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스승과 친구를 선물해 준 이화에 감사해요
- Date2020.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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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을 닮은 사랑의 정원
정원은 주인 닮는다고 한다.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에 자리한 승해 동문(교육 57졸)의 청운동 자택을 찾았을 때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아담한 정원이다. 세월에 굽이진 소나무와 철따라 화사하게 핀 철쭉과 목단꽃, 걸어 들어가는 돌길을 따라 피어난 아기자기한 꽃들과 푸른 잔디 위에 앉아 노니는 두 마리의 작은 새 조각상까지. 소담하고 편안해 보이지만 안 보이는 곳까지 세심하게 가꿔진 정원이 따뜻하고 부지런한 주인의 품성을 그대로 닮았다. “제가 꽃과 나무를 정말 좋아해요. 이 집을 1964년에 짓고 들어왔으니까 어느새 50년이 지났네요. 예전에는 사람들을 자주 초대해서 정원에서 함께 놀곤 했는데 이제는 힘들어서 못해요. 자식들은 편한 데로 이사 가라고 하지만 너무 정들어서 떠날 생각을 못하네요.” 집을 둘러싼 풍경처럼 홍 동문의 미소는 넉넉했다.
이화 동문 네자매
홍승해 동문은 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차남 고 구자승 LG상사 전 사장의 부인이자 구본걸 LF대표의 모친이다. 유명한 재벌가의 며느리이지만, 실제 만난 그는 이웃집 할머니처럼 소탈했다. 본교에 신축기숙사건립기금으로 1억 원을 쾌척하고서도 “별로 한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다”며 극구 인터뷰를 사양했던 홍 동문. 어렵게 인터뷰를 하게 된 이유를 물었더니 ‘이화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고 했다. “남편 사별 이후 자식들 키우느라 정신 없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부쩍 옛날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화인으로 살아 온 것이 자랑스럽고, 훌륭한 친구들과 스승들을 만나게 해준 이화에 너무 감사해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화의 스승에게 배운 인내와 사랑, 나눔의 정신이 세상을 사 는 큰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홍 동문은 인연이 닿는 곳마다 나눔을 실천하는 데도 열심이다.
홍 동문은 전쟁 중이었던 1953년 부산의 임시 천막교사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여자가 대학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어요. 아버지가 완고하셔서 대학은 어림없고 시집이나 가야 한다고 하셨죠. 심지어 저희 큰아버지는 조카딸이 대학 가겠다고 하자 식음을 전 폐하실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제가 난생 처음 어른들 말씀을 거역하고 이화대학에 입학했지요. 맏딸인 저로 인해 엄격한 안동 유교집안의 금기가 깨진 거죠.” 평소 부모님 뜻을 거역해 본 적이 없는 믿음직한 맏딸. 그러나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학업은 포기할 수 없었다. 큰 언니의 용기 있는 반란(?) 덕분에 둘째 홍애수(약학 60졸), 셋째 홍애영(영문 61졸), 넷째 홍승진(도서관 65졸) 씨까지 네 자매가 모두 이화 동문 타이틀을 달게 됐다. 동생들은 언니 덕분에 이화대학에서 공부하고 인생을 잘 살 수 있었다며 지금도 감사해 한단다.
드러나지 않게 베푸는 큰 사랑
학업에 대한 열정이 누구보다 높았지만 4학년 말에 집안의 권유로 일찍 결혼하게 됐다. 당시는 금혼학칙이 엄격한 때라 주변에 알리지도 않고 조용히 해야 했다고. “친구들은 저의 결혼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모두가 모른 척 해주었어요. 제가 무사히 이화 졸업장을 딸 수 있었던 데는 친구들의 도움이 제일 커요”라며 웃는다.
홍 동문은 둘째 며느리였지만 서울에서 시부모님과 친지들 모시며 큰집 살림을 도맡아야 했다. 가족들의 화목과 행복을 위해 온전히 ‘나’를 내려놓아야 했던 시간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개성 있게 사는 걸 보면 멋있어 보이고 부럽기도 해요. 하지만 나와 가정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면 저는 또다시 가정을 선택할 것 같아요. 가족과 주변을 보듬으며 살아온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거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복을 가꾸는 사람, 드러나지 않게 베푸는 사람. 홍승해 동문은 그래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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