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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교수-이배용 총장, 여성·평화에 대한 대담 가져

  • 작성처
  • 등록일2009.05.11
  • 14577
조선일보는 5월9일 '타협 협상을 아는 여성 리더십이 평화 만든다'는 제목으로 본교 이배용 총장과 2008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르 클레지오 석좌교수의 대담을 게재했다. 다음은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 전문.

- 관련기사보기(조선일보 2009년 5월 9일자)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 르 클레지오·이화여대 이배용 총장 대담
"타협·협상을 아는 여성 리더십이 평화를 만든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소설가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Jean Marie Gustave Le Clezio·69)가 다시 한국을 찾았다. 2007년 초빙교수, 2008년 석좌교수로 이화여대에서 가르쳤던 그는 3주간 머물며 강의와 강연을 한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비(非)서구 문명에도 깊은 이해를 보이는 르 클레지오가 7일 오후 이배용(62) 이화여대 총장을 만나 대담을 가졌다.

▲ 이화여대 캠퍼스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오른쪽)와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이 대담을 하고 있다. 르 클레지오가 “창덕궁 등 한국의 옛 건축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하고 있다”고 높이 평가하자 이 총장은“수려한 자연풍광과 어우러진 서원(書院)에 꼭 안내하고 싶다”고 화답했다. (전기병 기자)


"여성 리더십이 평화를 만든다"

―르 클레지오: 나는 2차 세계대전 와중에 태어나 여성들 사이에서 양육됐다. 당시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 나갔고, 아버지도 의사로 아프리카에 파견돼 있었다. 어린 시절 나는 여성들이 대단한 협상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외할머니는 마을 상인들과 야채와 우유를 사기 위해 값을 깎고 흥정하면서 "전쟁이 평생 가겠어요? 나중에 갚아 드릴게요"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때부터 타협과 협상을 할 줄 아는 여성들이 나서야 다른 종류의 정치가 가능하고 전쟁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배용: 선생이 느낀 가정에서의 체험은 여성사 연구의 중요한 테마다. 한국에는 '소서노'라는 백제 건국의 시조(始祖) 여성이 있다. 그녀는 아들들이 정쟁(政爭)에 휘말릴 때 상생(相生)의 길을 모색하고 갈등의 시대를 넘어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한국은 가계(家系)의 계승이 중요한 사회다. 한 집안을 보면 여성 어른이 없을 때 계승의 혼란이 일어나고 분파가 생긴다. 여성 어른이 있으면 순조롭게 계승되는 경우가 많았다.

―르 클레지오: 한국이 가장 어려웠던 시기인 식민지 시대에 여성의 교육이 시작된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프랑스에서도 여성들에게 교육 혜택이 주어진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배용: 여성은 생명을 잉태하기 때문에 생명에 대한 책임과 의지가 강하다. 나는 여성의 '주·전·자 정신'을 강조한다. 차세대 여성 리더는 주체성·전문성·자신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차세대 여성 리더는 다른 문화와 인종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인류의 평화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한다.


"정복전쟁을 벌이지 않은 한국의 역사"

―르 클레지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타(他)문화권의 철학적·미학적 메시지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날은 몇몇 지배문화의 목소리만 들린다. 동양의 목소리가 적은 것은 유감이다.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多)문화성의 유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배용: 한국은 농업사회였기 때문에 자연의 순리를 통한 조화가 여러 문화의 현장에서 발견된다. 세상을 더불어 헤쳐나가는 마을공동체, 씨 뿌리고 가꾸며 다음 세대로 넘기는 정성,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정신을 한국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르 클레지오: 서양은 힘의 우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복문화다. 서양은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피식민자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한국이 역사적으로 식민지 정복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은 즉각적인 이익을 실현하기보다는 조화를 추구하고 인내를 가지고 문화발전을 꾀했다.


지도자는 작은 것과 큰 것을 동시에 헤아려야
―이배용: 동양고전에 "눈으로는 가을 동물의 털끝이 가늘어지는 것도 볼 수 있어야 하고, 태산이 높은 것도 볼 수 있어야 한다. 귀로는 우레의 큰 소리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옥과 돌 소리의 다름을 분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지도자는 약한 것과 강한 것, 작은 것과 큰 것을 헤아리고 아울러야 한다. 대학은 그런 차세대 리더를 길러낼 사명이 있다.

―르 클레지오: 그 말은 매우 감명 깊다. 서양에서는 지도자를 말할 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묘사되는 강력한 군주를 떠올린다. 총장께서 말씀하신 지도자상이야말로 이상적이다. 그런 지도자들이 세계적으로 많이 나와서 세계의 평화에 기여했으면 좋겠다.


신화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자원
―르 클레지오: 한국의 '삼국유사'를 영어 번역본으로 읽으면서 감동했다. 나는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중요한 책들을 담은 컬렉션을 만드는 일을 맡고 있는데, 이 총서에 '삼국유사' 프랑스어 번역본을 추가했다. 4년 전부터 유네스코 지원을 받아 번역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화는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이배용: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퍽 다른 책이다. '사기'는 유교 사관에 입각해서 정형화된 표현을 쓰고 있지만, '유사'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가슴으로 다가오는 표현이 많다. 신라 26대 임금 진평왕은 굉장히 체격이 큰 사람이었다. '사기'는 "기골이 장대했다"고 표현하지만, '유사'는 "진평왕이 계단을 내려올 때 계단이 부서졌다"고 썼다.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발전하는 한국
―르 클레지오: 한국은 경제적으로 성장했으면서도 전통문화가 현대적으로 발전해나가고 있다. 한국 문학은 문화를 앞서가는 실험을 하고 있다. 한국 영화도 과감하고 창조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중요한 장점 중 하나가 위기를 극복하는 연대감이다. 또 한국 영화나 문학을 보면 해학이 있다. 어려움 속에서 잃지 않는 유머가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배용: 역사는 어려움을 나누면 극복할 수 있다는 용기와 지혜를 준다. 역사는 인간이 물질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실용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행복과 인간다움 같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다. 그 중심을 지키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