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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뉴스

[이화투데이] 이화인이 만난 하버드

  • 작성처
  • 등록일2009.08.26
  • 18251
하버드생과 이화인, 본교 교류학생들이 함께 한달간 함께 생활하며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에 대해 공부한다. 하버드대 교수와 조교가 직접 강의하며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지고, 함께 지방유적지로 필드트립(Field Trip)을 떠나기도 한다.




 

하버드생 14명과 이화인 11명, 본교와 학점교류중인 타대학생 5명이 한달간 함께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에 대해 공부한다. 하버드대 교수와 조교가 직접 강의하며,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지고, 함께 지방유적지로 필드트립(Field Trip)을 떠나기도 한다. 학생들은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기숙사에 머무르며 여가 시간을 같이 보낸다.

이 꿈만 같은 ‘사건’이 지난 6월 29일부터 4주간 이화에서 실현됐다. 지난 2006년 개설된 국내 유일의 하버드 공동 계절학기인 ‘이화-하버드 썸머 스쿨’이 바로 그 주인공. 올 여름 하버드생과의 만남을 직접 가졌던 강지혜씨(영문·07)에게 그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학교 공지사항을 확인하다가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공고를 보는 순간 ‘하버드생’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썸머 스쿨의 주제가 ‘한국 고대사와 고고학’이었는데 저에게는 ‘역사’가 그렇게 재미있는 과목이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외국인이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역사가 궁금해졌고 더욱이 주제가 조선시대 이후가 아닌 고대사 연구라는 점이 매력적이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지원을 할 때 학점이나 영어 성적을 요구하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지원서와 State of Interest 제출, 그리고 면접을 거치는 까다로운 과정을 밟아 나가다 보니 개인의 실력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 같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교환학생이나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은 없어요. 혼자 테이프를 들으며 말하는 연습을 많이 했고, 영문과이다 보니 원서를 자주 읽은 것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인 대부분은 말 하기 전 머릿속으로 문법 구조를 쫙 정리하잖아요? 그것 보다는 일단 내뱉고 보는 자신감이 중요하답니다.



수업은 두 시간으로 진행돼요. 한 시간은 교수님이 PPT 화면을 바탕으로 강의 하시고, 나머지 한 시간은 교수님과 학생들이 함께 토론을 합니다. 토론에 참여하려면 미리 방대한 양의 책을 읽어서 준비해야 해요. 특히 우리나라 학생들이 토론 시간에 한 번 발언권을 잡으면 30초 정도 밖에 말을 하지 않는다면 하버드생들은 몇 분이고 계속 말을 했습니다. 교수님은 그 내용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전부 듣고, 메모한 뒤 즉각적인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또 하버드생은 아무리 사소하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의견이라도 꼭 발표 했는데 이런 수업 방식이 처음엔 낯설기도 했지만 나중엔 오히려 좋아서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토론이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교수님들은 하버드생과 이화인간의 언어차이나 수업방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우리를 많이 배려해주셨기 때문에 수업이 진행될수록 이화인들의 수업 참여 역시 급격히 증가했답니다.

또 페이퍼를 과제로 내야 했는데 조교 선생님께서 영어로 글쓰기가 어색한 한국 학생들을 위해 감사하게도 두 번이나 워크샵을 따로 마련해주셨어요. 교수님과 조교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페이퍼 주제를 정할 때 함께 의논해 주시기도 하고 성적이 나온 뒤에도 제 글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첨삭해주셔서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었답니다. 특히 조교 선생님은 러시아인이셔서 영어로 글쓰기에 있어서 외국인의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아시고 도와주셨어요. 그 덕분에 성적도 나날이 좋아질 수 있었고 시험을 위한 글쓰기가 아닌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울 수 있었던 정말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룸메이트와 같이 생활을 하다 보니 불편한 점이 있긴 했지만 좋은 점이 훨씬 많았습니다. 과제를 하기 위해 밤을 샌 적이 많은데 그 때마다 룸메이트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에세이를 썼어요. 이른바 ‘노동요’인 셈이죠. 과제를 하다가 잠이 들면 서로 깨워주기도 했고요. 혼자 했다면 힘들었을 공부가 룸메이트와 함께여서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 번은 하버드 친구들과 기숙사 세미나실에서 경비 아저씨 몰래 007작전을 펼치면서 중국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먹고 난 후에는 또 밤새 과제를 했답니다.



우리에게는 어려서부터 배웠기에 너무나도 당연한 한국 역사가 제3자의 눈에선 다르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들은 발해가 고구려 땅이 아닐 수도, 고구려가 우리나라의 역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역사가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서술되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처음엔 기분이 상해서 한국 학생들이 모두 표정이 굳어 있었는데, 나중에는 우리 학생들도 논리적인 의견을 내면서 그들과 함께 생산적으로 토론하는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강의실 수업뿐만이 아니라 주말에 공주·익산·경주에 Field Trip을 가기도 했어요. 그 곳에서 박물관을 방문하기도 하고 지금도 진행 중인 발굴 현장에 가기도 했는데 하버드 친구들은 발굴 현장에 있는 도자기 조각을 신기하다며 주워가기도 했어요. 또한 그들은 경주의 고분과 안압지의 거대함을 보고 신기해하며 교수님께 질문도 많이 했어요. 한 친구는 수업의 마지막 페이퍼를 한국 사람과 도자기의 상관관계에 대해 썼답니다.

썸머 스쿨의 이번 수업 주제는 ‘고대사와 고고학’이었지만 거기에만 그치지 않고 고대사와 고고학이 현대 한국인의 문화·사회·정치에 미치는 영향 또한 배웠어요. 예를 들어 단군신화의 경우 하버드생들은 처음에는 “한국인은 단군신화를 믿는가”, “단군신화를 진짜라고 가르치는가”라며 의심스러워 했지만 점차 일제 강점기 등 한국 역사의 특수성을 알아가면서 신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이해하더라고요.



한국의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저는 하버드생은 우리와 많이 다를 줄 알았어요. 책 읽기만 좋아하는 천재들인 줄 알았죠. 그런데 제가 만나 본 하버드 친구들은 우리와 정말 비슷했어요. 교수님께 성적에 시험과 과제 반영 비율이 몇 퍼센트인지 질문하거나 성적 고민도 많이 하며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고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들이 하버드생인 것이 서류 심사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하겠지만, 면접장에 들어가면 똑같다는 등 경제 불황으로 인한 취업난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모습에 이화인과닮은 점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노는 것도 정말 좋아해요. 아침밥은 기숙사에서 먹지만 점심·저녁은 알아서 해결했기 때문에 만나서 서울구경도 하고 ‘맛집’도 찾아갔어요. 특히 그 친구들이 떡볶이, 불닭, 동동주 같은 우리나라 음식을 정말 좋아했고 학교 앞 ‘시골밥상’은 반찬을 무한대로 준다고 좋아 하더라고요. 또 밤에 노래방을 자주 갔는데 소녀시대 원더걸스, 2PM 노래도 후렴 부분을 정말 신나게 잘 불러요. 버스에서 같이 이동할 땐 입 벌리고 자는 모습을 찍기도 하고…. 장난치는 것도 정말 우리나라 학생들이랑 똑같아요.



이번에 온 하버드생 중에 한국계미국인 여학생이 있었어요. 그 친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을 ‘한국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해요. 한국과 연관되는 것도, 한국인도, 한국어도 모두 싫었다고 해요. 자신을 ‘미국인’이라고만 생각한 거죠. 그랬던 친구가 부모님의 강요로 이번 썸머 스쿨 프로그램에 참여해 이화인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을 만나고, 한국 음식도 먹고, 한국 문화와 역사도 배우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요.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을 빨리 떠나고 싶어 제일 빠른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떠날 때가 되니 너무 아쉬워하더라고요. 호스트인 제 입장에서는 그 친구의 변화를 보면서 무척 뿌듯했습니다.

또 하버드 친구들은 하버드 대학 열람실은 우리 학교처럼 기계로 좌석을 뽑는 시스템이 아니라며 ECC 열람실을 보고 신기해하기도 했고, 우리학교 도서관이 방대한 자료를 갖고 있다며 놀라기도 했어요. 한 친구는 서툰 한국어로 짧은 에세이를 썼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옷을 정말 예쁘게 입는다고 칭찬하기도 했답니다. 무엇보다 국제대학원 관계자분들께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잘 짜주시고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 신경써주셔서 이화인은 물론 하버드생, 타교생들까지 모두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어요. 다른 학교 친구들도 이런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프로그램을 우리학교에서 진행한다는 것에 대해 많이 부러워해서 내심 자랑스러웠답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 ‘역사’ 하면 달달 외우던 것 밖에 기억 나지 않아요. 그랬던 역사를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정말 넓고 심도 있게 배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를 위한 역사가 아닌 역사를 통해 현대 사회, 문화, 정치를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어요.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양을 배운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기회였고 즐거운 추억입니다.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접해본 것도 정말 좋았습니다. 강의 이외에도 하버드 친구들과 교수님, 그리고 조교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죠. 지금도 그들과 연락하고 있고, 미국으로 놀러 오라는 초대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혹시 영어 실력으로 인해 ‘이화-하버드 썸머 스쿨’ 지원을 망설이는 이화인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일단 시작하라”고 말입니다. 후배님들은 특히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이번에 온 하버드생 대부분은 아직 전공도 전해지지 않는 1·2학년이 대부분이었어요. 그 친구들을 보니 좀 더 일찍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영어를 못한다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하버드생과 이화인이 같은 배경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원서작성과 면접 준비를 성실하게 한다면 기회는 잡을 수 있답니다. 특히 우리 이화인들은 어딜 가도 잘 적응하고, 잘 어울리니까 잘 할 수 있을 거에요. 더 많은 이화인들이 ‘이화-하버드 썸머 스쿨’에 참여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