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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박경희 삼성증권 상무(영어영문·90년 졸)

  • 등록일2015.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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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도 삼성그룹 정기 임원인사에서 삼성증권의 박경희(영어영문·90년 졸) 동문이 초고액자산가(UHNW) 사업부 상무로 발탁됐다.

 

통계에 따르면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 1000 중 8명이 임원이 되고, 그 중 여성임원은 4.7%에 불과하다. 여성이 대기업 임원 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박 동문은 임원으로서는 드문 4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인데다 부장 3년차에 상무로 초고속 승진해 더욱 관심을 모았다. 작년 삼성 금융계열사 최초의 여성임원으로 주목을 받은 이재경 동문(비서학·90년 졸)에 이어 두 번째 여성임원이기도 하다.

 

“직원부터 고객, 기타 협력자 군까지 매 순간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멘토”라는 박 상무를 지난달 29일 역삼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기업의 별’이라는 대기업 임원이 됐는데 소감이 어떤가?

 

운이 좋았다. 많은 직장인들이 임원을 꿈꾸지 않나.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회사 생활을 시작해서 육아휴직 기간 2년을 제외하면 20년 만에 임원이 된 거라 기쁘다. 부장 3년차에 여성으로서 임원이 됐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공채가 아닌 경력 입사 6년차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준 회사에도 고마움을 느낀다. 

 

삼성그룹의 경우 임원인사가 언론에 발표되는 오전 9시로부터 한 시간 전에 사장님으로부터 직접 전화가 온다. 8시에 전화를 받으면 당사자도 그제야 승진여부를 알게 되는 것이다. 다행히 그날 전화벨이 울렸다. 사장님께서 “그 동안 굉장히 수고했고, 앞으로는 임원으로서 더 큰 일을 해 주길 바란다” 이렇게 10초 말씀하고 끊으시더라. 기쁜 만큼 어깨도 무겁다.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PB(프라이빗 뱅킹)서비스를 시작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줄곧 고액 자산고객 관리를 전담해 왔다. 처음에 어떻게 이 분야에 들어서게 됐나. 

이화 영문과 86학번인데 학교 다닐 때 취업정보센터(현 경력개발센터 전신)에 표경희 선생님이라고, 취업 컨설팅으로 유명한 분이 계셨다. 졸업 즈음에 그 분 추천을 받아 한양투자금융에 입사하면서 금융업계에 입문한 거다.

 

입사 1년 만에 한양투자금융이 보람은행으로 전환됐는데, 당시 보람은행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PB(프라이빗 뱅킹) 비즈니스를 도입하면서 나도 합류했다. 이후 씨티은행, 신한은행에서 PB 서비스를 강화하거나 전담센터를 론칭할 때 경력 PB(프라이빗 뱅커)로 스카우트 돼서 각각 수년간 일했다.

 

그렇게 은행권에서 16년을 일하고 나니 PB로서 새로운 영역의 업무에 갈증이 있었는데 2006년 마침 삼성증권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온 것이다. 증권사 PB로도 6년을 지냈으니 PB 비즈니스 분야에서만 22년을 일한 셈이다.  

 

 

PB라는 신생분야를 개척해 온 1세대, 동시에 여성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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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축적된 노하우가 없으니 시행착오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있지만 PB 비즈니스가 금융권에서 계속 성장·발전하는 분야라 그 1세대로서 받는 메리트도 크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성이라서 특별히 차별받거나 힘든 점은 없었다. 오히려 개인 자산가를 상대로 하는 PB는 기업 금융을 담당하는 쪽보다는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요즘 들어오는 신입사원들을 보니 처음부터 PB를 지망해서 입사하는 직원 중에 여성이 40%나 되더라. 문제는 그 이후다. 임원 승진 대상이 되려면 20년 이상 일을 해야 하는데 여성들은 중간에 결혼, 출산, 양육으로 우르르 떨어져나간다. 나 역시 늘 가까이 살면서 도와주신 친정어머니가 없었다면 지금 같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고객의 자산이 시장의 방향성과 변동성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무 특성상 365일 긴장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었다. 늘 깨어있어야 하고 지루할 틈이 없다는 점에서 한편으론 매력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을 세 가지 꼽자면?
  
먼저 운이 좋았다PB 비즈니스라는 유망분야에 일찌감치 발을 담근 것, 협력적이고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는 것 등 이만한 운이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늘 공부했다. 지식정보는 계속해서 변하고 특히 개인 자산관리는 정해진 답이 없다 보니 공부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물론 PB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고 각 자산분야 전문가들로부터 계속 업데이트된 정보를 지원 받지만 본인이 전체 흐름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각각의 고객 특유의 니즈를 잘 파악해서 생각하는 것 이상의 서비스를 돌려줘야 하니까 항상 공부하는 학생 같은 느낌이다.

 

또 요령보다는 본질에 충실했다. 초고액 자산가들은 이미 정보력이나 판단력, 돈의 흐름을 보는 통찰력에서 상상 이상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섣부른 조언보다는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할 전문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등 고객들이 올바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다양한 인프라와 환경을 만드는 역할에 주력했다. 
           
고액 자산가들을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 때도 우리는 아침 7시에 했다. CEO 고객들을 겨냥해 회사 출근 전으로 시간을 잡은 것인데 그만큼 콘텐츠에 자신이 있었다. 보통 다른 금융기관들이 12시 오찬이나 3-4시 타임을 이용하는데 식사는 맛있어도 내용이 평범한 경우가 꽤 있다. 시간이 금쪽같은 VIP 고객들에게 매력을 못 주는 행사다. 이런 식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본질적인 데 포커스를 두는 편이다.   

 

마지막으로 사람 만나는 걸 즐겼다. 책 읽고 자기계발 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나보다 앞서 고민한 분들을 만나면 활자가 주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얻을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파신 분들하고 티타임을 한 시간만 가져도 그 분만의 성공 DNA나 긍정의 기운이 고스란히 느껴지지 않나.

 

사람과의 만남이 일에서는 현장감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제는 하나의 사업부를 책임지는 자리라 개인적으로 고객들을 직접 상대하는 PB 역할은 원칙적으로 안 해도 되지만, 조직관리만 맡다보면 현장 감각이 떨어질 수 있어서 일부러 고객을 자주 만나려고 한다. 고객이든, 업무 관계자든, 언론사 기자든 만나는 사람들과 서로의 당면한 화두를 나누는 과정에서 시야를 넓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멘토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상대하는 고객이 모두 초고액자산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공통적으로 가진 기질 같은 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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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액자산가라는 건 금액을 기준(30억 이상)으로 분류한 거라 집단의 개성이랄 건 없다. 성공하기까지 과정부터 비전, 투자성향, 라이프 스타일까지 다 다르다.

 

다만 성공 이후 자세가 비슷하다. 어떤 경우에도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항상 위기를 인식하고 목표를 끊임없이 다시 세운다. 대를 걸러 먹고 살 자산이 있고, 증권사에 돈을 넣어두면 이자도 남아도는 엄청난 자산가라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 초기 한참 어릴 땐 ‘내가 저만큼의 돈이 있으면 증권회사에 돈 넣어두고 이자로 생활하면서 세계일주 다니고 샐러리맨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텐데’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지속적으로 꿈을 업데이트해서 거기까지 갔다는 걸 알겠다. 

만약 그들이 목표를 계속 세팅하지 않고 있는 자산에서 머물렀다면? 10년 전에 내가 만났던 어느 고객들은 그 동안의 인플레이션을 생각하면 현재 자산가치가 많이 떨어졌을 거다. 또 기업 CEO의 경우 만약 그들이 회사를 매각하고 현금화해서 더 이상 기업 활동을 안했다면 지금 평범한 자산가로 남아있을 거다.

 

 

22년 동안 한 길을 걷게 한 PB 비즈니스의 보람은 무엇인가?

 

조직에 소속돼서 월급을 받는 샐러리맨이지만 사회적으로 내 일이 가지는 의미를 알 때 일에 대한 프라이드나 보람도 더 크게 느낄 수 있다. 2010년 진동수 위원장 시절 금융위원회 위원장상을 받으면서 내가 20년간 해 온, 개인들의 자산을 관리하는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할 기회가 되었다.

 

국가경제는 정부-기업-개인의 영역이 모두 건전해야 제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이 중 가계 안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국가와 기업 재정은 관료, CEO, 최고 전문가들이 총 동원돼서 관리를 하는데 나머지 3분의 1의 중요한 축인 가계 자산 관리는 굉장히 소극적이고 전문성 없이 이루어진다.

 

개인들의 자산 가치를 안정적으로 지키고 늘리는 일은 소비를 촉진해 기업이 돌아가게 하고 결국은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 만큼 사회 전체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 고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금융서비스 산업은 제조업을 대체할 미래 성장 동력이다. 아직은 200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걸음마 단계지만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높고 그럴 필요도 절박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금융 비즈니스 영역 중에 나는 개인, 그 중에서도 초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PB 비즈니스 첫 세대로서 지금도 계속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다. 어느 분야든 먼저 가는 사람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하지 않나. 지금 삼성증권에서 내가 맡은 초고액자산가(UHNW) 사업부가 그런 역할을 하는 중이고 한국의 금융산업은 그렇게 발전을 해야 되는 영역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현재 대학생, 중학생 자녀를 두고 있는데 일 하면서 가정을 돌보기가 힘들진 않았나?  

 

이 질문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내가 일과 가정의 밸런스를 잘 맞췄다고 가정하고 질문을 던지신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난 상당히 일에 치우친 삶을 살았다. 직장생활 22년 동안 일이 너무 좋아서 좀 더 내가 몸담은 업의 본질을 찾으려고 애쓰고, 현장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내 역량의 95% 이상을 일에 쏟은 것 같다.

 

나 역시 가정에 충실하면서 회사에서도 성과를 내는 그런 밸런스를 가진 모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가진 역량이 거기까진 안 됐던 것이다. 엄청난 재능을 타고난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슷한 역량과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기업에 모여 있는데, 이 가운데서 자기가 원하는 성과를 내려면 남는 것은 절대적인 시간과 창조적인 노력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집 아이들에게 엄마는 매일 일하다가 12시 넘어서 들어오는 사람, 주말에도 회사 나가는 사람이다. 그 빈자리를 내 어머니라는 큰 존재가 다 받아 안으셨다. 그래서 임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 

 

 

학창시절은 어땠나. 이화에서 얻은 자산은?

 

교내 방송국 EBS(현 EUBS) 프로듀서, 클래식 기타 동아리, 영문과 과대표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참 재미있게 보냈다. 이화에서 얻은 것은 적극성과 책임감이다. 여자끼리 있으니까 서클 운영이든 과대표든 책임지는 자리를 경험할 기회가 많았다. 꼭 대표가 아니더라도 힘든 일을 분배해서 각자 롤을 다하는 과정에서 여자라고 빠지거나 움츠릴 수 없는 구조가 아닌가. 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내 몫을 다해낸 경험들이 나중에 조직생활에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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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앞서 사회에 나가신 선배들이 워낙 길을 잘 닦아 놓으시지 않았나. 이번에 최초 여자 부사장으로 화제가 되신 삼성전자 심수옥 부사장님도 이화 영문과 5년 선배님이다. 성공한 이화의 선배들이 만든 평판의 후광을 충분히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PB가 되고 싶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판 남인 PB에게 거액의 자산을 맡기는 고객들은 본인 이상으로 자기 자산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관리해주기를 바란다. 그만큼 신뢰구축이 중요한데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성실성이 상당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또 이전에는 고객관리가 PB 개인의 개성이나 역량에 좌우됐다면, 현재는 전문가 그룹을 활용한 팀 단위의 종합 고객관리로 PB 업무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전문가 그룹을 효과적으로 네트워킹하고 전체적으로 폭넓고 섬세하게 코디네이션 하는 능력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실력 있는 이화인들이 이 분야로 많이 진출했으면 좋겠다.

 

 

이화 가족들을 향한 새해인사 한 마디

 

2012년은 임진년, 흑룡의 해다. 임진왜란도 6.25도 임진년에 일어나다 보니 많이들 걱정하시는데 항상 위기는 기회가 아닐까 싶다. 청년들의 멘토로 유명한 서울대 김난도 선생이 임진년 새해 주목할 트렌드로 ‘위기관리’를 지목했다고 하던가.

20년 동안 고객들을 만나보니까 큰 위기가 올 때 미리 대비하고 위기를 관리한 누구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오더라.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오르는 흑룡승천의 해가 될 수도 있으니까 어려운 가운데서도 이화가족들에게 좋은 기회의 해가 됐으면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