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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계] 사법고시 합격 후 연수원 입소 미루고 세계일주 한 우은정(법학,10년 졸)

  • 등록일2015.03.17
  • 4648

우은정

편한 관광명소나 휴양지 하나 없이 2010년 1월부터 아프리카 남단에서 육로로 대륙을 거슬러 올라가 이집트, 중동지역을 거쳐 남미로 이어진 319일의 여정은 사실상 ‘오지탐험’과도 같다. 이 여행을 위해 우 씨는 2009년은 남은 학기 및 경비를 버느라, 2010년은 실제 여행하느라 정작 사법연수원은 올해 3월에나 들어갈 수 있었다.

아직도 남부 아프리카의 화물 트럭 위에서 보았던 별천지의 밤하늘과 염소젖 냄새, 하마르족 소년 캘리와의 우정을 떠올리면 눈물이 고인다는 우 씨를 13일 오후 일산 사법연수원 앞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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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에서 이화 출신 기자 선배를 만났죠"


- 시험이 코앞인데 인터뷰 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바쁘시죠?

아닙니다.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해요. 연수원 시험 성적 하나하나가 판검사 임관을 좌우하다 보니 모두들 굉장히 열심히 하긴 해요. 중간에 몸이 안 좋으면 휴학할 정도니까요. 그래도 오늘은 내일 모레가 스승의 날이라 사은회도 갑니다.

- 1월에 각종 매체에 기사가 났는데 어떻게 알려진 건가요?

여행 중 요르단에서 만난 한국인 동행자가 우연히도 이화 동문 선배였어요. 같이 사흘 동안 여행도 하면서 친해졌는데, 그 분이 통신사 기자였던 바람에 기사가 나가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야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지만 이렇게 주목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느 날 포털 메인에 제 얘기가 나오는 걸 보고 정말 깜짝 놀랐죠. 그 계기로 출판사에서 출간 제의가 와서 여행서도 조만간 나올 예정입니다. 틈틈이 여행의 기억을 떠올리며 원고를 쓰고 있어요.

- 연수원 미루고 길게 여행가는 걸 주변에서 말리진 않았나요.

수험기간 중에는 정말 여행에 대한 상상이 큰 활력소가 됐어요. 세계지도 책상 앞에 붙여두고는 공부하다 힘들면 보면서 ‘합격하면 일생일대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고요. 근데 막상 붙고 나니까 주변에서 전부 바로 입소하고, 한 두 해 지체하면 로스쿨 첫 졸업생과도 경쟁해야 된다는 얘기도 들리는 거예요. 부모님들도 바로 연수원 들어가길 바라셨습니다. 여자 혼자 여행한다는 게 위험하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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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흔들리던 2008년 겨울에 우연히 ECC 모모에서 영화를 한 편 봤는데 그게 바로 ‘레볼루셔너리 로드’였어요. 영화가 원래 의도했던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끝나고 나오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정말 하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했죠. 복학해서 세계사며 언어 관련 과목을 챙겨듣고 목적지의 문화와 역사 관련 책들도 찾아서 읽고요.


"인생의 이정표를 찾는 여행, 시간이 아깝지 않아요"

- 여행 경비를 직접 벌어서 갔는데요.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셨다고요.

고시학원 보조강사도 하고 이태원 바에서 바텐더도 하고요. 이태원 바는 외국어도 배우고 미리 타국 문화도 체험하려고 일부러 지원했습니다. 거기서 여장남자, 트렌스젠더, 게이 등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거부감이 있었지만 얘기를 나눌수록 그들의 상처를 볼 수 있었어요. 타인의 시선에 갇혀 산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잖아요. 직접 돈을 벌다보니 현실감각이 생겨서 여행계획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세울 수 있었습니다.

- 관광, 휴양지보다 오지를 많이 다녔는데 이유가 있나요?

제가 대단한 뜻을 품고 세계일주를 한 것은 아니지만 법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는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제 분쟁과 빈곤, 기아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지역별로 여행하며 생각해 볼 주제를 정했었어요. 목적지를 아프리카, 중동 그리고 남아메리카로 정한 것도 식민지로서의 역사를 가지고 현재에도 개발도상국으로 남아있는 지역에 가서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행에서 배우는 것이 있다면 그것들이 앞으로 제가 걸어갈 길에서도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아프리카 밤 하늘의 쏟아지는 별들, 염소젖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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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개국 중 가장 인상적인 나라는 어디였나요?

8번째 갔던 에티오피아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다른 나라에 비해서 굉장히 안전하거든요. 세계 최빈국인데 신기하죠. 그리고 한국전쟁 참전국이라 한국인에 대해서는 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고요. 전 그나마 발달이 된 북부 말고 소수민족의 고유문화가 살아있는 남부에서 3주간 머물렀습니다.

남부는 상상만 해왔던 아프리카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교통이 불편하고 전기나 물 사정도 안 좋아요. 하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해도 좋을 만큼 매력이 있지요. 남부의 케이아파르에서 투르미 마을까지 4시간 걸리는 흙길을 수송트럭 짐칸의 곡물더미에 앉아서 갔던 기억이 납니다.

트럭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들르면서 사람들을 더 태우더니,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제 오른쪽에는 하마르족 여인들이, 왼쪽에는 닭과 염소들이 있었어요. 해가 지니까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는데요. 제가 달리는 땅을 제외한 온 사방천지가 별인 거예요. 까만 하늘에 총총히 박혀서 쏟아질 듯 빛나고 있는 별들을 사방에 두고 희미한 염소젖 냄새와 흙냄새에 취해서 고개를 하늘을 향해 젖혔는데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이 안 되는 거예요. 그냥 허허허 웃었어요.

"가난하다고 현금주는 건 금기…하지만 내 친구 캘리는 이해할 거예요"

- 공부하는 데 쓰라고 200달러를 주고 온 아프리카 소년이 있다면서요?

에티오피아에서 만난 열일곱 살 캘리요. 캘리는 디메카라는 마을에 사는 하마르족이에요. 다른 아이들은 일단 외국인이라고 하면 ‘기브 미 머니’ 이러거나 배고프다고 하는데, 이 소년은 수줍음도 많고 저를 친구처럼 대해주는 거예요. 식사 때 되면 사라졌다가 나타나는데 밥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요. 배낭여행자인 저희에게 부담이 될까봐 거짓말을 한 것이죠. 나중에 헤어지려니 너무 서운해서 캘리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다가 비상금을 털게 됐어요.

가난한 지역 사람들을 돕는답시고 여행자가 현금을 건네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는 일인데, 캘리의 성품으로 봐서 충분히 제 의도를 헤아려 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쉽게 건네는 돈이 아닌 만큼 의사 꿈을 이루는 데 가치 있게 써 달라고 얘기했습니다. 나중에 노력해서 대학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금전적으로 어려워서 포기해야 될 상황이 오면 꼭 연락해 달라고 이메일 주소도 적어주었습니다. 캘리가 우리 차가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배웅을 해주었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 여행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가요?

물 한 컵으로 세수와 양치를 하고, 열대 벌레에 시달리는 일 같은 건 돌아보면 힘들지 않았어요. 정말 힘든 건 사람에게 실망하고 지칠 때입니다. 식당, 호텔, 버스 장소를 안 가리고 여행객들을 상대로 10배, 20배가 넘는 ‘바가지요금’을 씌우곤 했어요. 막 화가 나서 따지면 현지인과 외국인은 요금이 다르다는 변명이 돌아오고요. 점점 즐거움이 사라지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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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실망하고 화를 내고, 다시 웃고…여행은 삶의 축소판 

그 때 한국의 친구로부터 온 메일이 힘이 됐는데요. ‘생각보다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가 봐. 그렇지만 엽서속의 너는 정말 살아 숨 쉬고 있더라. 온갖 감정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내용이었는데 내가 왜 여행을 하는지 잠깐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쁜 일들, 안 좋은 일들 그 모두가 여행의 일부잖아요. 인생이 그렇듯이 여행에도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이 있고, 막다른 길에서 낙심하다가도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받아 그곳을 빠져나오고, 사기 당하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화를 내고, 싸우고, 포기했다가도 다시 사람 때문에 웃게 되고.

인생이 그리고 여행이, 그런 것들의 반복이라면 이렇게 심하게 화를 내는 것도 우습지 않을까. 조금 더 다른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웃으면서 여행하자.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도 그렇게 여행하듯이 살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사진이나 동영상은 많이 찍으셨나요?

원래부터 다큐멘터리나 동영상에 관심이 많아서 틈틈이 여행영상을 편집해서 뮤직비디오로 만들어 유투브에 올려두었어요. 유투브에 ‘우은정’ 치시면 검색됩니다. (웃음) 지금도 연수원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기록할 일이 생기면 제가 동영상 제작을 직접 하고 있어요.

- 고고학, 신문방송학도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은데 왜 법학도가 되셨는지?

아버지가 법학을 전공하시고 노동위원회에서 일하시는 데 어려서부터 법학서적이나 아버지 하시는 일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진로를 정했던 것 같고요. 지금은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입니다. 연수원에서 공부하다 보니까 국제기구로 갈 수 있는 기회들이 여럿 있더라고요. 국제 인권협약 쪽도 관심이 많아요. 국제인권법을 전공으로 택해서 듣고 있는데 실무가들이 오셔서 도움 되는 말씀을 많이 해주십니다.

‘오춘기’ 겪는 후배님들,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고, 배우시길

- 이화에서의 4년은 어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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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 대학 진학이라는 목표만 향해 달려오다가 막상 대학에 오면 갑자기 무엇을 향해 가야할지 혼란에 빠지는 시기가 있잖아요. 속칭 ‘오춘기’가 찾아오는 것이죠. 그러던 중에 첫 전공과제에서 ‘지양해야 할 레포트’로 뽑혀서 내가 전공을 잘못 택한 것은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었습니다. (웃음) 그래도 조바심은 내지 말자고 생각했고요. 어학연수부터 창업동아리, 공부방 봉사, 여행 등을 경험하면서 저의 가능성이나 제가 갈 길에 대해서 꾸준히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전 7년이라는 긴 대학생활을 하면서 정말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고, 

전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관계’의 소중함도 깨달았어요. 최선을 다해 공부를 했고 다행히 좋은 결과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제가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그 큰 줄기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지구상의 기아와 분쟁, 차별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일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것을 발견하게 하는 바탕이 된 것이 저의 모교, 이화이고요.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가 정말 원하는 길을 찾으려면 대학 시절의 도전과 경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앞에 펼쳐질 날들은 자신을 스스로 발견하는 중요한 시기인 만큼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하고, 배우고, 노력하시길 바랄게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여러분의 숨어있던 가능성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반짝거리고 있을 거예요.

│글·편집 이화여대 홍보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