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

검색 열기
통합검색
모바일 메뉴 열기

이화여자대학교

통합검색
nav bar
 
Ewha University

People

[문화예술계] 젊은 건축가 상 수상 전숙희(건축, 98년 졸)

  • 등록일2015.03.18
  • 5520

이미지1

 

 

이화여대 전숙희 동문(건축·98년 졸)(사진 왼쪽)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젊은 건축가 상’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젊은 건축가 상’은 문화부가 매년 건축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우수 신진 건축가에게 주는 상이다. 올해는 총 18팀이 공모에 참여, 전숙희 동문의 ‘와이즈 아키텍처’ 사무소를 포함해 3팀이 상을 받았다.

 

2008년부터 남편인 건축가 장영철 씨(사진 오른쪽)와 함께 ‘와이즈 아키텍처’를 운영해 온 전 동문은 ‘와이(Y) 하우스’, ‘이상의 집’ 등을 통해 “기존 건축의 영역을 벗어나 관점을 바꾸면 새로운 개념의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와이(Y) 하우스’를 통해 그동안 획일적으로 지어져 온 다세대 주택에 디자인을 입혔고, ‘이상의 집’은 한옥의 장점과 고유성을 최대한 살린 내부 리모델링안 외에도 주택가의 가로를 건축 공간으로 확장해 설치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제안으로 눈길을 끌었다.

 

한가위를 며칠 앞 둔 9월의 어느 오후, 성동구 금호동2가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와이즈 아키텍처’ 사무소를 찾았다.      
 


건축가, 대표 중 호칭을 뭐라고 해야 할까?

 

와이즈 아키텍처는 건축사무소인 동시에 개인연구소이기도 하다. ‘전숙희 소장’이라고 불러달라.(웃음) 

 

 

94학번이면 건축학과 1호 졸업생인가?

 

맞다. 입학하던 해(1994)에 건축학과가 만들어져서 면접을 화학전공 교수님이 봐주셨던 기억이 난다. 처음엔 자연과학대학 소속이었는데 1996년에 여대 세계 최초로 이화에 공대가 만들어지면서 건축학과가 공대 소속이 됐다. 건축학과로든, 공대로든 이래저래 ‘1기’인 셈이다.

당시 건축학과 동기가 20명이었는데 사이가 각별했다. 대부분 건축계에 종사하고 있고 지금도 다 연락하고 지낸다. 94년도에 오셨던 임석재 교수님(건축학)이 이화 건축학과 ‘1호’ 교수님이셨는데 지금도 젊으시지만 그때는 정말 더 젊고 좋은 교수님이셨다. 동기들 데리고 답사도 많이 다녀 주셔서 94학번들에겐 특별하신 분이다.    

 

이미지2


 

사무실이 중층이라 시원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처음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는 강남역에 있는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열었는데 공간이 너무 협소했다. 우리가 하는 작업은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책들도 자유롭게 배치하고 직접 만든 모델이나 그림을 붙여둘, 많이 구획되지 않고 시원하게 뚫린 곳을 원했는데 마침 우리가 건축주의 요청을 받아 작업 중이던 ‘Y 하우스’가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Y 하우스’는 전용면적 85㎡(25평 규모) 4세대, 115㎡(33평) 2세대로 구성돼 있다. 그 중 4세대는 남향으로 층층이 배치하고, 북쪽에 2개의 로프트(LOFT·중층) 스튜디오를 만들었다. 중층 2세대 중 하나에 우리가 들어온 거다. 건축가들 입장에서 작업실 천정이 높다는 건 상당한 매력 포인트다. 모빌을 매달기에도, 직접 만든 모델의 조감도를 찍기에도 제격이다. 임대주택 중에 로프트는 드문데다 간혹 있어도 상당히 비싸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생활주택이 대부분인 금호동은 건축사무소로는 흔하지 않은 입지인데 

 

위치보다는 내부구조가 마음에 들어서 들어왔지만 지내보니 입지 역시 상당한 장점이 있었다. 공구 도매상이 밀집한 을지로도, 소규모 공장들이 모인 성수동도 자가용으로 10분 안에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작업하다 재료가 떨어졌을 때, 레이저 커팅 같은 전문적인 재단작업이 필요할 때 동네 마실 가듯 다녀올 수 있으니 편하다. 또 도심과 가깝기 때문에 업무상 미팅을 갈 때도 부담이 없다.

 

건축주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건축 사무소가 어디 있느냐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들에게 건축가는 평생 모은 돈, 평생 모을 돈이라고 예상하고 빌린 돈을 맡길 사람 아닌가. 그 소중한 돈을 얼마나 성실하게 가치 있는 결과물로 돌려줄 수 있느냐, 그걸 고려할 것이다.  
 


밝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외관도 특이하다.

 

건축주가 처음부터 북향 건물의 단점을 보완할 설계를 원하셨다. 그래서 커튼 월(*투명 유리 혹은 반사유리를 사용한 빌딩 외벽)을 넣으려고 했는데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대안을 찾으려고 리서치를 많이 했다. 고민하다 생각한 재료가 폴리카보네이트다. 빛을 투과하기 때문에 북향인 건물에 제격인데 비용은 커튼 월 마감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이게 플라스틱 일종이라 내구성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재료 자체가 5겹으로 이루어져있고 내열처리가 잘 돼 있어 실제 건축 재료로 많이 활용된다. 단점이 있다면 유리보다는 저음의 소리를 많이 투과한다는 것이다. 대신 고음의 소리는 잘 차단하고 단열성이 유리보다 좋다. Y하우스를 설계할 때 우리는 뉴욕에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많이 안 쓰는 자재를 떠올릴 수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설계 작업할 때 어디에 주안점을 두나?

 

건축학도 시절에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는 건축물을 꿈꿨다. 그런데 실제 건축가가 되고 나서는 일상적인 것들을 잘 디자인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서울은 600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도시이고 거기에 걸맞은 건축 노하우가 숨겨져 있다. 그런데 근대화 이후 급격하게 도시가 팽창하면서 주거용으로 치열하게 고민되지 못한 건물들이 많아지고 있다.

 

같은 비용이라도 어떻게 디자인되느냐에 따라 공간이 얼마만큼 달라질 수 있는지 사람들이 모르는 것 같다. 그건 건축가가 디자인한 주택엔 돈 많은 사람만 살 수 있다는 깊은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허가방(부동산 관련 인허가 전문 대행업소) 도면보다야 비용은 조금 더 들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입는 속옷은 디자인을 고려하면서, 더 큰 비용을 들여 삶의 큰 부분을 좌우하는 집을 지으면서는 디자인을 너무 쉽게 양보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건축가가 열악한 주거환경에 사는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줄 수는 없지만 잘 만들어진 디자인을 제시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시도로 인해 일상적인 것, 작은 것(smallness)에 건축을 접목함으로써 사람들이 건축과 공간에 대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상기시켜 줄 수 있다면 좋겠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상관없는 장식이 아니라, 숨어있는 공간을 찾아내고 삶의 이야기를 회복하게 하는 핵심요소로서의 디자인을 하는 게 우리 ‘와이즈 아키텍처’의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지 3


 

 건축가로서 일종의 소명의식 같은 게 보인다.

 

우리도 실무를 하는 동안에는 이름 있는 누군가의 사옥처럼 크고 비싸다는 건물들 많이 설계했다. 하지만 그런 큰 프로젝트가 건축가들이 하는 작업의 전부는 아니다. 삶과 치열하게 맞닿아있는 작은 것, 일상적인 건축의 문제에도 건축가들은 관심이 많다. 많은 건축가들이 ‘동네건축가’를 자처하는 이유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한 건축가는 이렇게도 말한다. “난 내가 사는 동네에 대해서 참견하는 거 굉장히 좋아합니다.” 실제로 그 말이 맞다. 좋은 건축가는 좋은 동네 건축가다. 자기가 발을 딛고 사는 동네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건축적인 문제가 있으면 오지 말라고 앞장서실 분들이다.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좋은 ‘참견쟁이’들이 되시면 도시가 더 살기 좋은 공간이 되지 않을까.

 

 

최근 하는 작업은?

 

일반 건축주들이 맡기신 작업과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작업 등으로 바쁘게 보내고 있다. 특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에서 진행하는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사업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라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대협 쪽에서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들을 대상으로 지명현상을 했는데 운 좋게 우리가 당선됐다. 이 일을 하면서 일본인 중에 정신대 할머니들을 후원하는 개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다. 같은 한국인, 여성으로서 관심이 적었던 게 부끄럽다. 

 

‘젊은 건축가상’이 커뮤니티 형성의 역할도 하기 때문에 이번 공모에 참여한 건축가들끼리는 모두 친분이 있다. 프레젠테이션 전에 아이디어를 도용당할 걱정도 없이 서로의 구상을 마음껏 오픈하는가 하면, 최종 당선 후에도 경쟁에 참여한 작가들이 같이 프로세스를 고민해주고 도와주는 희귀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좋은 친구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젊은 건축가상’에 많이 고맙다. 

 

 

건축계에서 ‘젊다’는 기준이 다른 직군과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졸업 후 자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기까지 수련기간이 길다보니 40대 초중반을 ‘젊다’고 하는 것 같다. 실제 젊은 건축가상 수상자들 나이대가 그렇다. 같이 공부하는 사람들끼리는 농담으로 건축가가 굉장히 ‘어메이징한 직업’이라고 한다. 어떤 직업에선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에 ‘영 아키텍트’ 소리를 듣지 않나.

 

건축가는 실제로 직업 수명도 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지 작업을 계속 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Oscar Niemeyer) 같은 경우는 100세이신데 지금도 건물 짓고 얼마 전엔 재혼도 하셨다.

 

(The Ewha) 그렇다면 30대인 전숙희 소장은 젊다기보다 어리다는 말을 들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여자인데다 재수나 휴학을 한 적이 없어서 좀 더 이른 나이에 실무를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당시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 하셨던 승효상 선생님 사무소(이로재)에 바로 취직을 했는데 제일 어렸다. 바로 IMF까지 터져서 사무실에서 신입을 한동안 안 뽑았기 때문에 유학가기 전까지 계속 막내로 지냈다. 거기서 첫 실무를 배웠고 남편인 장영철 소장은 원래 알고 지낸 사이였다가 같이 일하면서 결혼까지 하게 됐다.  

 

 

소수인 여자 건축가로 사는 어려움은 없나?

 

첫 직장인 이로재는 여자가 많은 편이었다. 전체 직원 중 30% 정도가 여자였고, 무엇보다 5명 팀장 중에 여자팀장이 둘이나 됐다. 다행히 성별보다는 재능을 더 우선시하는 사무실에 다녀서 큰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만큼 건축계가 남자 위주로 돌아가진 않는다. 각 대학 건축전공을 봐도 생각보다 여자가 많다. 건축설계는 어디까지나 정신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그것을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요한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비교해서 열세일 이유가 없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겠지만 잘 나가던 여성 건축가들이 출산이나 육아 때문에 중간에 뒤처지는 경우는 분명 있다. 하지만 고비를 잘 넘기면 아이도 자라고 건축가로서의 커리어도 잘 관리할 수 있다. 건축가가 좋은 게 전문인으로 정착한 이후에는 일을 하는 시간과 밀도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게 열 달 된 아들이 있는데 30대 중반에 초산을 한 거라 걱정도 많았고, 부모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안팎으로 늘 바쁘지만 아이가 있다는 건 지치지 않는 의욕과 생기를 주는 것 같다.

 

현재 학생들에게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는데* 늘 ‘하나도 포기할 게 없다’고 얘기해준다. 미리부터 겁먹어서 단념하지 말고 밀도 조절을 잘 하면 일과 가정을 잘 매니지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 전숙희 동문은 2010년 1학기부터 2011년 2학기 현재까지

건축학과 3학년생들을 대상으로 한 전공과목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건축가로서 서울에서 매력 있는 장소는 어디인가?
                
단일 건축물로는 사대부의 살림집을 본 떠 만들었다는 창덕궁 연경당을, 마을로는 서촌(경복궁의 서쪽마을)을 좋아한다. 특히 서촌은 꼭 걸어서 한 번 둘러보길 권한다. 서촌의 진가를 알려면 경복궁 끝자락부터 시작해 평평한 서촌을 거쳐 언덕을 지나 청운동으로 돌아 나오는 코스를 골목골목 걸어봐야 한다.

 

정선의 인왕제색도에 나오는 다리가 서촌에 있다. 인왕제색도의 다리는 옥인아파트 쪽 공사현장에서 볼 수 있는데 콘크리트 덩어리들 사이로 다리 모양이 그대로 남아있다. 우리 같이 공사장 들여다보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다리에 참 애착이 간다. 이 밖에도 세종대왕 생가 터, 순종 왕후 윤비의 생가에 이르기까지 시간의 흔적이 경이롭게 펼쳐진다.            
          


롤모델로 삼는 건축가가 있나?

 

모든 건축가의 작업에는 저마다의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작품 자체를 닮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다만 오랫동안 작업을 해온 대가들의 건축철학이나 살아온 방식은 존경스러운 부분이 많다.

 

남편과 내가 오래 전부터 좋아한 건축가는 스위스의 피터 줌써(Peter Zumthor)다. 2009년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하셨는데 이 분은 자신이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작업을 맡지 않는다. 무엇보다 자기가 뿌리 내리고 있는 동네의 토양이나 자연재료의 특성들을 잘 이해하고 그 안에서 굉장히 좋은 건축물들을 많이 지었다는 점이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자기 땅 고유의 것을 세계화시켰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호주 건축가 글랜 머컷(Glenn Murchutt)도 마찬가지다. 이 분은 2002년에 프리츠커상을 받으셨다. 호주의 자연과 풍토를 잘 살려서 자신의 모던 건축을 재해석하고 토착화한 건축가다. 호주 오지의 양털깎이 축사를 본 뜬 매그니 하우스(Magney House)의 경우 우리에겐 굉장히 독특하게 보이지만 호주에서는 전통적이고 일상적인 풍경이다. 건축은 그 나라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한 만큼 우리도 우리나라 토양에서 잘 성장한 건축가들의 작품이 세계화됐으면 좋겠다. 

 

 

한 명의 건축학도로 돌아가 이화를 평가한다면?

 

이화는 캠퍼스 자체가 학생들에게 건축을 굉장히 가깝게 만드는 곳이다. 보통 이화 정도의 규모를 가진 대학은 캠퍼스 건물 배열이 굉장히 도식적으로 돼 있지 않나. 반면 수많은 단선과 우회로로 이루어진 이화의 캠퍼스는 매우 특수한 캠퍼스 플래닝을 가진 곳이다.

 

곳곳에서 자연과 어우러진, 전통 있는 건물들을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북아현문 쪽으로 가다보면 실제로 식재를 심고 성장시켜서 학교에 옮겨 심는 작업도 한다. 건축학과 학생들에겐 매우 중요한 작업들이 캠퍼스 곳곳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가 좋은 건축물에 관심이 많기도 한 것 같다. ECC부터 다른 건물 하나하나까지 막 지은 건물이 없다.

이런 곳에서 4-5년 공부하는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된다. 재미있는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공간감각이 좋다고 한다. 오밀조밀 잘 만들어진 마을에서 뛰놀면서 자란 아이는 흉내내기 어려운 감성을 가지게 된다. 이 점이 이화 건축학과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디자인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능은 굉장히 작은 부분이다. 꾸준한 연구와 공부로 계발될 수도 있는 반면 게으른 재능은 결국 소진된다. 셀프 레퍼런싱(self-referencing)이라는 말처럼 타고난 재능에만 의지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복제해 내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거다.

 

건축학과에 들어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난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되니 일단은 공부를 하라고 얘기해준다. 공부라는 게 도서관에서 책만 보라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을 많이 보고, 직접 그려보고, 만들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재능이 보완이 되기도 하고, 몰랐던 재능이 발굴되기도 한다. 모두 공부를 해 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기회다.

이미지4

 이런 곳에서 4-5년 공부하는 자체가 좋은 공부가 된다. 재미있는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공간감각이 좋다고 한다. 오밀조밀 잘 만들어진 마을에서 뛰놀면서 자란 아이는 흉내내기 어려운 감성을 가지게 된다. 이 점이 이화 건축학과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디자인을 재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재능은 굉장히 작은 부분이다. 꾸준한 연구와 공부로 계발될 수도 있는 반면 게으른 재능은 결국 소진된다. 셀프 레퍼런싱(self-referencing)이라는 말처럼 타고난 재능에만 의지하면 결국 자기 자신을 복제해 내는 일밖에 할 수 없는 거다.

 

건축학과에 들어온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재능이 있는지를 먼저 고민한다. 난 고민은 나중에 해도 되니 일단은 공부를 하라고 얘기해준다. 공부라는 게 도서관에서 책만 보라는 것이 아니다. 건축물을 많이 보고, 직접 그려보고, 만들어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부족한 재능이 보완이 되기도 하고, 몰랐던 재능이 발굴되기도 한다. 모두 공부를 해 본 사람만 가질 수 있는 기회다.

 

나 역시 IMF 때 학교를 졸업하다 보니까 불확실성 때문에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다. 공부하는 시간보다 의심하는 시간이 더 많았던 시기였다. 그게 시간낭비라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적어도 이화에 들어오는 학생 중에 기본기가 부족한 사람은 없다. 시작하는 이들은 정말 미세한 차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갈고 닦느냐에 따라 5년 뒤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 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