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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소장(장식미술과·1997졸) N

  • 등록일2025.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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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풍석 박물관, 두손 미술관, 방주교회, 포도호텔. 자연의 형상을 품은 듯한 이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MZ세대가 즐겨 찾는 소위 ‘SNS 핫플’로 사랑받고 있죠.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공간들은 모두, 건축가 故 이타미 준의 작품입니다. 재일교포로 알려졌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이름 ‘유동룡’을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그의 철학을 기리기 위해 딸 유이화 건축가가 제주에 세운 ‘유동룡 미술관’은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소장, 유이화 건축가를 만나보았습니다. 


Q. 유동룡 미술관은 건축가님의 오랜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건축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아버지, 이타미 준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지만 딸로서가 아니라 건축가로서,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삶과 철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원로, 중견, 신진 건축가 분들을 찾아 뵙고 수많은 의견을 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모두가 공감한 것은 이 시대에 자기만의 건축 철학을 지켜나간 건축가의 본보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건축뿐 아니라 예술 전반에서 자기 삶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해볼 계기가 되기를 바랐어요. ‘Find Originality(파인드 오리지널리티)’—유동룡 미술관의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Q. 건축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도 아버지와 관련이 있으셨을까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현장에 자주 다녔어요. 한국말이 서투르셨던 아버지를 위해 통역도 했고요. 천상 예술가셨던 아버지는 흔히 생각하는 ‘아버지상’과는 달라서 서운했던 적도 있지만,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는 분을 보면서 저도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건축이 현장에서 실제로 구현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고, 다음 현장이 기대됐죠. 하지만 아버지는 제가 건축의 길을 가는 걸 반대하셨어요. 너무 고생스럽고 험한 길이라는 이유에서였죠.

그래도 대학 졸업 후 ‘작가성’을 더 키우고 싶다는 갈망이 커서 뉴욕으로 유학을 갔어요. 3년간 현지 사무소에서 일하다 9.11 테러를 겪고 귀국하게 됐죠. 그제서야 알게 됐어요. 제가 너무나 특별하게 여긴 아버지 같은 건축가는 사실 흔치 않다는 걸요. 상업적인 흐름을 따라가기보다는 자신의 철학을 지키셨고, 그래서 명성은 얻었지만 돈은 벌지 못하셨어요. 세계적인 이타미 준이었지만, 제 어린 시절은 가난한 기억이 많았어요.


Q. ‘이타미 준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셨나요?

30대 때는 정말 내 이름, ‘유이화’로 불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 제 이름으로 맡은 프로젝트가 ‘포도플라자’였죠. 지금은 리노베이션되어 아쉽지만, 당시 건축주도 만족했고 ‘아름다운 건축물’로도 선정됐어요. 그런데 지금 보면 창피할 정도로 후회가 많아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이타미 준의 딸이지 누구 딸이겠어요. 물질적 유산은 아니지만 정신적 유산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금수저라고 자부합니다.


Q. 건축가님만의 철학은 어떤가요?

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50이 넘으니 건축이 재미있고, 60이 넘으니 건축이 뭔지 알겠고, 70이 넘으니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보이더라”고요. 저도 이제 건축 22년차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에게서 받은 철학을 바탕으로 하지만, 건축은 시대성과 호흡해야 한다고 믿어요. 제 라이프타임보다 오래 남을 수 있는 것이 건축이기에 그만큼 사회적 책임도 무겁게 느끼고요. 그 안에 저만의 미적 감각을 녹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요즘 건축이 마주한 시대정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지속 가능한 건축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어요. 건축이 전 세계 탄소배출량의 약 30%를 차지하거든요. 시멘트 건축뿐 아니라 철거 과정에서도 폐기물이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이걸 인식하고 나서는 ‘어떻게 하면 탄소를 줄이면서 건축할 수 있을까’를 공부하게 됐죠. 최근엔 목조건축에 주목하고 있어요. 나무는 탄소 저장량이 많기 때문이에요. 오래된 나무는 산소 배출도 줄어들기에 베어주고 새 나무를 심는 순환이 필요하죠. 2023년에 DDP 에서 열린 '서울디자인'에서 총괄 큐레이터로서  산업폐기물 0%를 목표로 ‘제로웨이스트 파빌리온’을 설계하기도 했어요. 전시 후 전량 재활용이 가능하도록 계획했습니다.


Q. ‘이화’라는 이름과 이화여대와의 인연도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아버지가 제가 이화여대에 가길 바라셔서 ‘이화’라는 이름을 지으셨어요. 말을 잘 듣는 딸은 아니었지만, 그 바람은 꼭 들어드리고 싶었죠. 그런데 제가 93학번이라 입학 당시에는 건축과가 없었어요. 결국 실내환경디자인을 전공하게 됐죠. 첫 수업 시간마다 교수님이 “부모님이 이화여대 보내시려고 이화라고 지으신 거니?”라고 물으시곤 했어요. 그게 싫어서 개강 첫 수업 들어가기 싫었던 기억도 나요. 그래도 목련이 필 때쯤 되면, 캠퍼스의 그 아름다움이 떠오르고 참 행복했던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화에서의 시간은 제가 건축가로 성장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됐어요.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했고요. 이번에 건축가협회상 수상자 7명 중 제가 유일한 여성 건축가였는데, 같은 날 열린 대학생 건축 공모전 수상자는 8명 모두 여성이더라고요. 이제 건축계도 여성의 시대가 올 거예요. 건축 현장은 오케스트라처럼 많은 사람을 이끄는 자리인데, 여성의 공감 능력과 소통 역량이 크게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배 이화인들도 다양한 교양과 세상과의 교류를 통해, 따뜻한 감성과 자신만의 세계를 갖춘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