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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심리치료사, 김지은 동문 인터뷰

  • 등록일2018.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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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인 여러분은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을 혼자 견디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홀로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각종 법안 마련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및 가정폭력은 해마다 증가하여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들을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해바라기센터’는 지금도 내담자들을 지원하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해바라기센터에서 근무하며 폭력 피해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힘썼던 김지은(심리학과·05) 동문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김지은 동문은 해바라기센터에서 경험한 성폭력 피해 심리치료와 내담자들의 치료 과정을 수기를 작성해,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용기를 내지 못했던 분들이 계시다면, 오늘의 만남을 통해 조금이나마 용기와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은

Q. 안녕하세요. 우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심리학과 05학번 김지은입니다. 2010년도에 학부를 졸업한 뒤, 2013년에 석사를 졸업해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 박사로 다시 입학했으니, 거의 10년 넘게 이화에 머물러 있네요(웃음).   

  

Q. 현재 동문께서는 어떤 연구를 진행하고 계시나요?

A.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여러 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주로 성폭력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요. 성희롱이나 데이트 폭력까지 관심을 갖고 다루고 있죠. 최근, 회사나 학교 같은 큰 단체 안에서 성폭력이나 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조직 차원에서 덮어버리는 일이 자주 있는데요. 사건보다도 조직의 대처 때문에 사람들이 더 충격을 받고 후유증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비슷한 경우들에 대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성폭력 및 가정 폭력 피해자의 상담과 지원을 위해 만들어진 ‘해바라기센터’의 우수지원 사례 공모전에서 여성가족부 장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특별히 해바라기센터, 혹은 성폭력 및 가정폭력 피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저는 '트라우마 연구'에 관심이 있어서 석사 과정에서는 트라우마 연구실에 입학했어요. 트라우마에는 굉장히 종류가 많잖아요. 최근에는 지진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가 있었고, 삼풍백화점과 같은 큰 재난으로 이어진 트라우마도 있었고…. 트라우마의 여러 종류 중에서도 저는 대인 간의 폭력이나 범죄 피해에 의한 트라우마에 관심이 많았어요. 겉으로 봤을 때는 티가 잘 나지 않지만, 정상적으로 잘 살아오던 사람이 큰 충격을 받으면 이후 삶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갔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성폭력으로 연구 분야를 한정하려던 건 아닌데, 기회가 잘 맞아 해바라기센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성폭력이라는 주제는 오래된 주제라고 생각했었고, 해바라기센터 또한 개소한 지 꽤 됐는데, 겪어보니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사회적 인식 때문에 연구가 부족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다가, 성폭력 피해자 치료에 도움이 되고 싶어 제 연구 분야를 이쪽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Q. 해바라기센터에 근무하며 내담자들과 직접 만나 심리치료를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센터 내에서 근무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해바라기센터에 내원하시는 분들이 굉장히 많아요. 성폭력은 피해자의 10%도 신고하지 않는 암수범죄라고 하잖아요. 그런데도 1년에 내원하시는 분이 1200명에 임박할 정도였어요. 주변에 없는 것 같지만 내원하는 분들의 수를 보면 성폭력과 가정 폭력이 정말 흔하게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처음 입사할 때는 주변에서 ‘성폭력 신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 ‘할 일이 있긴 하냐’, ‘노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막상 근무해보니 하루에도 많은 내담자들이 방문하셨어요. 오시는 분들마다 ‘주변에서 이런 경우를 들어본 적 없다’, ‘나 같은 피해자가 또 있냐’고 물어보시거든요. 그때마다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이 센터에 온다고 말씀드리니까, 거기서 위안을 얻으시더라고요. 다른 내담자들의 비슷한 고통에 공감하다가, 나중에는 세상에 이렇게 많은 성범죄가 발생하는데 TV에서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는 사실에 분노하기도 하세요.

해바라기센터에서는 피해자분들의 재판 준비를 도와드리기도 해요. 정말 놀랍게도 재판에서 가해자들은 어디서 똑같이 배워온 것처럼 교본을 읊어요. 술에 취해있었다거나, 몰랐다거나, 상대방이 유혹을 했다거나…. 요즘에는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피해자들에게 좋은 판결이 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피해자는 두 번, 세 번 고통받게 되죠. 재판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심리치료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서도 보완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돌아보니 내담자 한 분 한 분의 이야기가 소중했어요. 많은 분들이 점차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본인만의 세계를 보여주시는데, 그게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아픈 일 때문에 내담자로서 상담에 온 것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 이 사람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을 종결할 때는 항상 아쉽고 힘들죠. 

  

Q. 심리학은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연구하는 분야인 만큼 많은 고충이 있으리라 생각되는데요, 심리치료나 관련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힘드셨던 점은 무엇이 있었나요?

A. 트라우마는 심리치료만 잘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인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재판, 가족들의 지지, 소문 등의 많은 요소들이 트라우마에 모두 영향을 주는데 심리치료실 안에만 머물며 치료하는 게 진정한 심리치료사의 역할인가 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또, 트라우마 연구나 치료를 위해서는 내담자들의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에 대해 질문할 수밖에 없는데, 고통받고 있는 분들께 연구를 위해 트라우마 경험을 물어보는 것이 죄송스럽기도 하고, 이로 인해 이후에 더 큰 후유증이 생길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요. 이런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많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내담자와 '래포(rapport)'를 형성하는 동문만의 방법이 있나요? 혹은 심리치료에 있어 본인만의 철학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A. 제가 따뜻하고 다정한 편은 아니지만 개방적인 편인 것 같아요. 내담자분들 중에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이렇게 얘기하면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실까?’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런 내담자분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다 좋아요. 상담 시간은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일뿐더러, 저는 개방적인 편이어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크게 싫다거나 거슬린다는 생각으로 내담자를 재단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의 이런 가치관 때문에 내담자분들을 만날 때 수월한 부분이 많죠. 비행청소년의 경우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가정 안의 아동 학대와 같은 문제들이 아이들을 비행청소년으로 내모는 경우가 많은데, 가정 내의 문제는 드러나지 않고 아이들의 비행행위만 문제로 삼는 게 대다수에요. 비행행위들로 안 좋은 낙인이 찍힌 아이들은 상담에서도 매우 방어적인 태도를 일관하거든요. 그럴 때 저는 오히려 편하게 다가가요. 이 친구들을 더 알고 싶기 때문에 마음을 열고자 많이 노력하죠.

김지은

Q. 학부 재학 시절 동문께서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A. 저는 정말 말썽꾸러기였어요(웃음). 입학할 때부터 내가 심리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확실하게 했는데, 심리학이 왜 하고 싶냐는 질문을 받으면 답변은 막연했어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였죠. 그전부터도 장편소설을 읽으며 등장인물들의 마음이라든지 그 사람의 역사를 알아가는 게 좋았거든요. 막연하게 심리를 더 알고 싶다는 마음으로 입학을 하고 보니, 심리학이라는 큰 틀 안에 세부 전공이 많더라고요. 미국 심리학회는 분과가 70개가 넘기도 하고. 우리 학교만 해도 ‘상담’, ‘발달’, ‘측정’, ‘인지’, ‘소비자’까지 다섯 개의 세부전공이 있어요. 배우는 건 재밌었지만 그중에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고민됐고, 졸업하고 무슨 일을 할지 상상도 잘 안됐죠.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짜인 시간표대로 생활하다가 갑자기 주어진 지나친 자유가 부담스러웠어요. 아무도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주지 않고 혼자서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워서 회피하고 싶기도 했죠. 그래서 정리해서 나아가지 못하고 이쪽저쪽으로 충돌했던 것 같아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죠. 

그래도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났어요. 사실 입학하기 전에는 이화에 대한 편견이 많았는데요, 이대생들은 도도하고 까칠해서 친해지기 힘들 거라는 말들을 많이 듣고 왔죠. 그런데 입학 후 새터에서 선배들을 처음 만났을 때 생각과 달라서 많이 놀랐어요. 제가 들어왔던 것과 달리 언니들은 아주 따뜻했고 배려심이 넘치는 분들이었죠. 또 굉장히 멋있기도 했어요. 다들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당당하게 자신을 피력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언니들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내밀한 자신의 생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이화 친구들과 함께일 때 훨씬 더 수월했고, 그러다 보니 이화 안에서 나에 대해 더 잘 알아가게 된 것 같아요. 

 

Q. 학부생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나요?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A. 사회과학대학 새내기 배움터에서 있었던 일이 인상 깊었어요. 입학하고 처음 새터에 갔더니 대뜸 성교육을 하는 거예요. 언니들이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로 피임 기구를 보여주는데, 피임 기구에 그렇게 종류가 많은지 처음 알았고, 피임약에 무슨 종류가 있는 지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언니들이 ‘이건 알아둬야 해. 곧 필요할 거야’라며 설명해주는데, 이런 주제에 대해서 내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랐어요. 또, 연인 관계에서도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잖아요. 미리 이런 것들에 대해 배우고 인지할 수 있는 상태였기에 ‘이건 이상하다.’ 혹은 ‘옳지 않다’라는 것을 더 빨리 알아차렸던 것 같아요. 다른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해보면 상대적으로 좀 더 늦게 인지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담자를 만났을 때도 성교육이 미흡하다는 생각에 안타까웠던 적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대학 입학하자마자 정말 필요한 교육을 받았구나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요, 

또, 대학교 4학년 즈음에 심리학과 안현의 교수님의 특강을 들었는데요, 그때까지는 안현의 교수님이 트라우마 관련 연구를 하신다는 것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강연에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교수님의 모습이 참 인상 깊어 처음으로 교수님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보통 재난 현장에는 전도하는 사람부터 취재를 위한 기자들까지 온갖 사람들이 다 들어와 있어요. 재난 피해자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고 안정을 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여러 가지 부스가 난입해있고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 때문에 피해자들을 만나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는 트라우마 재난 현장 개입이라든지 트라우마 치료에 있어 불모지였는데, 안 교수님께서 이 부분에 대해 정리를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어요. 대구지하철참사 때도 안 교수님께서 전문적인 트라우마 치료를 하고자 재난 현장에 대학원생들을 이끌고 개척자처럼 들어가셨다고 해요. 그 당시 매일 아침 힘을 내기 위해 도장을 파서 이두박근에 “I am a warrior"를 새기고 현장에 나갔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순간에 교수님께 홀딱 반했죠. 그 후에 교수님 밑에서 학부생 인턴으로 일하다가 석사로 입학하게 되었으니, 그 강연이 지금의 저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네요. 

 

Q. 본인에게 있어 이화 DNA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사실 이화에 입학할 때는 별생각이 없었었는데, 입학하고 난 뒤에 '이화에서만 배울 수 있는 게 있구나'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용기나 자립심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지만, 무엇보다 ‘나’라는 한 사람에 대해서 온전히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가장 커요. 어떤 프레임 안에도 갇히지 않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찾게 해주는 것 말이죠. 내키는 대로 입고, 행동하고, 당당하게 원하는 것들을 쟁취해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멋있었어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제 역할을 맡아서 하기 힘든데, 이화에서는 그게 뭐든지 가능했다는 점도 너무 좋았어요. 이화에서의 시간들이 훗날 사회에 나와서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부탁드려요.

A. 내원하시는 분들에게도 늘 드리는 말씀인데, '자신을 좀 더 신뢰하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요새 스스로의 느낌을 부정하고 불신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대인관계나 연인 관계에 있어서 뭔가 불편한 부분이 있더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타인에게 끌려가는 경우도 있고요. 상담을 하다 보면 ‘그러고 보니 그때 그게 이상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가끔은 피해가 정말 심각한데도 ‘내가 상대방을 더 잘 달래줬어야 하는데’하고 반성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한데도 다른 사람을 보다 우선시하는 경우를 보며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스스로의 직감을 믿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꼭 ‘나’를 믿어주세요. 다른 사람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도 괜찮다고, 나의 느낌을 믿으라고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상, 김지은 동문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성폭력 피해자와 트라우마에 대한 심리치료는 나아갈 길이 멀지만, 김지은 동문과 같이 범죄 피해자 심리치료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인재가 있어 밝은 청사진을 그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전보다 인식이 나아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성폭력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범죄의 책임은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려는 태도를 우리는 단호히 거부해야 해요. ‘내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라며 자신을 탓하지 마세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조금 더 나를 신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시완(융합콘텐츠·16), 최혜민(커뮤니케이션·미디어·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