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계] 발레 신인 등용문 <호두까기 인형>으로 주역 데뷔한 한나래 동문(무용·08)
- 등록일2015.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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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크리스마스 공연의 대명사 <호두까기 인형>이 많은 관객들의 사랑을 받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차이코프스키의 아름다운 음악과 러시아 발레의 거장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안무 버전으로 유명한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은 신인의 주역 등용문으로도 유명하다. 한나래 동문(무용·08)은 <호두까기 인형>의 주인공 ‘마리’ 역으로 첫 주역 무대에 올랐다. 발레단 입단 후 맡았던 작은 역할들에서 보여준 성실함과 책임감 덕분이었다. ‘성숙한 발레리나’를 꿈꾸는 한나래 동문을 학교 앞 카페에서 만났다.
● 신인 등용문 <호두까기 인형>, 벅차고 행복한 무대에 서다
‘마리’ 역에 캐스팅이 되고 나서 게시판에 제 이름이 붙어있었어요. 그걸 처음 봤을 땐 솔직히 부담스러웠어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했죠. 그런데 제가 국립발레단에 들어온 지 2년 반 정도 됐거든요. 여기서 작은 역할, 큰 역할 가리지 않고 여러 역할을 맡아왔기 때문에, 그 경험들을 토대로 ‘할 수 있겠다’, ‘해봐야겠다’라고 생각할 수 있었어요. 춘천, 안동 등 지방 공연도 많아서 2주 동안 주연과 솔리스트를 번갈아 하면서 자신감을 붙일 수 있었어요. 서울 공연은 두 번을 했는데 평소에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던 거랑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굉장히 벅차올랐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이런 무대를 봐 왔으니까… ‘드디어 내가 해냈구나!’하는 그런 느낌도 있었죠.
사실 제가 걱정 했던 건, <호두까기 인형>이 주역 데뷔의 등용문처럼 여겨지거든요. 그래서 이 공연에서 어떻게 평가 내려지느냐가 앞으로의 활동에 중요하기 때문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정말 좋게 마무리해서 다행이었어요. 갑자기 팬도 많이 생겼죠.(웃음) 올 한 해 동안 일어난 일들이 한편으론 얼떨떨하고 어색하기도 하지만, 정말 행복했어요.
● ‘마리’ 역 캐스팅 비결… 차근차근 쌓아온 노력의 결실
이번 시즌 시작하고 <라 바야데르>라는 작품에서 솔리스트와 군무 역할을 했었어요. 그 때 강수진 단장님이 처음 오셨었는데, 그 때 되게 예쁘게 봐주셨죠. 그 다음 <백조의 호수> 공연을 했는데, 거기서 주역 1)언더 스터디(understudy)로 캐스팅이 됐어요. 그 때 ‘단장님이 좋게 봐주시는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음에 신작을 가져오셨더라고요. <베토벤 심포니>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이라는 작품을 했는데 그 때 절 스텝 바이 스텝(step-by-step)으로 잘 코칭해주셨어요. 그런 식으로 점차 인정받아갔죠.
제가 ‘마리’ 역으로 캐스팅 됐을 때 지도위원분들이나 예술 감독님도 저에게 ‘노력의 결실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맡겨준 게 아니라 여태 쌓아온 게 결실로 나타난 거 같으니 기회를 잘 잡아서 열심히 해라’고 말해주셨어요. 한마디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와서 데뷔를 할 수 있던 거죠. 처음에 발레단 들어왔을 때 주역들 뒤에서 군무도 열심히 했고 작은 역할도 최선을 다했어요.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맡은 역할은 최선을 다해야 해요. 물론 공연은 결과로 평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얼마나 잘 소화할 수 있는지 역량 또한 보신 것 같아요.
1)메인배우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대신 투입되는 배우
● 주역 부담감, 이겨내야 하는 것
전 되게 내성적인 성격이거든요.(웃음)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에 처음엔 정말 소심해졌었어요. 주변에서 ‘저 사람이 주역이야?’라며 보는 눈도 워낙 많으니 그만큼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죠. 아무래도 주연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데 그런 부담감도 자기가 어떻게 소화를 하느냐에 따라 이겨낼 수 있는 것 같아요.
● <호두까기 인형> ‘마리’를 위한 노력
국립 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공연은 기술적으로 힘든 부분이 참 많아요. 주연 무용수가 정말 힘들죠. 특히 마지막에 2)그랑파드되에서 솔로 바리에이션을 할 때 혼자서 춤을 추는데 이 부분에서 고난도의 테크닉이 참 스트레스였어요. 몇 년차 무용수든 특정 동작에서 다들 힘들어하죠.
그리고 3)제가 키가 크거든요. 이번 주역 여자 무용수 중에서 가장 키가 커요. 더구나 원래 남자 파트너가 제 키에 맞는 키가 큰 분이셨는데 그 분이 다치는 바람에 파트너가 바뀌었었어요. 그런데 제가 토슈즈를 신으면 파트너 분보다 큰 거예요.(웃음) 그 분이 워낙 노련한 분이라 리드를 잘 해주셨지만… 사실 키가 크면 아무래도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느낌을 주거든요. ‘다른 무용수들보다 춤 출 때 힘들어 보이지 않을까’, ‘남들이 하는 것처럼 나도 끝까지 해내야 하는데’라고 생각했죠. 기술적으로 약해보이지는 않을지도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서 힘 있어 보이려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열심히 했어요. 연습도 많이 했죠. 연습 정말 많이 했어요. (연습은 얼마만큼 하셨나요?) 연습 기간이 짧았어요. 그 전에 공연이 계속 있었거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준비할 때 정말 열심히 했어요. 발레단 퇴근도 안하고 다른 사람들이 집에 갈 때 남아서 연습했어요. 동작이 안 되면 스트레스 받아서 잠을 못 자겠는 거예요. 그래서 될 때까지 계속 홀에 남아 있었어요. 발레단에 정말 오래 남아있었어요. 아침엔 일찍 가서 운동 하고, 주어진 클래스하고, 리허설 하고, 남아서 늦게까지 연습하고,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테크닉이 중요하긴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테크닉만큼 중요한 게 표현력이었어요. 무용수마다 성격이 다르니까 각자가 표현하는 ‘마리’의 성격도 달라져요. 나중에야 알았죠. ‘마리’의 춤 순서는 같지만 각자 느낌이 다 다르다는 걸요. 각자의 ‘마리’가 다 따로 있는 셈이죠. (한나래 동문님의 ‘마리’는 어떤 ‘마리’였나요?) 글쎄요.(웃음) ‘마리’는 참 어리고 순수한 소녀에요. 선물 받고 좋아하고, 호두까기 왕자와 결혼하는 꿈을 꾸죠. 전 이처럼 명랑하고 발랄한 소녀 같은 ‘마리’의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2) 발레에서 남녀 무용수가 듀엣으로 아다지오·바리에이션·코다를 추는 장면
3) 한나래 동문의 키는 172cm이다
● 긴장을 뛰어넘는 ‘연습’ 필요해
긴장감 해소요? 사실 방법이 따로 있는 것 같진 않아요. 그냥 ‘경험’인 것 같아요. 당연한 말이지만 연습을 해야 긴장이 덜 돼요. 연습이 안 되어 있으면 긴장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긴장을 한다 해도 연습 하던 것 그대로 나올 정도로 연습이 되어 있어야 해요. 끊임없는 연습이 있어야 긴장을 뛰어넘을 수 있는 거죠.
● 캐릭터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는 발레리나
제가 가진 발레리나로서의 장점이요? 음…, 글쎄요.(웃음) 사실 테크닉 자체도 중요하지만, 그 역할에 어떤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아요. 캐릭터가 나타낼 수 있는 느낌과 감정을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발레리나가 해야 되는 역할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점에 중점을 두고, 많이 보여주려고 해요. |
관객들 역시 그런 느낌을 좋아하는 것 같구요. (평소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신가요?) 사실 평소엔 아니에요.(웃음) 그렇지만 그와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해요. 다른 무용수들이 연기하는 것을 많이 보고, 음악도 많이 듣고요. 또 상상도 많이 해요. 그 캐릭터에 맞춰서 그 감정과 느낌을 상상하면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돼요.
● 조금은 늦은 시작, 예고 3년간의 혹독한 배움
발레는 선생님의 권유로 중학교 때 시작하게 됐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늦게 시작한 편이죠. 처음에 정말 힘들었어요. 예술고등학교 입시 때도 정말 힘들었고, 뭣도 모르고 뽑아 주길래 그냥 들어갔어요.(웃음) 예고에서 정말 많이 배웠죠. (아무래도 또래 학생들보다 늦게 시작 했으니 힘드셨겠네요.) 네,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실기 성적이 안 좋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배워서 예고 다닌 3년간 기본기를 잘 다졌던 거 같아요. 사실 그 땐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고, 추억도 없었고 그저 발레만 열심히 했어요. 정말 열심히 배웠죠.
● 육체적 고통 뛰어 넘는 정신적 스트레스… 해결책은 끊임없는 ‘자기 관리’
발레리나로서 살아가면서 힘든 건 몸이 아프다는 것 아닐까요. 보통 공연 준비할 때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연습하기 때문에 발등이나 발목 인대가 늘어나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겨요. 허리 디스크를 앓아도 ‘디스크가 왜? 누구나 다 있는 거 아니야?’, 관절이 아프고 십자 인대가 찢어져도 ‘그게 뭐 어때서?’하며 당연하게 여기죠. 사실 육체적 고통은 평생 안고 가야하는 고통인 것 같아요. 은퇴 이후에도 후유증으로 아픈 사람들 많이 봐요. 사실 육체적인 것 보다 더 힘든 건 정신적 스트레스에요. 캐스팅이 나왔을 땐 부담되고 공연 전엔 극도로 긴장되죠. 내 컨디션이 어떤지와 상관없이 공연을 해야 하니까 그런 부분에서도 스트레스가 생기죠.
(그런 고충들을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육체적인 건 운동으로 해결해요. 허리가 아프면 허리 운동을 따로 하고, 무릎이 아프면 다른 곳의 힘을 키워서 무릎이 덜 아프게 하는 식으로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통해 적당히 필요한 만큼 근력을 키워요. 이런 식으로 신체에 관한 자기 관리가 늘 되어있어야 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혼자 해결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식으로요.
● 쉴 땐 열심히 쉬고 연습할 땐 열심히 연습해야
쉴 땐 정말 쉬어요. 푹 쉬어요.(웃음) 잘 쉬어야 시즌 때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요. (쉴 때 주로 뭘 하세요?) 다른 사람들처럼 친구들 만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래요. 사실 이번 휴가가 진짜 길거든요. 시즌 끝나고 거의 3주반을 쉬는데 정말 편히 쉬고 있어요. 시즌 땐 토요일, 일요일 거의 공연이 있다 보니까 거의 못 쉬거든요. 이렇게 편히 쉬다가 휴가 끝나갈 무렵 출근할 때쯤 되면 다시 몸과 마음을 다잡죠. 쉴 땐 푹 쉬고 연습할 때 열심히 연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이화에서 얻은 가르침… '자신감', 그리고 '책임감'
대학교 다닐 땐 사실 발레 열심히 안했던 거 같아요.(웃음) 고등학교 때 너무 힘들었다보니까 대학 생활이 정말 재밌었어요. 그 즐거움에 젖어서 1, 2학년을 보냈죠.(웃음) 미팅도 하고,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열심히 놀았어요. 3, 4학년 땐 학교 수업 열심히 들으면서 콩쿨도 틈틈이 나가고, 발레단 입단 준비를 했어요.
학교 다니며 느낀 건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사회생활 할 때 자기 프라이드가 강하니까 그만큼 책임감이 강해요. 저 역시 학교에서 그런 걸 몸소 배웠어요. 그래서 발레단 들어와서도 어떤 역할을 맡든 책임감 있게 할 수 있었죠.
● ‘성숙한 발레리나’를 꿈꾸다
전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발레단에서도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한 작품만 하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외국에서 발레단 생활을 해보고도 싶고요. 어느 무대에서든 탄탄한 테크닉은 물론이고 깊은 내면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성숙한 발레리나’가 되고 싶습니다.
* 출처 : 이화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