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방송계] SBS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임윤정 동문(국어국문·11년 졸)
- 등록일201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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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셀 수 없이 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루에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화된 정보에는 광고도 포함된다. 보여지는 것을 뛰어넘어 뇌리에 기억되어야만 하는 무수히 많은 광고들의 향연. 하지만 그 중에서도 눈을 통해 뇌에 각인되는 특별한 이미지와 문구는 분명 존재한다.
이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한 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카피에 세계에도 그 존재감을 확실히 하는 이화인이 있다. 짧게, 그러나 강렬하게. 5년간 제일기획에서 카피라이터로, 그리고 현재는 SBS에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임윤정 동문(국어국문·11년 졸)을 이화투데이가 만나보았다.
1. ‘카피라이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카피라이팅은 기본적으로 마케팅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글쓰기예요. 일반적인 글쓰기와 다르다고 볼 수 있죠. 각각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그러한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용되는 글쓰기가 카피라이팅이에요. 그 안에는 광고 속 대상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려는 의도가 가장 크게 숨어 있어요.
2. 카피라이터의 길로 뛰어드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화여대에 입학할 때 소설 특기자 전형으로 입학했어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소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1, 2학년 때는 책을 정말 많이 읽고 혼자 글을 쓰면서 지냈는데, 그러다 보니 점차 고립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홀로 파묻혀서 외롭게 글을 쓰는 일에 약간의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죠. 또 수업에서 혼도 나면서 ‘내가 정말 글을 잘 쓰는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많이 읽어주고 많이 알아주는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찾은 직업이 카피라이터예요. 광고 문구를 쓰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내 글귀를 읽어주잖아요. 글을 써서 돈을 벌고자 할 때 좋은 편인 직업이기도 하고요.
3. ‘제일기획’은 많은 학생들의 꿈의 회사 중 하나인데, 5년 동안 일하신 후 나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일기획에서 5년 내내 바쁘게 내 시간 없이 일만 하면서 지냈어요. 그 중에서도 특히 일이 바쁘고 힘든 팀에 있어서 끼니도 거르고 밤도 새는 일이 잦았어요. 그러던 중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셨는데, 병원 면회시간이 오후 7시더라고요. 저는 다른 가족들과 달리 그 시간에 면회를 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따로 양해를 구해야 하고 일도 미뤄야 하고. 그런 면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느낌이 계속 들었거든요. 회사 안에서도 끊임없는 경쟁이 계속됐고, 기업의 제도와 시스템에도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 즈음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났는데, 드라마에서 말하는 수준의 열정을 당연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계속 지치더라고요. 다들 공감하실 텐데, 힘들게 노력해서 취업하고 나면 회사에서 더 많은 것을 요구하잖아요. 그러던 중에 책을 봤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면, ‘여긴 내가 좋아하는 게 너무 많지만 좋지 않아’ 라는 말이 나와요. 저는 처음 제일기획에 입사할 때 제가 좋아하는 것들이 정말 많은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회사 자체로 트렌디하고, 제가 좋아하는 글도 쓰고 다양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런데 그 안의 저는 막상 좋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결심하고 나오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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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현재는 SBS에서 프리랜서로 일하신다고 들었는데, 방송국 카피라이터는 정확히 어떤 일을 하나요? 광고 카피라이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프리랜서 카피라이터이기 때문에 SBS의 일만 하지는 않아요. 카피라이팅 강의도 많이 하고 다른 카피 작업을 맡기도 해요. 그 중에서 주로 SBS의 일을 많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기업 마케팅이나 제품 마케팅과 다르게 방송국에 오면 드라마나 예능의 예고편을 많이 만들게 돼요. 그 중에서도 특히 광고인의 특성을 살린, 짧게 줄인 광고를 쓸 때 카피라이터가 필요하죠. 그 외에도 공익캠페인 작업을 많이 해요. 이런 것들은 광고회사에서 하기 힘든 광고거든요. 국민 전반의 이야기, 그리고 국민들이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새로운 카피를 써야하죠. 또, 일반적인 광고는 광고주들의 만족도에 따라 끝없는 수정을 반복하는 데 반해 방송은 광고를 내보내야 하는 마지막 마감이 존재하니까 그런 것도 소소하게 좋더라고요.(웃음) |
5. 카피라이터의 길을 걸으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아무래도 몸이 힘들 때 가장 힘들죠. 못 자고 못 먹고, 사람들을 거의 못 만나고 그들과 멀어지는 것 같을 때요. 제가 졸업 즈음 다른 광고대행사에 붙어서 다니다가 운 좋게 바로 제일기획으로 옮길 수 있었는데, 그러면서 친구들과 많이 멀어졌어요.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한 셈인데다가 그 일이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너무 힘든 일이었으니까요. 외롭고 공허한 느낌이 드는 일이 많았어요. 광고주를 만났을 때도 트러블이 잦은데,그들의 요구 사항을 들어주는 게 힘들기도 했죠.
6. 반대로 가장 뿌듯하거나 보람을 느꼈던 적은 언제인가요?
제가 작업한 광고가 걸릴 때마다 상당한 보람이 느껴져요. 카피라이팅은 마케팅이기 때문에 판매 수치로 평가를 받는데, 그 결과가 좋으면 정말 뿌듯하죠. 특히 기억나는 작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 올린 삼성전자 캠페인이에요. 회사에서 일 년 가까이 그 광고에 매달렸고, 작업에 참여한 직원도 눈에 띄게 많았던 이례적인 마케팅이었어요. 그 때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해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봐 주시고 하니 오랫동안 참여한 보람이 있더라고요.
7. 카피라이팅을 하는 데 있어서 선배님만의 습관이나 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문학을 많이 읽어라 그런 말들이 많은데 사실 큰 효과는 없어요. 대신 논리성을 갖추는 게 가장 중요해요. 거기서 인사이트를 가지려면 대중들이 좋아할 만한 걸 찾아야 해요. 저도 처음에는 있어 보이기 위해서 이런 저런 활동을 많이 해봤어요. 책 읽고 독립영화 보러 가고 했거든요.(웃음)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답은 대중적인 프로그램들에 있어요. 막장이더라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대중들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드라마나 예능을 꼭 챙겨보는 편이에요. 따라해 보려고 많이 노력했고요. 사람들이 좋아하고 그들의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센스 있는 콘텐츠를 많이 찾았어요. 너무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지면 오히려 대중들과 멀어지기 때문에 카피라이터로서 글을 쓰기는 오히려 힘들다고 생각해요.
요즘 카피라이팅 강의를 하는 중인데 강의에서조차 내 직감이나 습관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그런데 고민을 해 봤더니, 기본적으로 광고는 광고주가 대상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대상을 누구로, 화자를 누구로 설정하는지가 중요해요. 기업의 입장에서 쓴다고 해도 여러 화자가 있거든요. 우선 사장님의 입장에서 광고를 쓴다면 ‘이 제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넣었다’, ‘오너의 모든 노력을 다 쏟아 부었다’ 등 제품의 질 자체를 강조할 수 있어요. 직원 입장에서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광고가 나와요. 예를 들어 ‘사장님이 저렇게 제품을 만드는 모습을 보니 우리에게 월급은 어떻게 주는지 모르겠어요’ 등이죠. 이처럼 시점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서도 카피는 천차만별이에요. 그래서 항상 어떤 시점으로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합니다.
8. 카피라이터가 가져야 할 소양에는 어떤 것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그러한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카피라이터가 광고주와 소비자층 중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두 대상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똑똑하면서 멍청해야 한다고 봐요.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그 정보들을 바탕으로 탄탄하고 논리적인 문체를 갖추어야하는 동시에, 대중을 가볍게 웃길 수 있는 가벼운 문체 또한 소화해 내야하죠. 국가적으로 큰 일이 있으면 국민을 위로할 수 있는 무거운 문체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하고요. 그 와중에서도 대중들이 원하는 센스가 필요합니다.
9. 그간 선배님께서 제작하신 카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카피는 어떤 것인가요?
회사를 나오기 전에 오리온 초코파이 카피를 맡았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원래의 카피를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 정 때문에 못한 말’로 변형한 카피가 나왔었고, 저는 그 다음의 업그레이드 버전의 카피를 맡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면서 재미있는 카피가 아니라 국민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카피가 필요했죠. 기업의 입장이지만 너무 노골적이지 않게 위로하는 카피가 필요했어요. 기업의 입장에서 얘기를 하다 보니 기업에 도움이 되는 얘길 무조건 포함해야 하는 게 힘들더라고요.
제일기획에서 나와 현재는 SBS 방송국에 와서 광고주의 입장을 담지 않은 세월호 관련 캠페인 카피를 작성했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순수하게 대중들을 위로하는 카피를 쓸 수 있었으니까요.
‘국화꽃이 지고 기어코 개나리가 폈습니다.’라는 카피였는데, 위로하던 분위기마저 잊혀져가는 오늘날의 모습을 담고 싶어서 쓴 글이에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 소신대로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어요.
10. 이화 재학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소설을 써서 소설특기자 전형으로 학교에 들어왔어요. 초반 1, 2학년 때는 소설가로서 글 쓰며 살 거라는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책 많이 읽고 국문학 수업 좋아하는 학생으로 그렇게 살았어요. 하지만 소설가에서 취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조금 늦게 취업 준비를 하기 시작했죠. 너무 바빠져서 뒤늦게 정신없이 지냈던 것 같아요. 다시 대학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 거냐고 누가 저에게 묻는다면, 저는 ‘아니오’라고 할 거예요.(웃음) 그만큼 정신없고 힘들었어요.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서 더 힘들게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후배들을 보면 대단하고 안타깝고 그런 마음이 커요.
11. 학부 때 들었던 국어국문학 수업이 카피라이팅에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수업을 들으면서 책을 정말 많이 읽었어요. 많이 읽다 보니 그 읽은 것들이 제 안에 쌓이더라고요. 또 글을 많이 쓰다 보니 문장력도 성장하고 언어학수업을 들으면서 맞춤법도 탄탄하게 다질 수 있었고요. 글을 쓰는 직업이니까 국어국문학 수업으로 들었던 모든 것이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한혜원 교수님의 문예창작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창작론을 들으면서 글이 마케팅에 적합하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으니까요. 스토리텔링의 매력도 느낄 수 있었고요. 그 수업을 계기로 카피라이터가 되었어요.
12. 선배님께서는 지금 인터뷰를 진행하는 저희 이화투데이 리포터의 1기로 활동하셨는데요, 어떤 기억을 갖고 계신가요?
그 당시 이화투데이는 1기여서 자리가 덜 잡혀 있었어요. 공모전, 마케팅 등의 대외활동을 많이 하면서 그 때 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주로 썼었어요. 어떤 글을 써야 사람들이 많이 보고 싶어 하는지에 초점을 두고, 어떤 글이 사람들에게 더 재미있게 읽힐까 생각하면서 썼죠. 그 덕에 다른 사람들보다 기사 조회수가 높아서 뿌듯해 했던 기억이 나요. 이화투데이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해보면서 글쓰기의 재미를 알았고, 남들이 보고 싶어 하는 글을 쓰는 연습을 많이 할 수 있었어요.
13.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이화의 후배들 및 독자 여러분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요새 취업이 굉장히 힘들잖아요.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던 게 제 시기에 조금 더 취업이 잘 됐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이 어려워지면서 취업문도 너무 좁아졌더라고요. 준비하는 친구들은 점점 더 똑똑해지는데 문은 더 좁아지고. 하지만 꼭 대기업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카피라이터가 될 수 있는 길이 대기업 입사만은 아니에요. 작은 기업부터 시작할 수도 있죠. 왜 이렇게 안 뽑히는지 슬퍼하지만 말고, 여러 회사에서 일하면서 경험을 늘리고, 다른 시각에서 준비를 좀 더 해보는 게 도움이 더 될 수도 있어요. 누군가는 제 발자취를 보며 많이 부러워할 수도 있어요. 물론 대기업에서 경험을 쌓고 프리랜서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예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느 곳이든 안주하면 안 된다는 점이에요. 대기업에 가더라도 트렌드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산업 또한 그에 맞춰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에요.
취업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고 달려가다 보면 너무 빨리 지치고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중간 중간 직업을 바꿔도 보고 인생의 계획을 새롭게 하는 마인드가 있어야 오래 달릴 수 있어요. 당장 취업이 안 되더라도 조급해하지 말고 더 강하게 나를 키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세요. 대기업만을 목표로 두고 취업준비를 하다보면 이런 기회들을 놓치게 돼요. 취업에 요구되는 조건과 스펙만을 쫓는 게 아니라 내 안의 기술, 나만의 능력을 내가 쌓아가야 트렌드가 바뀌고 산업이 바뀌더라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요. 그리고 후배들이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똑똑한 친구들이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이화투데이 리포터 김다빈(영어영문·14), 장순영(국어국문·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