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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제17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 수상자 유중근, 신혜수 동문

  • 등록일2019.07.11
  • 4117

|이화소식 이화 DNA 인터뷰

‘제17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 수상자 유중근, 신혜수 동문

 

본교는 올해 창립 133주년을 맞이해 ‘제17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으로 유중근(영어영문학·67졸, 사진 좌), 신혜수(영어영문학·72졸) 동문을 선정했다. 오랜 시간 우리 사회의 낮은 곳을 향해 나눔과 섬김의 이화정신을 실천해 두 동문을 <이화소식>이 만났다.


Q. ‘제17회 자랑스러운 이화인상’을 수상하셨는데, 감회가 어떠신지요?

유중근: 주변에 이화를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일하시는 귀한 분들이 많이 계신데 나에게 ‘자랑스러운 이화인’이 어울리는 옷인가 하는 어색하고 부족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더 열심히 살라는 큰 격려와 응원으로 생각하고 다시 마음을 모으겠습니다.

신혜수: 과분한 상을 주신 모교에 감사드리며, 늘 많은 자극을 주시고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키워주신 이효재 전 사회학과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늦은 귀가와 잦은 해외출장에도 불평하지 않고 격려해 준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대한적십자사 최초의 여성 총재, 유중근 동문|

Q. 1998년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대한적십자사와 인연을 맺고 다양한 사회봉사 활동을 펼쳐오셨는데 그 원동력이 궁금합니다.

유중근: 대가족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동체 의식, 희생과 봉사에 대한 생각을 키우게 됐는데, 대한적십자사와 인연을 맺으며 ‘사랑의 마음으로 행동하는 봉사’라는 기본 정신이 참 좋았고, 그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웃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공감하는 봉사자들과 함께하면서 생각이 점점 넓어지고 한층 성장했었습니다.  나눔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경험이었기에 오늘까지 이어진 것 같습니다.

 

Q. 2011년 대한적십자사 최초의 여성 총재로 재직하면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와 같은 대북사업부터 의료사업, 사회봉사, 재난구호 등 많은 사업들을 펼치셨습니다. 기억에 남는 활동은 무엇이고, 여성리더로서 어떤 노력을 하셨는지요?

유중근: ‘희망은 공감입니다’라는 말처럼 한 사람의 봉사도 소중하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하는 플랫폼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과 함께, 국민 속으로 들어가는 적십자를 구현하기 위해 ‘나눔 사업’을 새로 시작했고, ‘희망풍차 프로젝트 솔루션 프로그램(사회봉사)’, ‘희망진료센터(적십자병원)’, ‘300만 헌혈 캠페인(생명나눔)’ 등의 플랫폼으로 구체화했습니다. ‘희망풍차’ 프로젝트는 취약계층을 위한 안전 보호체계이자, 우리나라의 시민정신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리더십의 본질은 내가 섬기는 공동체나 기관을 위해 노력한다는 의미에서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첫 여성 총재로서 봉사활동의 경험을 토대로 구성원들이 서로 존중하며 유기체처럼 그 기능을 잘 할 수 있도록 격려했습니다. 권위가 아닌 소통으로, 이해될 때까지 기다리면서 현장 관계자들이 요구하는 바를 섬세히 듣고자 했습니다.   


|실천적 인권운동가, 유엔인권정책센터 상임대표 신혜수 동문| 

Q. 1991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첫해부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에서 활동하신 이래 40년간 여성 권리 향상을 위해 앞장서 오셨습니다. 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고, 어떤 어려움들을 겪으셨는지요?

신혜수: 재학시절 ‘이대학보’ 기자 활동을 거쳐, 4학년 때 이념 써클 ‘새얼’의 창립회원으로 버스 여차장들의 생활을 취재했었습니다. 당시에 소위 ‘삥땅’을 방지한다는 명목 하에 여차장들이 일상적으로 몸수색을 받고, 잠재적 도둑으로 모욕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 처음 여성 인권 문제를 접한 계기였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 이효재 선생님의 권유로 한국여성유권자연맹에 간사로 취직하며 여성 인권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유신정권 시절이라 늘 담당 경찰과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습니다.

 

Q. 2001년~200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 2011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인 최초의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 위원’등 세계 여성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힘써오셨습니다. 글로벌 리더로서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신혜수: 제가 무엇이 되려고 했다기보다는 시대적 상황에서 제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 것뿐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유엔에 제기하는 일이 제게 과제로 주어져 유엔에 가서 호소하다보니 유엔 인권시스템을 배우게 되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 진출을 제안 받았습니다. 이후 유엔 인권시스템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일하게 되었습니다.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한국사회가, 또 국제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 있어야겠지요. 그에 대한 전문성을 기른다면 자연히 국제적으로 연결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영어는 필수입니다.

 


 

Q. 두 분은 재학시절 어떤 학생이셨나요? 이화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유중근: 제가 학교를 다니던 때는 진흙마당인 교정을 걸으면 구두 뒤축 구멍이 새겨졌던 먼 옛날의 이화였습니다. 1964년 당시 대학가는 군사정권의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져 휴교령(6.3사태)이 떨어지기도 했었습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 됐을 때, 총학생회장으로서 일본어선을 막고 우리나라 바다를 지키는 경비정을 만들기 위해 모금을 주도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화 80주년을 기념해 총학생회와 교수님들이 교정에 배나무 100그루를 심었던 것도 잊지 못할 추억입니다.   

신혜수: 이대학보 기자시절, 학생들의 안보의식을 조사하려고 했는데 주간교수님께 허락을 받지 못해 동기들과 파업을 벌였던 일이 있습니다. 제가 활동하던 서클 ‘새얼’이 비판적이라 하여 회보발간도 금지되고 이름도 ‘새날’로 바꿔야했던 적도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을 쭉 연결해 보니 저는 기존 체제에 순응하기보다 반항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군요.

 

Q. 이화의 선배로서 이화 구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당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중근: 여러분의 인생에서 학창시절은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많이 공부하고, 친구들과 사귀고, 경험을 누리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상 ‘자랑스러운 이화’를 만들기 위해 한 몸 공동체가 되어 함께 이루어 가길 바랍니다.

신혜수: 이화의 존재 이유는 여성을 사회적 리더로 길러내는 일입니다. 지금 시대의 진, 선, 미가 무엇일지 토론하고, 이에 맞는 여성리더를 길러내는 것이 사명이겠지요. 후배 학생들에게는 “열심히 동아리 활동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후회 없이 공부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 이화소식 2019 여름호(Vol.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