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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별밤PD’ MBC 라디오 박혜화 프로듀서(언론홍보영상학부, 03년 졸)

  • 등록일2015.03.18
  • 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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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혜화 PD는------------------------------------------------------------------------------
1999년 기자를 꿈꾸며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입학했다 학내 방송국 EBS(현 EUBS 전신) 프로듀서와 학부 방송영상 실습 등을 거치면서 재미를 느껴 방송 프로듀서로 진로계획을 바꿨다. 2003년 학부 졸업 후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재학 중이던 2004년 12월 M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입사한 이래 『지금은 라디오시대』,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여성시대』, 『굿모닝 FM』 등 다수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 MBC 표준 FM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연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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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잘 안 듣는 사람이라도 MBC 표준FM의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69년 3월 첫 방송을 시작한 별밤은 가수 이문세를 비롯해 아나운서 차인태, DJ 이종환,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대표프로듀서 등 쟁쟁한 명사들이 DJ로 거쳐 갔을 뿐 아니라, 청소년들이 노래실력을 자랑하는 ‘별밤 뽐내기’ 코너는 수많은 가수들의 등용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1년 현재도 별밤은 동시간대 청취율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가을부터 별밤을 이끌고 있는 MBC 라디오 박혜화 프로듀서(방송영상학과 03년 졸)는 역대 최연소 DJ인 가수 윤하를 영입하고 11년 만에 실력파 뮤지션들이 팀을 꾸려 공연하는 ‘별밤 잼 콘서트’를 부활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42년 별밤의 명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매일 2시간씩 진행되는 별밤 생방송 외에도 ‘별밤 잼 콘서트’(25일) 준비에 3살 아기 육아까지,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혜화 PD를 『The Ewha』가 만났다. 

 

트위터에 직접 찍은 이화여대 사진이 있더군요. 

 

주말에 가끔 학교로 나들이를 갑니다. ECC와 한옥으로 지은 역사박물관이 제가 다닐 땐 없었던 건물들이라 신기했습니다. 단풍도 고왔고요. 제 아이가 3살인데요. 학내 카페테리아에서 삶은 고구마나 옥수수 같이 아기 간식으로 살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았습니다. 졸업한 지 한참 됐지만 모교는 집 같이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입니다.  

 

 

학창시절엔 어떠셨어요.

 

휴학 한 번 안하고 4년 만에 졸업한 나름 모범생이죠. (웃음) 기숙사 한우리집에서 사생회 임원을 맡았는데 덕분에 남들은 길어도 2년 후면 나가야 될 기숙사에서 4년 내내 지낼 수 있었어요. 제가 99년에 한우리집이 완공되자마자 들어간 행운의 학년입니다. 지금도 좋다는 얘길 듣는데 12년 전이면 어땠겠어요. 사생회 활동도 재밌었고 시설도 좋아서 전 기숙사를 참 좋아했어요. 휴학하면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기 힘들거든요. 4년을 다이렉트로 다닌 원동력이 기숙사라고 해도 과장이 아닐 거예요.

 

 

언제부터 라디오 피디가 되고 싶으셨어요?

처음부터 라디오 피디를 꿈꿨던 건 아니에요. 중학교 때 아버지 옆에서 뉴스를 볼 때마다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대학도 언론홍보영상학부로 들어갔는데요.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수업이 실습 기회가 굉장히 많습니다. TV 방송 제작 실습을 하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기자에서 프로듀서로 꿈이 바뀌었어요. 저희 전공이 광고홍보/방송영상/언론정보로 나뉘는데 광고홍보 전공이 취직이 잘 된다는 걸 알면서도 흥미가 안 생겼어요. 그래서 방송영상과 언론정보를 복수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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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졸업할 즈음부터 TV 프로듀서로 방송국 시험을 보러 다녔는데 워낙 문이 좁더라고요. 계속 낙방하니까 ‘내가 재미있어하는 방송영상 분야를 좀 더 깊게 공부해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MBC 휴먼 다큐 『사랑』처럼 눈물과 감동이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었고, 방송사 시험을 꾸준히 보러 다녔죠.

 

방송사 시험은 논술, 상식, 작문, 프로그램 기획안 등 여러 단계 시험을 거치는데 합숙 거쳐서 최종 면접까지 봤다가 떨어지는 일이 반복되니까 충격도 받고 지치기도 했습니다. 이젠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본 게 2004년도 MBC 시험이었어요. 모집공고를 보는데 갑자기 라디오 피디에서 마우스 스크롤을 멈추게 되더라고요. 대학시절 학내 라디오방송 프로듀싱 했던 것, 방학 때 인턴 실습으로 KBS 라디오 아침방송을 보조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TV가 내 길이 아니면 라디오로 지원을 해볼까?’ 모험을 했던 건데 합격한 거예요. 정말 운이 좋았죠.

 

 

TV 피디만 준비해 왔을 텐데 힘들진 않으셨나요?

 

돌이켜 생각할 때 지나치게 한 방향으로만 파고드는 건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라디오피디를 뽑는 사람들도 라디오피디잖아요. 신입 지원자에게 기존 라디오 피디들에게 없는 걸 갈구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TV도 마찬가지고요. MBC 황금어장 「라디오스타」의 경우도 ‘들리는 TV’를 표방하면서 TV 예능에 오디오적인 감성을 입힌 거니까요. 라디오에서도 TV가 가지고 있는 감성 중에 라디오로 접목해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오로지 ‘라디오적인 것’만 고민하는 것보다 신선할 수 있겠죠.

 

저는 TV 피디를 준비하면서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 PD 지원자들이랑 스터디를 했었고, 심지어는 기자 지망생들과도 같이 공부한 적이 있어요. 멤버들을 모집할 때도 전공을 다양하게 섞었고요. 이런 식으로 어느 한 분야에 한정짓지 않고 다양하게 공부했던 게 라디오 피디 시험에서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라디오피디 하나만 매력을 느껴서 열심히 하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라디오 피디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TV 피디와 공통되는 부분이 많거든요. 시야를 넓게 보는 게 여러 모로 유리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맡았던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프로그램은 뭔가요?

 

당연히 지금 하는 별밤에 가장 애착이 있어요. 새 DJ를 직접 구상하고 섭외한 게 처음이니까요. 점점 프로그램 안에서 자기색깔을 낼 줄 알고, DJ로서 성장하는 윤하 씨를 보면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요. 다른 프로그램을 꼽자면 AD시절의 『지석진의 굿모닝 FM』이 기억에 남습니다.

 

방송시간이 아침 7시부터 9시까지였는데 그 시간대가 원래 여자 아나운서들이 주로 방송하는 시간이거든요. 그런데 차분한 여자 아나운서 대신 DJ인 개그맨 지석진 씨를 필두로 해서 정선희, 김제동, 조혜련 씨 같이 발랄한 분들을 섭외해서 코너를 끌어갔어요. 김제동 씨같이 산에 다니고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분을 아침 8시에 불러놓으니 정말 힘들어하셨죠.

 

이른 시간 생방송이다보니 아슬아슬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늦잠 잔 DJ가 방송시작 5분전까지 연락이 안 된다든가, 생방송 중에 전화 연결이 끊어지는 등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상황들이 끊임없이 일어났죠. 덕분에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제일 재미있었던 시기였어요. 무엇보다 새로운 시도였고 그 시간대 라디오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는 게스트들이 나오다보니 6개월 만에 동시간대 청취율 1위를 해서 보람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진행자인 지석진 씨가 도저히 아침 일찍 못하겠다고 하셔서 6개월 만에 막을 내렸던 슬픈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웃음)

 

 

올해로 라디오피디 7년차인데 어떤 분야가 가장 잘 맞나요?

 

분야마다 각각의 매력이 있죠. 예를 들어 시사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새로운 사건이 늘 일어나는데 그 흐름 속에서 같이 호흡을 하다 보니, 내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명감 같은 게 생기고 남다른 보람도 느낄 수 있고요.

 

저한테는 정보성이 강한 프로그램보다는 청취자들 일상 가까이서 감정을 주고받고 소소한 유머를 나누는 그런 프로그램,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점점 웃을 일도, 진한 감정을 나눌 일도 많지 않잖아요. 예전에 『여성시대』할 때 정말 진한 사연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스튜디오가 전부 눈물바다가 되요. DJ, 피디, 작가, 엔지니어 가릴 것 없이 다 울죠. 

 

저의 기억에 라디오는 이런 것 같아요. 중학교 때 엄마랑 싸우고 방에 혼자 들어가서 문 잠궈놓고 라디오 듣는 거죠. 속상해서 눈물을 줄줄 흘리다가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농담에 낄낄거리면서 웃는데 아무에게도 민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시험을 못 봐서, 수능이 며칠 안 남아서,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불안하고 우울한 사람들이 라디오를 켰을 때 한 마디를 들어도 낄낄대고 웃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 싶어요. TV 예능 프로그램 보면 막 빵빵 터지잖아요. 그런 ‘빅 재미’보다 듣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빙긋이 또는 낄낄 웃게 되는 잔재미에 애정이 있습니다.

 

 

라디오가 사양매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요. 앞으로 라디오는 어떻게 될까요?

 

‘라디오 피디가 없어지면 어떡하지?’ 이런 식의 고민과 걱정은 늘 있는 것 같아요. 점점 기술이 발전하다 보니 ‘스마트 라디오’ 라고 해서 원하는 곡을 입력하면 그 곡과 비슷한 곡들을 알아서 선곡해주는 프로그램도 있다고 들었어요. 확실히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고 청취자 취향에 맞는 선곡을 해주는 라디오의 역할은 점점 작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봐요. 아이팟에 몇 십 기가의 곡을 넣고 다녀도 금방 지겨워지고 다른 거 듣고 싶을 때 많잖아요. 저 사람은 좋아하는 음악이 뭐지? 저 사람은 요즘 어떤 거 듣지? 이런 궁금증을 누구나 가지고 있거든요. 또 음악을 넘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 지도 관심이 많죠.

 

그런데 라디오라는 건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얘기거든요. 듣다보면 나랑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일상과 감정이 그대로 다가오죠. 공부 안 되는 수험생의 고민, 짝사랑의 아픔, 직장을 잃은 40대 아빠에게 딸이 보내는 말 등 다양한 사연들이 전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외로워질수록 더 라디오를 찾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라디오는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게 될 것 같아요.

 

 

TV가 줄 수 있는 것과 라디오가 줄 수 있는 건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TV뿐 아니라 요즘 영화관 가면 3D, 4D도 있죠. 스펙터클이 있지만 주입되는 느낌이랄까요. 라디오는 자기가 계속해서 머릿 속으로 떠올려야 되잖아요. 지금 저 스튜디오에는 남자 한 명, 여자 두 명이겠다, 게스트와 디제이가 어떻게 앉아있을까, 청취자 사연을 미니로 읽는 작가들 모습, 오랜만에 손 편지가 왔다는데 편지를 지금 꺼내서 읽고 있겠네, 이런 식으로 상상하며 듣죠.

 

모든 감각을 동원돼 다이렉트로 주입된 웃음과 자기가 이미지나 상황을 연상해서 나오는 웃음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국장님 중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즐거워지려면 TV를 켜고 행복해지려면 라디오를 켜세요.”

 

 

방송사 PD 시험 준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셨어요?

 

스터디 얘긴 앞에서 말씀드린 것 같고요. TV든 라디오든 많이 보고 듣는 게 가장 중요해요. 보통 방송사 시험에서 자사 프로그램을 가지고 문제를 만들거든요. 그리고 의외의 재능, 반전의 매력을 가지시면 좋아요. 예를 들어 자기가 예능 PD를 하고 싶다면 당연히 예능분야를 꿰고 있되,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시사부문에 대한 소양을 무기로 갖추는 식이죠. 이미 한 분야 마니아는 같은 부문 경쟁자들 사이에 수두룩하거든요. 제가 연차가 쌓여서 뽑는 입장이 된다면 평범한 라디오 피디 지망생 2000명이 비슷한 걸 가지고 있을 때, 그것과는 정말 성격이 다른 분야에 특기를 가진 지원자를 눈여겨 볼 것 같아요.

 

 

방송사 시험 전형이 길잖아요. 합숙이나 면접에서 기억에 남는 경험이 있으면 들려주세요. 

 

보통 필기전형을 거쳐서 1박 2일 동안 합숙을 가는데요. 합숙기간 동안 응시자들에게 던져지는 과제들이 굉장히 생생하고 재미있었어요. 실제 PD 선배들이 만든 느낌이랄까요. 라디오 편성표를 던져주고 새로 그려보라는 과제도 있었고 작문 주제도 ‘A와 B’ 이런 식이었죠. 또 구둣발 소리, 풀숲소리, 차가 다니는 소리 등 여러 가지 효과음을 연이어 들려준 다음에 이 소리들로 어떻게 프로그램을 구성할 지 써보라는 시험도 있었어요. 하나하나가 ‘미션 클리어’ 하는 느낌이었고, 정답이 없지만 이걸 어떻게 풀어나가는 지를 보는 문제들이 많아서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에는 어떤 문제가 나올까 기대가 될 정도로요.

 

최종 면접 때는 ‘보이는 라디오’에 대해서 질문을 받았어요. 2명이 들어갔는데 보이는 라디오가 라디오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보이는 라디오도 라디오’라고 대답했고, 옆 사람은 ‘라디오의 본성을 헤치는 것’이라고 얘기했는데요. Yes, No를 나눠가진 셈이니 면접 끝나고 나오면서 “우리 둘 중 하나는 떨어지겠다” 이랬거든요.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둘 다 합격이었어요. 그러니까 정답은 없고 자기 의견이 뚜렷하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논리정연하게 얘기할 수 있는지를 보는 거예요. 면접이 그런 거더라고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육아랑 피디일 병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방송 끝나고 집에 오면 1시가 넘어요. 처음에는 시차적응이 안 되서 힘들었죠. 출근은 오후 3시지만 아기 때문에 늦잠을 못 자니까요. 그래도 지금은 아기가 저에게 많이 맞춰줘서 아침 10시에 일어나요. 일어나면 아기랑 좀 놀고 12시부터 1시부터 잠깐 토막 잠을 자고 출근준비를 합니다. 생활리듬은 AD 때가 더 안 좋았어요. 밤에 많이 먹고 시차도 엉망이고 아침에 해 뜨면 자고 이러니까 살이 금방금방 쪘거든요. 그 때보다 지금이 건강이 더 좋아요. 워낙 일정이 힘들긴 하지만 밤낮이 안 바뀌고 아침에 기본적인 스케줄은 유지가 되니까요. 따로 운동은 안하고 육아가 운동이죠. (웃음) 

 

 

스트레스를 풀고 재충전하는 피디님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저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요. 중학교 때부터 만화를 시리즈별로 사 모으곤 했습니다. 휴일에 시간 내서 학교도 가고, 대형서점에도 가는데 만화보고 고르기엔 종로 영풍문고가 편해서 자주 가요. 만화는 종류를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에요. 『바사라』, 『세븐시즈』, 『21세기 소년』, 『빌리 배트』, 『심야식당』 전부 재미있게 봤어요.

 

지난주에 서점에 갔더니 일본 만화인데 『사랑합니다』가 눈에 띄었어요. 전편, 후편 2권짜리인데 아기 있는 엄마들이 특히 재미있게 볼 만한 만화였습니다. 서점 가는 건 원래 좋아했고 직업상 트렌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신간 베스트셀러, 잡지도 챙겨서 보고요. TV도 ‘무한도전’ 같은 교과서적인 프로그램은 꼭 보죠. 방송 끝나면 포털 사이트 메인 도배하는 그런 프로그램들은 다 챙겨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별밤 잼 콘서트로 한창 바쁘신데 어떤 콘서트인지 소개해주세요.

 

11월 25일에 하는데 별밤에선 11년만에 부활하는 큰 행사에요. 잼 콘서트가 어떤 개념이냐면 참여하는 가수들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악기를 하나씩 맡는 거예요. 김종서 씨가 드럼, 김건모 씨가 건반, 이문세 씨가 기타 이런 식으로 밴드 하나를 꾸리는 거거든요.

 

2000년을 마지막으로 11년 동안 못한 이유가 가수들이 악기를 다루고 연습할 시간이 없는 거죠. 게다가 바쁜 사람들끼리 시간을 맞춰서 편곡과 합주연습도 해야 하고요. 이번에 섭외하는 데도 정말 힘들었지만 다행히 가수 이승환 씨가 무대연출을 맡아주셨고 최근 컴백한 그룹 ‘원더걸스’부터 ‘스윗소로우’ 등 여러 가수들이 함께 해요. 공들여 준비한 만큼 많은 관심 가져주세요.

 

 

마지막으로 이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요즘 친구들은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고 일찍부터 자기 길을 정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거기에 맞춰서 활동도 다양하게 하고요. 근데 제 경험을 돌이켜 생각해 볼 때 목표를 세우긴 하되 아직 선택의 기회들이 많이 있으니까 큰 방향에서 달라지지만 않는다면 다양한 경험을 해봤으면 해요. 저도 이것저것 경험하다보니까 TV 피디가 아니라 라디오 피디가 제 적성이었다는 걸 찾게 된 거거든요.

 

목표를 좁게 잡고 이거 아니면 안 된다고 단념했다면 라디오피디라는 길을 영영 못 찾았을 수도 있죠. 자기한테 정말 맞는 직업, 평생 할 일을 꼭 A라고 단정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봤으면 합니다. 저는 길 찾는 데만 2-3년 걸렸던 것 같아요. 물론 힘들고 괴로운 시기죠.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어주었던 고마운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다시 라디오의 전성기가 왔으면 좋겠어요. 뉴미디어가 한창 각광받고 있지만 변하지 않는 근본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어린 친구들은 라디오로 라디오 듣는 걸 이해 못한대요. CD를 CD플레이어로 듣는 것도 생소해 하고요. 전부 파일로 다운 받아서 듣고 라디오도 인터넷으로 들으니까. 중요한 건 그때 라디오로 듣던 라디오는 없어졌지만 라디오의 근본은 남아있더라는 거예요.

 

지금껏 그래온 것처럼 라디오의 형상은 끝없이 변하겠지만 그 옛날 엄마한테 혼나고 내 방에 들어와 낄낄거리며 듣던 라디오처럼, 고개를 돌리면 바로 옆이나 뒤에 남아있을 그런 가까운 매체가 라디오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라디오의 변화에 대해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변해가는 과정 한 가운데 있으니까요. 말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