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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배우며, 아름다운 생을 살아낸 아름다운 사람, 故 김을주(약학 56졸)

  • Date2020.03.27
  • 1100
故 김을주(약학 56졸)

이화에 그림자 같은 한 기부자가 있었다. 이화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빠짐 없는 후원의 손길을 보냈으며, 특히 장학금 후원에는 남다른 깊은 뜻이 있었다. 그러면서도 크게 주목 받거나 드러난 적 없이 20년 이상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 온 김을주 동문. 그가 2013년 9월, 우리 곁을 떠났다. 김을주 동문의 아름다운 나눔을 기억하기 위해 딸 김기령 동문(영문 00졸)과 이영회연합회 남길원 씨를 한 자리에서 만났다. 

 

너무나도 따뜻했던 故 김을주 동문의 후원


‘배우면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것이 평소 집안에서 강조되는 가르침이었다. “죽을 때까지 하자. 이것이 어머니의 기부 철학이었어요.” 실제로 김을주 동문은 대외협력처를 찾아와 “내가 죽을 때까지 내 통장에서 매달 100만원씩 이체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기부’란 생활의 일부일 뿐, 특별한 행위가 아니었다. 

“어떻게 10의 1만 하느냐. 10의 2, 10의 3을 해야지. 돈을 자꾸 헐어서 이 사회에 기부를 해야 사회가 돌아가는 것이다.” 김을주 동문이 자주 했던 말이라고 한다. 넉넉하게,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나누고자 했다. 실제로 그가 기탁한 ‘김을주장학금’은 계속해서 입금이 되면서도 잔고가 늘 바닥에 가까운 기금 중 하나였다. 보통 이자로 지급해 원금을 보존하는 장학금 운영 방식과 달리, 매 학기 2명의 학생에게 전액장학금을 지급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장학금은 한 학생을 선정하면, 성적에 상관 없이 졸업할 때까지 전액장학금으로 주고 싶어 하셨어요. 힘들게 돈을 벌면서 공부하는 학생이 성적이 좋을 수 없다며, 이왕이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도록 넉넉하게 주자고 하셨지요.” 넉넉한 나눔에 배려까지 더한 아름다운 모습에 이영회연합회의 남길원 씨도 늘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을주 고문님은 항상 받는 사람의 입장까지 생각하셨어요. 학생이 혹시라도 마음을 다치진 않을까 걱정하셔서 장학생 얼굴도 보지 않으려 하셨고, 자신이 후원자임을 밝히지도 않으려 하셨지요.”

김을주 동문은 본교 경영전문대학원 소속 이화여성경영자과정을 수료한 동창들의 모임인 ‘이영회연합회’ 19대 회장을 역임하고, 상임고문을 지냈다. 이영회연합회에 기여한 내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 무엇보다 회원 한 명 한 명에게 관심을 갖고 용기를 주는 존재였다. “이영회에서 별명이 하회탈이셨어요. 늘 웃으셨거든요. 언젠가는 고문님이 저에게 평생교육원에 가서 웃음치료사 과정을 함께 배우자고 하신 적이 있었어요. 이영회에 늘 우울해 보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 우리가 웃게 해주자는 거였어요.” 한 명이라도 웃음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든 다시 웃게 해주고 싶어 노력했던 따스한 마음이 이영회엔 늘 온기가 되었다. “사실 9년 전에 제가 사무실을 그만 둬야 할 정도로 힘든 시기가 있었어요. 표현을 안 했는데 힘들다는 걸 알아채시고 제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심어주셨어요. 스스로 알지 못했던 나의 면을 칭찬해 주시면서 용기를 주셨지요. 그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몰라요.” 남길원 씨도 딸 김기령 씨 만큼이나 그녀를 그리워하고, 또 존경하고 있었다. 

 


끝없이 배우고 나누었던 아름다운 여성


김을주 동문은 스스로도 늘 배움을 놓지 않았고, 남들에게도 늘 배움을 권유했다. “대한민국은 여성이 똑똑한 나라이기 때문에 여자가 공부를 해야 한다. 늘 공부하고,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따고 준비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누구를 막론하고 사회에 나가서 일을 해라.” 이것이 김을주 동문이 강조했던 말이었다고 한다. 며느리가 공부하는 것을 달가워할 시어머니는 많지 않았으련만, 그는 반대였다. 결혼해서 대학원을 그만두려는 며느리를 설득해 끝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훗날 며느리는 연세대학교 가정대 박사 1호로 교수가 되었다. 늘 공부하며 노트에 필기를 열심히 했고, 필기한 노트가 집에 가득했다. 5개년씩 단기 계획을 세워서 장 속에 묻어놓고, 5년 후에 꺼내보면 계획한 일이 다 되어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자꾸 잊어버렸지만 컴퓨터를 배우고 또 배웠다. 이영회에 올 때마다 다른 사람보다 한 시간씩 일찍 와서 학생에게 컴퓨터를 배웠다. 딸 김기령 동문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영어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떠나기도 했다. 끝내 영어를 자유자재로 못한 것을 아쉬워 했지만, 공부를 게을리한 적은 없었다. 평생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던 그녀는 온 가족에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어머니는 특별히 이화 사랑이 지극하셨습니다.” 김을주 동문은 이화에 참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장학생들, 그리고 이영회연합회, 동창과 친구들. 이 지면에 기록된 내용은 그녀의 삶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김을주 동문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추억과 감사를 일깨워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또한 그가 실천했던 넉넉한 나눔과 배려의 정신이 이화 가족들에게 배움을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