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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섬겨온 선교사, 오은주 동문(영문, 74년졸)

  • 등록일2016.12.15
  • 5805

오은주1


Q.안녕하세요. 이화소식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아름다운 이화인’에 선정되셨는데요. 모교에서 받는 상인만큼 더욱 애틋하고 남다른 상이셨을 것 같은데, 이와 관련한 간단한 소회를 부탁드립니다.

처음에는 참 두렵고 떨리더라고요. 제가 선교사인데 이땅의 경주를 다 끝낸다음에 하나님앞에 가서 상을 받게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뜻하지 않게 상을 받으니 이 나이에 다시 한번 하나님의 격려를 받은 느낌이었어요. 다른 선교사님들이 받으실거를 합해서 제가 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두렵고 떨리고 송구스러운 마음이었어요. 그다음에는 자랑스럽고 감사하더라고요. 아름다운 이화인에 나를 맞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무엇보다 오랜만에 모교를 다시 찾으셨는데요. 재학시절과 달라진 학교의 모습이나 후배들의 모습은 어떤지, 더불어 학창 시절은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옛날에는 A,B,C동 이렇게밖에 없었는데 ECC같은 건물을 보면 첨단을 달리고,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죠. 요즘에는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안팎으로 갖춘 후배들이 많이 다니는 것 같아요. 다들 너무 똑똑하고 예쁘고 해서 후배들 보면 뿌듯하고 자랑스럽죠.

저는 학교다닐 때는 아주 조그만 학생이었어요. 친구들도 작고 얌전하고 그러던 아이가 어떻게 호랑이 같은 선교사가 되었냐고 놀래요. 그저 보통학생이었고 평범한, 남의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축이었는데 지금은 어디가나 제가 발표를 하고 리드해야하게 되었어요. 이 모든 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은혜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되었답니다.

 

Q.1994년부터 필리핀에서 선교를 시작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선교’라는 단어는 현재보다는 생소했을 것 같은데요. 선교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특별히 필리핀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가 영문과를 졸업하던 해에 일본 항공을 공채로 입사하게 되었어요. 거기서 3년반을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본 본사에 가서 트레이닝을 받게 되었어요. 그때 룸메이트가 필리핀 사람이었는데,그 당시는 우리나라보다 필리핀이 더 선진국이었어요. 우리나라에는 클렌저랑 샴푸가 없었던 때었거든요. 그렇게 필리핀 아이하고 룸메이트를 하면서 필리핀이라는 곳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남편이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기도를 하게 되고 인도를 받은 곳이 필리핀이었어요. 남편이 먼저 선교센터에 있게 되었고 저는 아이들때문에 고민을 하다가 하나님의 사인을 받고 가게 되었어요. 이제는 선교사가 된 것이 제가 했던 일중에 가장 잘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Q.20여년이 넘는 시간을 필리핀에서 함께 생활하시며, 현재는 5개의 교회를 개척하셨는데요. 함께 진행하시는 활동 중 신학교와 찬양팀을 세워, ‘현지인 지도자’를 길러오고 계신 점은 특히 인상적입니다. 어린 세대에게 ‘교육’이란 더욱 남다른 의미일 것 같은데, 이에 대한 소개와 계기를 부탁드립니다.

‘지도자를 기른다’ 이런 마음은 없었고 이들과 같이 살아간다는 마음뿐이였어요. 밥을 먹고, 학교를 보내주고, 없으니까 나눠 주고 한거였는데 자기들이 스스로 커서 지도자가 되었어요. 제가 한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것 밖에 없습니다.

처음에 갈 때는 꼬맹이들이 이제는 20살을 다 넘었어요. 청년들이 은혜받는 방법 중 하나가 음악이더라고요. 부족하지만 제가 음악이나 무용을 가르쳤습니다. 기타를 가지고 팝송을 부르면서 말씀을 전했어요. 그러면 그분들이 하나님이 함께 할 것이라는 믿음을 받으며 울기 시작했어요. 음악이 어린 아이들을 주님께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빈민 그리고 여성이 자립하여 본인의 삶을 꾸려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이는, 이화의 교육이념을 직접 실천하고 계신 터라 더욱 의미가 깊은데요. 오랜 시간 함께하시며 특히 생각나는 인물이나 사연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엠'이라는 40~50대 집사님이 있어요, 그분이 참 애틋합니다. 필리핀이 카톨릭 국가이다보니 카톨릭에서도 같이 활동하시던 분이었어요. 몇년 후에 완전히 개신교로 오셨어요. 저한테 한달 용돈  만 오천원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참 힘든 삶을 살고 계시지만 믿음으로 이를 극복하고 살아가시더라고요. 그래서 꽃으로 카드나 캘린더를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라이블리 후드’ 프로그램으로 지금은 자기가 원하던 만 오천원정도를 한달에 벌수있으세요. 이제는 그분이 리더가 되어서 활동을 하시는데, 몸이 아파서 신학공부를 다 끝내지는 못했지만 그분이 역경을 이기고 하나님앞에 나아가는 것을 보며 감사함을 느낍니다.


오은주2


Q.생계유지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선교사는 물론 영적인 부분을 담당합니다. 성경에 있는 바른 진리를 가르쳐 주어 제자가 되게 한 후 생활에 대한 방편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작은 능력이라도 필리핀같은 가난한 나라에서는 귀하게 쓰이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노력하며 도움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생계 유지가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공허해져요. 그래서 제가 공장에가서 레깅스 팬츠원단을 가지고 장사를 해보았어요. 원금만 교회에 가져오고 이익은 가지는걸로 시작을 했었는데 바지도 없어지고 사람도 안오고, 교회에도 사람이 없어지더라고요. 이렇게 라이블리 후드 프로그램이 다 실패했었는데, 꽃으로 카드나 캘린더를 만드는 프로젝트는 현재 성공하고 있어서 너무 감사하죠.

이 프로젝트는 박사과정을 밞을 때 같이 공부를 한 필리핀 선교사님과 같이 협업했는데, 그 선교사님의 성도들에게서 배우다보니 특출난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한 명을 선생님으로 해서 한개 교회는 자립을 했습니다. 감사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죠. 처음에는 꽃도 많이 없고 책갈피에 꽃을 말리다보니 질이 그렇게 높지는 않았었는데 이제는 교회에 꽃도 심고 오븐에 말려서 아주 예쁘게 색도 잘나옵니다. 10살부터 70살까지의 성도분들이 입에 풀칠을 할 수있게 하는 생계유지 프로그램이에요. 주로 엄마들이 많이 하고 아이들은 꽃을 꺾어다 주죠.

또 다른 청소년들의 생계유지 방법으로는 지난 10월부터 시작하게 된 빵집이 있는데요. 좀 더 어린 10대에서 20대 정도의 청소년 16명 정도가 모여서 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이 빵집을 시도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포기했던 것을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답니다. 빵집을 운영하다가 재미를 느낀 청소년들은 베이킹 기술을 배우기도 하고요.

 

Q.타지에서 선교활동을 이어오기란 마음만으로는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한때 암 투병 등 개인적인 어려움도 많이 겪으셨을 것으로 짐작 되는데요. 어떻게 이겨내셨고, 무엇이 계속 선교활동에 참여하도록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어려웠던 시기를 많이 겪었어요. 처음 필리핀에 갔을 때는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고, 저의 암 투병과 아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고 비참해질 때마다 오히려 감사하고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쓰레기 하치장에서 교회 건물도 없이 복음을 전할 때도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필연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그때가 오히려 가장 행복하고, 감사하고, 보람찼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또, 그때부터 지금까지 제가 만나온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되려 제가 가르침을 받기도 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몰아치는 태풍과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을 만나게 된 것도 큰 행운이라고 생각했습니다.

 

Q.현장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느끼셨을 이화의 남다른 배움, 이화의 네트워크가 힘이 되어 준 순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필리핀에서는 이화인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화에서의 배움이 제 인생에 큰 등불이 되었습니다. 나눔과 섬김을 바탕으로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화의 네트워크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저도 없을 거에요. 저를 도와주시고 저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을 늘 기억하면서 저는 이화가 파송한 선교사라는 생각을 늘 품고 살려고 합니다.

 

Q.앞으로의 간단한 계획을 포함해, 130주년을 맞은 이화에게 축하의 인사 혹은 재학생을 비롯해 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선·후배에게 마지막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지금은 교회 뒷마당에 있는 빵집을 제가 필리핀으로 돌아간 이후에 새로이 점포를 얻어 그곳으로 옮길 예정입니다. 이런 변화가 그 빵집을 운영하는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게 바라는 게 있다면 제가 관리하는 다른 교회에서도 빵집을 열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중에는 그들이 저의 도움 없이 각자의 힘으로 자립해서 그게 무엇이든 직업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요.

우리 학교는 130여 년 전에 한 명의 선교사와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된 학교잖아요. 이화의 면면에 흐르는 진선미 정신을 늘 마음에 새기고, 비록 각박한 세상이지만 그 속에서 늘 다른 이에게 베풀고 사회에 환원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그게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이화를 지탱해 온 힘이고, 세계 굴지의 여자 대학으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화인은 그것을 일구어 온 DNA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제가 그런 선배들을 보고 지금의 자리까지 왔듯이, 우리 후배들도 꼭 나누는 삶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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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투데이 리포터 한재원(불어불문∙15), 한수희(커뮤니케이션미디어∙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