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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뉴스

이화, 88달러에서 시작된 기적

  • 작성처
  • 등록일2009.06.16
  • 15835
스크랜튼 선생 서거 100년을 맞이한 올해, 이화의 창립정신과 역사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재미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민진씨는 '126년 묵은 사랑의 빚 88달러'란 기고문을 통해 '고작 컴퓨터 한대 값'의 기부로 시작해 세계 최대의 여자대학으로 성장한 이화의 역사를 되짚으며,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은 조선일보 아침논단(조선일보 2009년 6월 12일자)에 실린 기사 전문이다(사진은 홍보과에서 첨가).

- 관련기사보기(조선일보 2009년 6월 12일자)


126년 묵은 사랑의 빚 88달러
고작 컴퓨터 한대 값이 오늘의 '이화'를 키워냈다면 당신은 믿으시겠는가
한국도 이젠 계몽의 씨앗을 뿌리는 채권자가 되어 그 빚을 갚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화여대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러 서울에 왔다. 나는 이화여대 동문이 아니다. 하지만 프랑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디자인한 현대식 지하 캠퍼스와 1930년대 지은 석조 건물이 어우러진 캠퍼스를 걷다 보면 뿌듯하고 기쁜 마음에 사로잡힌다.

이 아름답고 웅혼한 캠퍼스의 여자대학은, 출발은 미약했다. 1883년, 루신다 볼드윈 여사가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 조선의 여성 교육을 위해 써달라고 미국 감리교회에 88달러를 기부했다. 1886년, 미국 최초의 여성 선교사인 스크랜튼 여사는 서울 정동 초가집에서 오갈 데 없는 고아 소녀 한명을 받아 이화학당을 열었다. 이 보잘것없는 출발에서 한국 최초의 여의사, 한국 최초의 여성 박사, 한국 최초의 여성 대학총장, 한국 최초의 여성 판사, 한국 최초의 여성 총리가 나왔다.

'이화'를 생각한 것은 얼마 전 도쿄에서 열린 '도서실'(Room to Read)이란 단체의 자선행사에 갔을 때였다. 존 우드라는 미국인이 1998년 창립한 이 단체는 네팔과 스리랑카, 베트남에 여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마케팅 임원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던 우드는 네팔에 트레킹을 갔다가 학교 도서실이 텅 빈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린이 책 3000권을 모아 네팔에 보냈다. 이듬해 그는 아예 회사를 그만두고 방글라데시와 네팔, 스리랑카, 베트남, 잠비아 등에 어린이도서관과 학교를 짓는 일에 뛰어들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는 7억7000만명의 문맹자가 있다. 이들 중 3분의 2는 여자들이다. 지금 아기를 키우는 엄마이고, 또 다음 세대의 엄마가 될 사람들이다. 존 우드의 '도서실' 운동은 이런 가난한 나라의 여자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아이 한명이 1년간 학교 다니는 데 한국 돈으로 31만5000원이 든다. 우선은 문자 해득력을 갖추는 것이 1차 목표이지만, 세계의 진보를 위해, 또 여성 지도자의 육성을 위해 더 높은 교육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도쿄 모임에서 들은 이야기다.

방글라데시의 아시안여자대학(Asian Uni versity of Women)은 바로 그래서 생겼다. 오는 8월 첫 입학생 129명으로 출범하는 이 학교는 골드만삭스의 투자연구소장이자 세계적인 금융전문가인 캐시 마쓰이가 발의했다. 농부의 딸로 태어난 마쓰이는 '우머노믹스(womanomics)'란 말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는 여성들이 교육받고 직업을 갖게 되면 중요한 진보가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마쓰이와 함께 아시안여자대학을 설립한 카말 아흐마드는 "여성 교육이야말로 사회적, 경제적 변화를 불러오는 가장 효과적 방법"이라고 외치며 지난 수년 동안 이 대학을 세우기 위해 용감하게 싸웠다.

1883년 루신다 볼드윈 여사가 헌금한 88달러는 오늘날의 화폐 가치로 약 150만원쯤 된다. 아시안여자대학이 데스크톱 컴퓨터를 한대 살 수 있는 돈이다. 126년 전, 볼드윈 여사는 스크랜턴 선교사를 후원했고, 스크랜턴 선교사는 조선이라는 낯선 나라에 와서 오늘날 수십만배의 열매를 거둔 여성 교육의 첫 씨앗을 뿌렸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지금 서울 마포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 평생을 한국의 여성 교육에 바친 그가 오늘날 한국의 문자 해득률이 98%가 넘는다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쁠까. 볼드윈 여사의 투자는 현명했다. 한국 여성에 대한 투자는 놀라운 것이었다. 우머노믹스가 작동한 것이다!

도서실 프로그램과 아시안여자대학 지원재단은 꽤 알려졌을 뿐 아니라 현지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안정한 정부와 정권 교체, 여성 교육에 폭력적으로 반대하는 종교 원리주의자, 글로벌 경제위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안여자대학의 첫 학생들은 네팔과 인도,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출신이다. 회교·힌두교·불교·기독교 등 이들의 종교도 문화도 다르지만, 가난과 어둠을 헤치고 나갈 횃불을 켜들기 위해 왔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슬프게도 이 나라들은 100년 전 조선과 비슷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배움을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 한국이다. 세계무대의 지도자를 키워내는 데 꼭 알맞은 곳도 한국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야말로 가난한 이웃의 고통스러운 열망을 지원하는 데 꼭 맞는 사람들일 것이다. 오래전 볼드윈 여사의 88달러 빚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다. 한국은 자유와 계몽의 씨앗을 뿌리는 선의의 채권자가 됨으로써 이 빚을 갚을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은 우리의 미래 교역 상대이며 지구촌 형제자매로 친구가 될 사람들 아닌가.

-조선일보(2009년 6월 12일자) 재미작가 이민진 씨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