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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계] 구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동문(정보디자인·96년졸)

  • 등록일2021.08.05
  • 8308

“오케이, 구글!” “기가지니!” 하고 부르면 인공지능 비서가 나타나 사람들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은 이제는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버튼만 누르면 시작되는 서비스가 분명 더 편할 텐데, 이러한 음성 인식 서비스가 이름을 먼저 불러야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인공지능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팀 수석 디자이너 김은주 동문(정보디자인·96년졸)을 만나 UX/UI란 무엇인가, 그리고 삶을 어떻게 살아가면 좋은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사진 출처: 김은주 동문 블로그 'EK의 커리어노트'


Q. 만나서 반갑습니다 동문님.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화여대 정보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현재 실리콘밸리 구글에서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은주라고 합니다.


Q. 현재 구글에서 인공지능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 음성 서비스를 개발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고 계시나요?

UX 디자인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에요. 기존 터치 인터랙션 기반 제품에서는 화면에 보이는 부분을 연구하고 디자인했다면, 저는 현재 구글 어시스턴트 팀에서 기계가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시각 정보에 음성 정보, 촉각 정보까지 여러 가지 정보를 통합적으로 설계하는 멀티 모달(Multi-Modal) 디자인을 하는 거죠.

저는 수석 디자이너로서 비주얼 디자이너, 모션 디자이너, 인터렉션 디자이너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전문 UX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인지심리학이나 인간 공학을 전공한 UX 디자이너들이 많고, 최근 음성 대화 디자인이 필요해지면서 'Conversation Designer'라는 전문 UX직군도 생겼어요. 언어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이 AI 대화 시스템 개발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석 디자이너는 이런 다양한 전문분야의 디자인을 조율해서 하나의 통합된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지휘자 역할을 합니다. 지휘자는 ‘첼로 소리가 너무 크다, 피아노 소리를 키워야 한다’ 이렇게 귀로 듣고 조율을 하는데 제가 그 역할을 하는 거라고 보면 돼요. 그래서 수석 디자이너는 UX 디자인의 전체를 보는 능력이 필요한데 저는 한국에서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국 대학원에서 인간공학, 인간심리학을 공부한 것이 구글 수석 디자이너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Q. UX 1세대 디자이너로서 현재까지도 UX 디자이너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미술에 관심이 생긴 건 중학교 때예요. 그때는 그냥 예쁘게 만들고 꾸미고 하는 일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정식으로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데, 그 즈음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그리고 저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할까?'와 같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그에 대한 답을 찾으려다 보니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까지 관심 있게 보게 되었어요. 자연스럽게 두 가지의 관심사가 맞물려서 UX 디자이너가 되었고 이 직업이 저한테 딱 잘 맞았던 거예요. 그리고 지금까지도 제가 만든 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알아가는 것이 굉장히 재밌어요. 제품의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요.

얼마 전에 유저 리서치를 하면서 제가 몰랐던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어요. AI 스피커 써보셨죠? ‘오케이, 구글~’하면서 일단 이름을 부르잖아요. 보통 음성 시스템들은 이용하려면 ‘내가 너랑 말하고 싶어’하면서 시스템의 이름을 불러서 깨워야 하거든요. 그런데 빅스비처럼 버튼이 있어서 안 깨워도 되는 시스템들이 있어요. 버튼을 누르고 그냥 말을 하면 되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이름을 먼저 말해요. 왜 그런가 봤더니 어떤 문화권에서는 그게 기본 매너라고 느낀다는 거죠. 반대로 사람 이름을 부르지 않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고요. 그래서 개발자들이 이름 부르는 시간을 줄이려고 정말 힘들게 이름을 안 불러도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도 굳이 굳이 이름을 부르는 거죠. 하지만 그게 잘못된 게 아니거든요. 그래야 사람들의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에 효율적이진 않아도 그에 맞는 UX 디자인을 고려해야 하는 거죠. 저는 그런 것들이 알아가는 게 정말 재밌어요.



Q. 퀄컴에서 증강현실 UX 디자이너로 활동하셨는데 UX 디자인에서 증강현실은 어떤 것인지 어느 정도로 발전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증강현실은 말 그대로 현실이 있고, 현실에 어떤 가상의 콘텐츠를 증강시키는 거예요. 증강현실이 뭔가 어디 전시회나 가야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일 것 같지만 이미 우리 일상에 많이 들어와 있어요. 주차할 때 후진 카메라 화면에 주차라인이 그려지는 것, 경기장에서 공의 포물선과 진행 방향을 보여주는 화면, 아이폰 메시지 앱에서 쓸 수 있는 이모지, 또 스노우 카메라에서 나오는 스티커들까지 모두 다 증강현실 기술과 경험이에요. 이렇게 우리가 느끼진 못해도 이미 여러 다양한 산업에서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게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또 어렵죠. 기본적으로 화면 디자인은 사용자와 화면 간의 연결성만 고려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증강현실은 여기에 현실 맥락과 그 맥락에 뿌려지는 정보까지 총체적으로 봐야 하고, 사용자의 공간이 넓어지기 때문에 제3의 주변 사람들이 사용자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고려해야 해요. 예전에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학회에서 어느 캐나다 대학교수의 사례 발표를 들은 적이 있는데, 증강현실 사용자 경험 테스트를 하는데, 제품 사용성을 테스트하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공공장소에서 증강현실 앱을 쓰고 있을 때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반응을 연구했어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반응이 이 사람한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는 거죠. 내가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누가 와서 구경하고 있다면 부담스럽잖아요. 증강현실에서는 그런 경험을 측정하는 테스트들도 많이 하고 있어요.


Q. 삼성에서 웨어러블 최초 원형 스마트워치 개발을 주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마트워치의 개발은 수상을 할 만큼 성공적이었는데 본인만의 성공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저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디자이너에게 이런 프로젝트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던 것이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고요. 다만 제가 그 운을 만들 수 있었던 건 제가 남들이 잘 안 하던 길을 개척하면서 커리어를 만들어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웹디자이너로 시작을 했을 때도 웹 디자인이라는 것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어요. 그리고 또 한참 웹이 붐을 일으켰을 때 갑자기 뜬금없이 모바일 디자인을 하기도 했고, 아무도 해보지 않았던 증강현실 프로젝트도 했었죠. 제 성향 자체가 남들이 잘 안 해본 것, 백지 같은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삼성전자 에 입사했을 때도 갤럭시 폰을 담당하는 팀 말고 다른 것을 맡겨 달라고 요청을 드렸어요. 그렇게 스마트폰이 아닌 웨어러블 UX 디자인 팀을 맡게 된 거죠. 당시에 삼성 스마트 워치는 안드로이드 OS를 안 쓰고 자체 타이젠 OS를 개발해서 제품을 만들었어요. OS부터 앱 디자인까지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땀한땀 만들었는데 OS를 개발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패턴과 패러다임을 자유롭게 만들 수 있고, 거기에 들어가는 소프트웨어 UX를 통째로 디자인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통합적인 경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였어요. 그리고 그때 마침 하드웨어 쪽으로도 기술력이 돼서 원형과 베젤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형태가 들어오면서 좋은 결과가 나온 거죠. 

사진출처: 삼성뉴스룸


지난번에 모 언론사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런 질문을 주시더라고요. 전성기셨는데 어떻게 그걸 놓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할 생각을 했느냐고. 제 이력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거죠. 제가 그 얘기를 듣고 전성기가 뭘까 한참을 생각해 보고 사전에 정의를 검색해보기도 했었어요. ‘형세나 세력 따위가 한창 왕성한 시기’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전성기란 ‘내 안의 열정과 아이디어가 왕성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외부에서 저에게 보내는 환호보다는 스스로 아이디어가 샘솟는다고 느낄 때요. 하지만 어떤 안정적인 일을 몇 년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줄어들고 침체돼요. 그럴 때는 아이디어를 다시 샘솟게 하기 위해 판을 바꾸는 방법이 있어요. 열정과 아이디어가 침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탐색한 것도 제게 성공을 가져다준 것들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Q. 이번에 나온 자기계발 도서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살에게』는 면접의 스킬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중요한 면접 스킬 몇 가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 경우는 직업 자체가 사람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일이라 그 덕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면접은 양방향 상호작용이기 때문에 면접관들마다 최적화된 대화가 필요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면접을 가면 ‘질문 주세요.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가요. 그러면 면접관 분들도 ‘나 뭐 물어봐야 하지?’하면서 부담을 느끼실 수 있어요. 그래서 면접관의 마음을 편안하게 끌어들여서 대화를 주도해 나가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도해가면서 나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 나라는 사람이 가진 디자인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라는 것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한테 ‘진심’이 중요하다고도 많이 얘기를 하는 편이에요. 진심은 굉장히 촌스럽지만 결국 전해지게 되어 있고 진심이 전해지는 면접을 하면 면접관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어요. 그냥 비즈니스처럼 영업하듯이 하는 면접은 너무 흔하기 때문에 거기서 빠져나오려면 감수성을 자극해야 해요. 흔히들 말하는 '갬성', 갬성 면접을 해야 하는 거죠. 대화를 주도하고 면접관을 대화에 참여시키는 면접자는 분명 면접관의 뇌리에 확 자리 잡을 거예요.


Q. 기록하고 글을 쓰는 습관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어떤 도움이 되었나요?

글은 생각을 구체화하고 기억을 교정하는 데에 매우 좋은 방법이에요. 그래서 습관화가 되면 좋아요. 글을 잘 쓸 필요는 없고 그냥 쓰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돼요. 짧게 짧게 조금씩 쓰는 것만으로도 하루에 대한 기억이 보존이 되거든요. 그래서 길게 쓸 필요도 없어요. 한참 제가 감사노트 일기를 썼을 때는 하루에 3가지씩만 적자 해서 하루에 3가지 감사한 일을 적는 것을 한동안 했었는데 처음에는 매일 똑같은 일만 반복돼서 별일 없었던 것 같고 엄청 막막하더라고요. 하지만 '써야겠다'라는 마음으로 굳이 굳이 찾아내면 또 감사할 일이 있더라고요. 그것만으로도 글쓰기를 하는 이유는 충분하죠.


Q. 강연 또한 열심히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연을 하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최근 강연을 하실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강연은 제 성장의 원동력이에요. 사람은 지식을 입력할 때보다 출력할 때 8배의 학습 효과가 있다고 해요. 강연을 하게 되면 사실은 듣는 사람들보다 제가 훨씬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성장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추천드리는 방법이고요. 또 하나는 미래의 내가 게을러지지 않도록 해줘요. 강연은 나 혼자 ‘영어 공부해야지', '다이어트해야지’ 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와의 약속이고 보통은 미리 일정을 잡아 놓잖아요. 미래의 내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돼요. 일정을 잡아 놓으면 걱정되어도 어떻게든 하게 되고, 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하나를 완수하면 저에게 또 하나의 새로운 경험이 생기는데,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제 커리어를 만들고, 저의 평판을 만들어요.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죠. 그래서 강연하는 것을 좋아한답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안 강연 계획은 세바시(지금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강연을 하기로 해서 녹음을 하고 가려고 해요.


Q. 책에 나온 인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UX 디자이너로서 인지심리학이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그리고 두 분야의 관련성을 무엇인가요?

심리학은 UX 디자인의 근간이에요. 인간 심리를 이해하는 게 UX 디자인의 기초죠. 'UX(User Experience)'라는 용어를 처음 얘기한 사람도 도널드 로먼이라는 인지심리학자입니다. 버튼의 크기가 인지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버튼의 색상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지, 버튼의 레이블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이해해야 UI(User Interface) 디자인을 할 수 있다는 거죠.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형태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라서 'User Experience Design'이라고 불러야 한다 주장하면서 'UX 디자인'이라는 말이 생긴 거예요. 인지심리학을 공부하다 보면 사람들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게 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저는 학부 때부터 심리학에 관심이 많아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부전공해볼까 생각했고, 그래서 심리학과 교육학 수업들도 많이 들었어요. 그랬던 것이 나중에 도움이 많이 됐고 저만의 강점이 되었죠. 미국은 인간 공학을 전공하고 UX 디자이너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 보니 심미적인 걸 같이 디렉팅할 수 있는 훈련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시각디자인 전공을 했기 때문에 비주얼을 볼 수 있는 훈련도 되어 있고, 대학원 때는 비즈니스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이 세 가지(인지심리-디자인-비즈니스)가 가장 큰 중심이거든요. UX 디자인의 세 가지 핵심에 대한 공부와 훈련이 저의 강점이 돼서 UX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Q. UX 디자이너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UX 디자인을 얘기할 때면 '직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항상 하거든요? 설명 필요 없이 딱 보면 사용할 수 있게 직관적이고 사용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막상 'UX 디자이너'라는 직업 이름이 너무 어려워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기억에 남습니다. UX 디자이너들끼리 "우리 직업을 설명하기가 왜 이렇게 어렵냐?"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해요. 부모님께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제 직업을 설명해드려도 "그래서 뭘 한다고? 네가 하는 일이 뭐라고?" 물어보는 것을 반복하세요. '경험'이라는 말이 매우 추상적이잖아요. 그냥 "화면 디자인해요", "옷 디자인해요" 하면 제품이 눈에 보이니까 설명하기가 쉬운데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에요" 하면 "그게 뭐예요?"가 되는 거죠.

쌍둥이 딸이 있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직업 소개를 해달라고 초청이 와서 학교를 갔었어요. 가서 초등학교 4학년들한테 "나는 UX 디자이너야" 하면서 설명을 해야 하는 거예요. 디자인 업무와 관련 없는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제 직업을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고민되더라고요. 그러다 생각해낸 것이 지폐 디자인을 하는 것이었어요. 돈의 개념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도 아니까 돈을 쓸 때 느끼는 감정, 돈을 어디에 쓰는지, 돈에는 어떤 정보들이 들어있는지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각자 자기가 만약에 5만 원짜리를 디자인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직접 디자인해봤지요. 정말 재밌었어요. 제 성장에 도움이 더 되는 건 저랑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보다 오히려 아예 이해도가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인 것 같아요.


Q. comfort zone에 머무르기보다는 계속 도전하고 싶으시다고 하셨습니다. 동문 님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특별히 도전을 해야겠다 이런 마음으로 살진 않아요. 꿈을 높이 가져야겠다, 도전을 해야겠다 생각을 하면 너무 부담이 되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기보다는 그냥 재밌어 보이는 소소한 것들을 해요. 그리고 저의 경우 뭔가 재미가 있어야만 아이디어가 떠오르더라고요. 재밌는 일들을 찾아서 하다 보니 글쓰기도 재밌고 사람 만나서 대화하는 것도 재미있고. 제가 제 시간을 들여서 재미있지 않는 일을 억지로 어떻게 하겠어요? 물론 근무 시간 내내 재밌는 일이란 세상에 없어요. 그럴 필요도 없고요. 절대로 모든 순간이 다 재밌지 않아요. 너무 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도 많은데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순간들은 꼭 있어야 합니다. 지난 일 년을 돌아봤을 때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잠이 안 왔던 순간이오. 일 년에 한두 번이면 돼요. 그냥 그런 일들을 하는 와중에 어느 순간 일이 너무 재밌는 순간들이 있고 머리에서 아이디어가 터지거나 문득 ‘오늘 너무 재밌었어!’ 하는 순간들이 일 년에 몇 번만 있어도 재밌는 일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제가 계속 comfort zone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보게 하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작년 12월에 앞으로 나의 5년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제 머리에 떠오른 말이 있어요.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자.” 이게 앞으로 5년간 제 삶의 미션이 될 거예요. 지금까지는 저 스스로를 챙기느라 바빴거든요. 앞으로 5년은 '함께 사는 세상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강연도 하고 글도 쓰는 거고요. 또 하나는 지금 미국에 아시아인 증오와 인종차별 이슈가 커졌거든요. 아시아인들은 대체적으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커뮤니티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주저해요. 지난 1년간 아시안 혐오 이슈를 보면서 '분명히 훌륭한 아시아인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동안 너무 목소리를 내지 않지 않았나' 하는 자각이 들었고, 미국 사회에 목소리 내는 일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미국 내 디자인 커뮤니티의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고, 흑인들 대상으로 디자인 교육하는 데 가서 강연도 했었어요. 그런 일들을 조금 더 많이 하려고 해요. ‘아시아인 중에도 이런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있다’를 보여주고 싶어요.


Q. 동문님은 이화에서 어떤 학생이셨나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과대표를 했었고, 3학년 때 정보디자인과 학생회장을 했었어요. 친구들이 저를 왜 뽑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귀찮은 일을 잘 할 것 같아 보였나 봐요.(웃음) 그렇게 나름 학교 활동들을 많이 했었죠. 그리고 '맥다모'라고 매킨토시를 다루는 모임이 있었는데, 일반인과 다른 학교의 학생들도 참여하는 학교 외의 동호회 활동이었죠. 아무래도 우리 학교는 여대라 여자들만 모여 있잖아요. 이러한 환경에서의 제한된 경험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학교 밖 동호회 모임 활동으로 채운 거죠.

대학교 강연을 하다 보면 "대학생 때 꼭 해봐야 하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하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러면 저는 세 가지를 꼭 해보라고 얘기를 해요. 첫 번째가 죽어라 놀아 보기, 다음은 미칠 듯한 사랑해 보기, 세 번째는 후회 없이 공부해 보기! 저는 놀아도 봤고 사랑도 해봤지만 공부를 안 해서 공부하러 대학원에 갔어요.(웃음) 대학원 때는 정말 원 없이 공부했어요. 학부 시절 교수님들은 그냥 뭐든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기억하지 않을까 싶네요.


Q. 동문님이 생각하시는 이화의 DNA는 무엇인지, 현재의 디자이너님을 있게 한 이화 DNA가 있다면?

고등학교 때 저는 제가 여대를 가게 될 것이란 생각을 못 했어요. 저는 재수를 해서 이대를 들어왔거든요. 막상 이대 생활을 시작하고 깨닫게 된 것이 여기는 내가 온전히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곳이더라고요. 이를테면, 제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가 하고 그랬거든요. 이대는 여자밖에 없으니까 반장도, 회장도, 누구든 무엇이든 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인 거죠. 그게 저한테는 참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학생회장을 맡았을 때 전체 MT 같은 것을 가면, 답사도 제가 가야 하고 무거운 짐도 제가 들어야 하고 다 직접 해야 했죠. 그런 일들이 '옵션'이 아니라 '필수'였어요. 그 부분이 다른 공학 대학들하고 다르지 않았나 싶어요. 특히 미대는 재료를 들고 다니는데, 저희 1, 2학년 때는 염색도 하고, 판화도 하고 다 배웠어요. 그렇게 캔버스, 염색약, 흙처럼 무거운 재료들을 직접 옮기고, 들고 다녀야만 했죠. ‘내가 내 삶의 주인이어야만 해’라는 주인의식을 가지게 된 것이 이화가 저에게 준 가르침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화에서의 대학생활은 스스로 책임지고 주인공이 되는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들이었어요.


Q. UX 디자이너를 꿈꾸거나 아직 꿈을 찾지 못해 막막한 이화의 구성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제 꿈은 사실 디자이너는 아니에요. 제 꿈은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는 거예요. 그 꿈을 실현함에 있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거죠. 그래서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가 아니라 스스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중요해요. 그래야 살면서 흔들릴 때 중심을 잡을 수 있거든요.

꿈을 실현함에 있어서 디자이너라는 일을 시도했을 때 운이 좋게 잘 맞았으면 좋지만, 이게 재미없다면 다른 일을 찾으면 돼요. 제가 글을 쓰는 작가가 됐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상담사가 됐을 수도 있는 거죠. 그렇다고 해서 ‘나는 디자이너가 되려고 했는데 되지 못했어’라는 좌절감을 느끼진 않을 거예요. 왜냐면 저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거고 그냥 그럴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중에 시도를 해봤던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떻게 살고 싶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인생 미션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지막 한마디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해도 된다’는 거예요. 잘 못할 것이 분명한 일이지만 시도해도 되고, 바닥에 앉고 싶으면 바닥에 앉아도 되고,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그래도 되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나를 믿고 해도 된다!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 이화투데이 리포터 13기 곽소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