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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한국 사회의 현실적인 여성을 그리다.<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동문(사회학·01졸)을 만나다

  • 등록일2017.12.04
  • 5805

페미니즘 입문서로 꼽히는 <82년생 김지영>, 모두들 한 번쯤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평론가들은 ‘막연하게만 겪어왔던 불편함을 구체적 이야기로 엮어내, 여성들로 하여금 불합리함을 깨닫게 하는 책’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신파도, 감동 실화도 아니지만 많은 여성들이 이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이 책이 현실을 너무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하이퍼 리얼리즘’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82년생 김지영>의 작기가 본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동문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조남주 동문(사회학·01졸)님과의 만남을 준비했습니다.


조남주


Q. 오랜만에 모교에 방문하셨을 것 같은데요, 소감이 어떠하신가요? 

학교에 와본지 6-7년 정도 된 것 같아요. 학생 때처럼 지하철을 타고 온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긴 에스컬레이터 타고 출구로 올라오는데 옛날 기억이 나서 너무 좋은 거예요. 예전에 학교 다닐 땐 캠퍼스에서 졸업생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여성들이 웃으면서 학창시절을 회상하는 것을 봤을 때 이해가 잘 되지 않았었는데요. 지금 제가 그때의 중년 여성의 입장이 되고 보니, 굉장히 재밌네요(웃음). 정말 좋더라고요.

 

Q. 동문님은 이화 재학 시절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학창시절에 어떤 활동을 뚜렷하게 했다고 할 수는 없고, 그저 평범하게 책을 읽고, 연애를 하고, 영화도 보고 했었어요. 저는 어렸을 때 문화적인 경험을 풍족하게 하지는 못했었는데요. 그래서 대학교에 와서는 책을 자유롭게 마음껏 보고, 동아리 행사 등에서 영화를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처음 만났죠.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간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할까요?

 

Q. 오랫동안 방송작가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를 그만두시고 소설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큰 이유를 꼽자면, 출산 때문이었어요. 방송작가는 밤샘 작업도 많고 일이 불규칙해서 주말에도 회사에 나가야 했기 때문에 육아와 병행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집에 있을 때 무언가를 쓰고 싶더라고요. 소설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이러한 장르를 많이 읽기도 했었고, 학부 때 국문과에서 소설 창작 과목을 듣기도 했어요. 그래서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소설가에 도전해봤죠. 공모전에 작품을 보내면서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언급이 많이 되는 것을 보면서 ‘아, 내 글이 그래도 소설처럼 보이나 보다.’라는 안도감에 계속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미소).

 

Q. 소설가로서 자리 잡은 현재의 삶이 이전과 어떻게 달라지셨나요?

첫 책이 2011년에 나왔고, 5년 정도 작품이 없었어요. 그래도 나름대로 계속 투고하고 공모전에도 냈었는데 이렇다 할 결과물로 나오진 않았어요. 하지만 저한테도 제 나름대로의 ‘마감’은 있었어요. 예를 들어, ‘8월에 있는 공모전에 내야지, 언제까지는 완성해서 투고를 해야지.’라고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원고 의뢰를 받아서 쓰는 경우가 많아져서 마감이 빠듯해졌다는 점(웃음)? 그 외에 생활에서나 마음가짐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아침에 아이 학교 보내고, 남은 시간에 글 쓰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다시 육아를 하고, 아이가 잠들면 그때 글을 쓰고……. 일상생활은 그대로예요. 지금 저에게 주어진 기회가 이전보다 많아졌을 뿐이지, 안정적으로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은 지금도 없어요. 그저 현재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조남주


Q. <82년생 김지영>이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까지 진행 중입니다. 페미니즘 열풍에 맞춰서 페미니즘 도서 입문서로도 많이 소개가 되곤 하는데요. 올해 출간하신 <대한민국 페미니스트의 고백>과 <현남 오빠에게> 역시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처럼 동문님이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아마도 다 비슷할 것 같아요. 2015년 정도부터 시작해서 페미니즘 관련된 논의들이 많이 나왔고, 미디어에서도 많이 언급되었죠. 저도 이런 것들을 마주하면서 이전에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자각도 생겼고, 여성 혐오적인 콘텐츠들도 많이 접하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점차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이니까 이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죠. 관련된 논의가 계속 커지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원고나 책을 기획하시는 분들도 많아졌고, 저 역시 활발하게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의 관심사와 사회적 분위기가 맞물리면서 같이 커나갔던 것 같아요.

 

Q. 앞서 동문님께서는 10년가량 방송작가로 일하시다가 육아와의 병행이 어려워 그만두셨다고 언급하셨는데요, 소설 속 주인공의 모습과 어딘가 많이 닮아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에는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많이 녹아있나요?

구체적인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제 경험이라고 딱 말할 수는 없지만, 비슷한 상황과 경험, 그리고 유사한 감정은 겪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어렵고 힘들다는 문제에는 공감을 하는 분위기인 것 같아요. 반면, 전업주부인 여성에 대해서는 그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그들이 어떠한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 자체가 논의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어요. 제가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이 현실에 대해 더욱 문제의식을 느꼈고, 그래서 김지영 씨를 주부로 설정했죠. 

 

Q. 김지영 씨의 삶에 대해 공감하며 변화를 보일 것 같았던 남자 의사가 결국 그대로였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이와 같은 책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긴 여운에 빠지게 했는데요, 이 결말이 의도적인 연출이었는지, 어떤 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썼던 초고의 결론은 ‘남성인 의사가 아무리 직업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김지영 씨의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하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이다.’였어요. 그래서 이를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의사가 김지영 씨에 관련된 보고서를 룸살롱과 같은 곳에서 읽고 있다.’ 등의 반전을 남길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김지영의 상담사로서 그의 아픔을 소상히 알고 있는 남성조차, 사실은 진정으로 공감하지 못하고 여전히 여성 혐오를 범하고 있다는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던 거죠. 

룸살롱까지는 아니지만 이러한 결말을 통해 환자로서의 김지영 씨의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자신의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사실은 소설 밖 현실에서도 남성은 ‘내 어머니, 아내, 딸의 일’처럼 자신의 가족 구성원이 여성으로서 겪는 일의 경우, 이해하려고 시도는 합니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이어도 여성을 사회에서 마주할 때는 이러한 이해가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는 의사를 통해 남성의 고정된 심리나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그려내고자 했습니다.

 

Q. 소설 속 주인공인 ‘김지영’은 82년생인데요, 그 후 세대인 92년생, 혹은 02년생 여성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다고 보시나요?

책을 읽은 독자분들이 인터넷 리뷰나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에서 ‘저는 9X년생인데, 저도 똑같아요.’라든지 ‘저는 고등학생인데 아직도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옷을 더 단속하고 차별해요.’와 같은 이야기들을 해주세요. 

최근 10여 년 사이에 경기도 워낙 악화되면서 약자에 대한 혐오 문화가 더 커지고, 인터넷에 검증되지 않은 개인 매체들이 많아지면서 여성 혐오적인 관행이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지금은 이전보다 제도적으로는 더 많이 보완이 되고 나아지고 있는데, 일상에서는 외모 품평을 당했다든지, 성희롱적인 발언을 들었다든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든지 하는 것들은 오히려 제가 어릴 때보다 심각한 것 같아요. 

하지만 여성 혐오라는 게 인지가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고, 점점 페미니즘 교육이나 페미니스트 교사의 필요성까지도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니까 아마도 이 암흑기를 지나면 지금의 어린 연령 세대는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현 제도뿐 아니라 현실에서의 문화나 인식들도 좀 더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Q. 미래에 <2017년생 김지영>이 출간된다면, 소설 속 주인공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우선 그때가 되면 ‘김지영’이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은 아니겠네요.(웃음) 2017년 김지영의 이야기는 ‘그냥 김지영의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떤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그 세대의 고민, 개인의 고민을 담는 이야기이길 바랍니다. 

 

Q. 차기작인 <현남 오빠에게>는 어떤 책인가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단편 모음집이에요. 저를 포함해 7명의 여성작가가 책을 썼어요. 지금껏 여성작가의 작품도 많았고, 여성의 삶이나 여성의 주장 혹은 생각을 담은 소설은 많았어요. 하지만 ‘이건 페미니즘 소설집입니다.’ 하고 그 의도를 분명히 밝히며 쓰인 책은 제가 알기로는 처음인 것 같아요. 함께 실린 다른 여섯 편의 소설도 읽어봤는데,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한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동문님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시나요?

네. 저는 대놓고 이야기해요. 사실 예전에는 ‘나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니지만…’ 하고 서두에 언급하며 방어적인 자세로 얘기하곤 했어요. 페미니스트라는 말에 따라오는 공격과 비아냥거림이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성별에 따라 기회나 역할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동등한 삶을 지향하는데, 그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면 뭐지?’ 하고 반성하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김지영을 쓰고 있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하는 등, 여성 혐오적인 문화에 반발하며 저항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어요. 누군가 내가 걷는 길을 함께 걷고 있다는 그 존재감이 저로 하여금 선입견에 대해 단단해지게 만들고, 당당히 페미니스트의 정체성을 밝힐 수 있게 한 것 같아요. 이제는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것 자체가 지성적이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조남주


Q. 책에서 김지영 씨는 다른 여성들의 인격을 빌려 그동안 김지영으로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전합니다. 이 대목에서 여성 간의 연대를 느끼며 마음이 뭉클했는데요, 이화에서 이러한 ‘여성의 연대’를 경험하셨던 적이 있나요?

‘ 여성들이 당당히 목소리 내는 사회, 여성들이 나설 수 있는 사회’

흔히 페미니즘의 유토피아를 꿈꿀 때 이와 같은 사회를 생각하곤 하죠. 그런데 우리 학교에는 여자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사회를 너무 당연하게 경험하게 돼요. 저는 이 경험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선생님도, 교장이나 총장과 같은 최고 권위자도, 결정권자도 모두 여성인 사회가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너무도 훌륭하게 굴러갈 수 있다는 걸 인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에요. 여성들이 모든 직군을 잘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해볼 수 있는 중요한 기회인 것 같아요. 제게도 딸이 있는데 딸이 원한다면 딸에게도 여학교를 다니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요.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는 몰랐는데, 이화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구성원이 대부분 남자이고, 발언권은 주로 남자에게만 주어지는 세상을 경험했죠. 만약 제가 여성이 주도하는 사회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저 자리는 남자의 자리야’라고 자연스레 생각했을 것 같아요. 이화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아주 중요하다는 것을 졸업하고 나서야 알게 됐어요. 

이 사회에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을 많이들 하죠. 그런데 저는 돌아보면 그래도 ‘여자를 돕는 건 여자’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남성들 간의 싸움은 경쟁과 권력욕으로 비추고, 여자들 간의 경쟁은 질투나 투기와 같이 부정적으로 비추는 것이 조금 아쉬워요. 그래서 이렇게 사회가 이간질할수록 여성들 스스로 연대감과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Q. 사회의 다양한 편견과 장벽에 부딪힌 ‘또 다른 김지영’은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여자대학교를 다니며 각종 편견에 의해 규정되는 이화 후배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이와 같은 이화인들, 혹은 더 나아가 한국 여성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실 이화에 대한 편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요. 한동안 ‘이화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결국은 정권교체까지 이뤄냈다’며 호평받다가도, 요새 다시 ‘그래서 이대는 적폐 대학이야!’ 하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슬슬 들리더라고요. 저도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그런 말들에는 상처를 받아요. 많은 이화인들이 각종 편견과 비난에 상처받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이러한 무분별한 악플들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보면, 김지영 씨가 처해진 가정형편, 학교, 진학 상황 등이 나쁘지 않았어요. 일도 열심히 했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인정도 받았고요. 그러나 자신이 원하는 삶은 살지 못했죠. 그 원인은 김지영 씨 개인의 불성실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마주했던, ‘여성’으로서 겪는 사회적인 한계들에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삶이 불행한 것을 자신의 무능력과 노력 부족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이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책을 쓰면서 위안 받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도 나름 열심히 일했고, 공부도 성실히 했었는데요, 물론 육아와 살림도 중요한 의미가 있지만, 이것들이 저에게 맞는 일이거나 진심으로 원했던 일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내 인생은 실패했다.’라는 생각이 들 때, 김지영 씨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나도,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적었고, 외부에서 가해지는 한계에 부딪혔던 것은 아닐까. 사실은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김지영 씨 덕분에, ‘나의 잘못이라고 여겼던 것들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위안을 얻은 것이죠. 이러한 감정을 수많은 ‘김지영’들도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Q. 동문님에게 ‘이화 DNA’란 무엇인가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굳이 말하자면 ‘자매애’ 정도가 좋은 것 같네요. 저는 ‘언니’라는 말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형님’과는 다른 ‘언니’라는 말에는 공감과 배려를 바탕으로 하는 유대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언니라는 말을 좋아해요. 이화 안에서 나에게 좋은 언니가 많았으면 좋겠고, 저 역시 좋은 언니가 되어 주고 싶어요. 이런 생각도 이화 DNA라고 한다면, 제게 있어 이화 DNA는 ‘자매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후배님들, 저를 언니라고 불러주세요(웃음)!

   

Q. 마지막으로 동문님의 향후 행보에 대해 약간의 힌트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제가 <82년생 김지영>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인간의 기본 값은 남성이었구나…’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일례로 자동차 안전장비 실험에 있어 여성 더미(Dummy)가 쓰인 지 몇 년 되지 않았다고 해요. 그래서 차내 안전장비 기준도 다 남자일 수밖에 없었죠. 테이블의 표준 사이즈도 성인 남성 기준이고, 실내 적정온도 역시 성인 남성 기준… 심지어 약국에서 사 먹는 일반 의약품의 적정량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알게 되었을 때 ‘난 늘 이렇게 위험한 차를 타고 약을 과대 복용하면서 불편하게 살아왔고, 그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하고 느꼈어요. 

지금은 그런 표준들을 다시 정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바뀌려면 다양한 분야에 여성들이 진출해서 이런 작업을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발언권을 가진 자리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별 할당제와 같은 담론이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시도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담론이 계속 제기되는, 변화가 시작되는 시기를 만들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할 예정이에요. 그게 소설 집필이 될 수도, 강연이 될 수도, 또 다른 형태의 활동이 될 수도 있겠죠. 모든 여성분들이 이런 저의 행보에 함께 하는 ‘존재감’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조남주


조남주 작가님과의 인터뷰는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인터뷰는 ‘9X년생 김지영’으로 살고 있는 우리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세상의 모든 김지영의 일대기가 ‘여성으로서의 김지영’이 아닌 ‘인간 김지영’의 이야기로 쓰일 수 있을 때까지, 이화가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화투데이 리포터 9기 정영주(역사교육·16), 최혜민(중어중문·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