클릭 수나 광고비와 관련된 것일 거예요. 그런데 당시에 가장 먼저 접했던 피드백은 '이 기능을 추가했을 때, 또는 이 기능을 바꿨을 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충분히 생각해 봤느냐'는 질문이었어요. 숫자 이면에 우리가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 '사람 간의 관계'라는 것을 집요하게 트레이닝 받았던 시기였죠.


Q.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자 인생을 건 기업가들을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하셨는데, 일과 사랑에 빠지게 된 경험을 나눠 주시면 좋겠어요.

일반적으로 돈을 벌고자 하는 스타트업만 만나도 투자자들은 에너지를 얻어요. 뭔가를 해보고자 하는 열정과 낭만과 희망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HGI에서 만나고 투자하는 기업들은 여기에 '선의'까지 더해진 곳이에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분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게 커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것은 결국 존경심을 갖게 되는 일이죠. 이런 기업가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제 일에 대한 관점도 바뀌었어요. 단순히 투자 수익을 내는 것을 넘어서, 정말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보람이 되었어요.


Q. 세 자매가 모두 이화인이라고 들었어요. 학창시절을 떠올릴 때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학교에 다닐 때 큰언니는 기독교학과를 졸업한 후 대학원에 재학중이었고, 세 학번 위인 둘째 언니는 교육공학과 학부생이었어요. 이대에 오게 된 건 언니들의 영향이 컸기에 저에겐 무척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캠퍼스 어딘가에는 늘 언니들이 있었기에, 마치 가정의 연장선처럼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이화가 길러준 것은 이러한 안정감보다는 '독립성'과 '회복력'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이화에서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는 독립적인 삶을 배웠어요. 그렇게 성장한 것은 나 자신뿐 아니라 동기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이렇게까지 열심히, 또 이렇게까지 정직하게 무언가의 결과물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과 대학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사회에 나와서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이겨나갈 수 있는 회복력과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맷집으로 길러진 것 같아요.



Q. 대표님의 기존 인터뷰를 보면서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대한 지향을 느낄 수 있었어요. 대표님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이화인들과 공유해 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가치라는 용어가 거창해 보이지만, 저는 오히려 '베이직'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으면서 모두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 나만 집요한 탐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다음 세대도 평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들을 제가 하는 일 속에서 실천해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크리스천으로서 또 아이의 어머니로서 부끄럽지 않게 주어진 하루하루의 시간들을 의미 있게 채워나가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 가까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