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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영화사 비단길 대표 김수진 동문(독어독문·89년졸) 인터뷰

  • 등록일202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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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우주 SF 영화 <승리호>를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 대표 김수진 동문을 만나다


지난 2월 5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 넷플릭스 공개 직후 전 세계 28개국 1위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주목을 받았는데요. 오늘 이화DNA는 영화 <승리호>의 제작사 영화사 ‘비단길’의 김수진 대표(독어독문·89년졸)의 이야기와 함께 합니다!


출처 : 이대학보


Q. 안녕하세요, 선배님!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별다른 소개랄 건 없고, '영화사 비단길' 대표이자 이화여대 졸업생 김수진입니다. 


Q. <승리호>의 성공적 데뷔를 축하드립니다! <승리호>는 ‘한국 최초 우주 SF’ 영화라는 수식어를 얻게 되었는데요, 무엇이든 ‘최초’라는 타이틀에는 용기와 부담감이 따르기 마련이잖아요, 이 수식어를 들으셨을 때 어떠셨나요?

사실은 제가 최초라는 것도 잘 몰랐어요. (웃음)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시도를 했다고 믿어요. 완성이 돼서 공개한 최초 영화이겠죠. 언제나 ‘우주영화를 왜 못 만들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돌아와서 2006년부터 우주영화 시나리오를 몇 편 개발하고 있었어요. 비단길에서 이미! <추격자> 때도 '범인을 금방 아는 스릴러는 왜 안 된다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처럼 이번에도 '우리나라에서 우주영화는 왜 안돼?'하는 약간은 비현실적인 집념과 신념이 있었어요. 그렇게 우주에 관한 영화 시나리오를 계속 개발하고 있다가, 2009년에 당시 <남매의 집>을 만든 조성희 감독을 처음 만났죠. 조성희 감독에게 “장편영화는 뭘 하고 싶어?”라고 물었더니 지금 <승리호> 스토리의 근간이 되는 “우주에서 우주쓰레기 주우러 다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어요.”라고 해서 제가 “해보자!” 했죠. 그때 조성희 감독도 “저 신인인데 가능할까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또 저는 “왜 안돼? 한 번 해보지 뭐~” 그렇게 시작했어요. 10년 전에. 그러고 나서 현실을 인식해서 하나씩 따져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우주영화를 할 수 없었던 많은 이유들이 있었어요. 당시의 우리 CG 기술의 한계가 50%라고 하면, 나머지 50%는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우주영화를 만들어’라는 상상력의 부재, 그 인식의 한계가 컸던 거 같아요. 그렇게 그 벽들을 깨고 수면 위로 올라오는 데 10년이 걸린 거예요. 영화적 상상력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여타의 헐리우드식 우주영화들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만 나올 수 있는 지극히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것에 대한 고민과 노력이 지금의 <승리호>가 된 거죠.

출처 : 네이버영화


Q. <승리호>는 오랜 꿈이었던 우주 SF를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인 작품인데, 극장에서 개봉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기획되었기 때문에 원래 극장 상영용으로 만들었고 기술적으로 거기 맞춰져 있어요. 영국 본사에서 직접 아이맥스를 지원해 주고 싶어 할 만큼 비주얼적인 완성도가 좋았고, 음향을 돌비 애트모스(Dolby-Atmos)로 제작했기 때문에 넷플릭스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이 전부가 아닌 거죠. 그렇지만 팬데믹 상황에서 운 좋게도 넷플릭스라는 특수 OTT 서비스를 통해 전 세계 190개국에서 동시에 공개가 되면서 하루 만에 인기 영화 세계 1위에 오르기도 하고, 전 세계 28개국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K 콘텐츠 위상도 올리고 현재의 환경에서 넷플릭스를 통한 전 세계 동시 공개는 엄청난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극장이든 넷플릭스든 어떤 방식으로든 관객과 만나더라도 우리가 만든 콘텐츠에 대해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아 매우 기쁘고 고맙죠. 넷플릭스니까 전 세계 1위도 해보는 거고. (웃음) 아무튼 우리 영화를 시청하고 좋아하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Q. 대학시절 여성문제와 구체적인 사회 현실의 모순을 다루는 본교 중앙동아리 ‘누에’에서 활동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활동이 지금의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는 것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은데, 어떤 부분에서 특히 영향을 받으셨나요?

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ET>나 <레이더스> 같은 영화들 보면서 마냥 재밌었고 너무 좋았어요. 그러고 대학에 와서는 영화 동아리 #누에 에서 8mm 캠코더 같은 걸로 동아리 부원들과 공동작업을 하고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게 또 다른 재미였어요. 또 당시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도 어느 때보다 컸던 시대라 사회과학 공부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래서 거의 매일 학교에서 모여서 같이 활동하다 보니까 공동체적인 즐거움이 더 많았죠. 그때 기억이 많이 나요.

이화에서 여자들과 무언가를 연대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여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마이너한 것부터 메이저한 것까지 공감대가 빠르게 형성됐었고, 그러다 보니 ‘왜 우리나라에 여성 영화는 없을까’, ‘왜 여자 얘기는 만들어지지 않는 거지?’라는 의문에서 시작해 자연스럽게 여성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 후 우리가 주체가 되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우리의 생각 자체를 창의적으로 표현해보자는 취지로 여성영화도 만들었어요. 그렇게 여성영화를 만들고 보니, 세계에 상영할 수 있는 여성영화제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이것도 우리가 해보자!' 해서 제가 3학년 대동제 기간에 <제1회 여성영화제>를 열었어요. 그전엔 영화가 ‘와! 재밌다!’에 그쳤다면 3학년 이후로 이화에서 느낄 수 있는 여성연대와 더불어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어떤 신념이나 이상을 표현하면서 더 큰 기폭제가 되었죠. 그때가 제 인생에 가장 큰 전환점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Q. 당시 대동제에 올렸던 작품이나, 동아리에서 제작하셨던 작품 등 동아리 활동 중에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굉장히 많은 것들을 올렸어요. 저희 선배들이 만든 작품, '누에'에서 만든 작품, 그 당시에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남미나 유럽의 여성영화들 몰래 상영하고 그랬었죠. (웃음) ‘대학영화연합’이라고 전국에 있는 영화과 소속이 아닌 영화동아리 모임에서 만든 영화들도 틀었어요. 이런 것들을 만들고 상영하고 보는 즐거움에서 오는 그 일들이 ‘내 인생의 가장 즐거운 일이겠구나’ 싶었어요.

이후에 제 개인 작품을 한 번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어요. 이때 이대 총학생회와 장필화 교수님이 지원해 주셨고, 그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영포럼에서 상도 받고. 상금도 탔어요. 상을 받고 나니까 ‘어? 이게 뭐지? 상도 받고 돈도 벌고 너무 좋은데?’ 했죠. (웃음) 특히, 장필화 교수님께서는 제가 4학년 졸업작품 만들 때 제작비도 지원해 주시고, 고기도 사주셨는데요. 장필화 교수님 퇴임식 때 멀리서 오랜만에 뵙고 그분의 특별하고 앞서간 생각들을 한 번 더 깨달았어요. 초창기 여성학 선구자의 우수함이 빛을 발하는 동안 많은 이화인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늘 교수님께 감사하게 생각해요.


Q. 영화계에도 감독, 제작사 등 다양한 역할이 있는데 제작자로서의 삶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앞서 언급한 개인 작품을 만들 때 혼자 각본 쓰고 연출하고 프로듀싱까지 했어요. 그런데 완성한 영화를 보니까 아무래도 제가 연출적인 재능보다는, 추진력 있게 뭔가를 시작하고 작품을 완성시키고 배급까지 총괄할 수 있는 기획 능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당시에는 기술적 뒷받침도 없었을뿐더러, 전문 배우를 섭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동아리 누에방 옆에 있는 연극반 친구들 밥 사주면서 촬영하다 보니 완성도가 떨어진 면도 있었을 겁니다. 여러 경험을 거치며 연출보다는 기획이나 제작을 하는 게 좋겠다 싶었습니다. 선배들에게도 자문을 구했더니, 기획이나 제작에 관한 충무로의 일을 소개해 주었고 그렇게 하면서 본격적으로 제작자로서 일을 하게 됐어요. 


Q. 영화 제작자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언제나 보람도 느끼고, 언제나 후회도 해요. 언제나 아쉬움도 있고. 아마도 지금이 가장 행복할 때 아닐까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렵고 힘들 때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쩌면 제 꿈을 이루지 않았나 싶어요. 돌아보면 초등학교, 중학교 무렵 집에서 언니가 읽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이 책을 보면서 ‘우주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디서 왔을까’, ‘우주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가 존재할까’ 이런 생각도 많이 했었고, 우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또 우리 모두가 그랬듯 <터미네이터>나 <에일리언>, <ET> 같은 우주 SF들을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저런 걸 만들지 못할까’라는 생각도 했었죠. 그런데 현재 저는 제가 그렇게 궁금해하고 만들고 싶어 했던 우주 SF 영화를 한국 최초로 만들었고, 그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28개국 1위라는 기록도 세웠고, 관객이나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지금이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인 것 같아요.


Q. 제작에 참여하신 전작들의 면면을 보면 감독들의 데뷔작인 경우가 많은데, 주로 어떤 부분을 많이 보시나요?

어제 어떤 분이 그러시던데, 대한민국에서 다섯 편 연속 신인감독 영화를 만든 사람은 저밖에 없대요. 누구도 시도해보지 않을 길 같은데, 정말 희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길을 걸어온 줄 저도 몰랐어요! 그걸 의도한 것도 아니었고. (웃음) 

어쨌든 '영화사 비단길' 이름으로 나온 첫 영화가 김대우 감독의 #음란서생 입니다. 김대우 감독은 그 당시에 굉장히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였지만, 감독으로서는 첫 데뷔작을 같이 하게 된 거죠. 나홍진 감독의 경우에는 <완벽한 도미 요리>라는 단편영화를 보고 너무나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만나서 같이 개발한 게 <추격자>였어요. 그다음이 이호재 감독의 <작전>인데, 이 감독이 어느 날 우리 사무실에 놀러 와서 시나리오 쓰게 책상 하나만 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로 오케이 하고 나홍진 감독 옆에 자리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2주 동안 내버려 뒀어요. 2주 후에 가서 그런데 뭘 쓰냐고 물어봤더니 주식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 영화를 쓰겠다는 거예요. 제가 “오, 너무 좋다! 계약하자!” 그래서 그날 바로 <작전>을 계약했어요. 박훈정 감독의 경우에는 본인이 쓴 시나리오가 아직 한 편도 영화화되지 않았을 때 만났는데, 소개해 준 이원석 감독님과 함께 박 감독이 비단길 사무실을 찾았을 때 그분이 쓴 모든 시나리오를 읽어 보게 됐어요. 읽어 보니 너무 잘 썼더라고요. 그래서 글 써서 남 주지 말고 영화까지 직접 연출하고 만들라고 했죠. 그러니까 박 감독이 “제가요? 저 연출할 생각은 안 해봤는데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 정도 쓸 수 있으면 연출도 잘 할 수 있다!” 했죠. (웃음) 그리고 지금은 한국을 대표하는 아주 훌륭한 감독님이 되셨죠 

그다음이 조성희 감독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승리호>를 처음 계약을 했던 게 2009년이었는데, 기술적·인식적 한계로 너무나 오랫동안 투자를 다 거절당했어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 연출 실력을 다른 걸로 먼저 보여 주자!"해서 <늑대소년>을 개발했죠. 아마도 제가 가장 만들고 싶었던 판타지 멜로의 내용이 <늑대소년> 안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아요. 사심이 잔뜩 들어간! (웃음) 그러다 보니 다섯 편 연속 신인감독과 함께 하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출처 : 네이버영화


Q. 말씀하신 작품들만 봐도 지속적으로 신선한 스토리의 영화 제작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제작사 ‘영화사 비단길’만이 가졌으면 하는 고유성이 있으신가요?

그동안 비단길에서 제작한 많은 영화를 보면, 로그라인이나 키워드 하나에서 출발한 영화가 많아요. 한마디로 '오리지널'로 개발한 시나리오기 때문에 영화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죠. 오리지널하고 독창적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웹툰이나 소설을 각색하는 것보다 어렵고 느리며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승리호>의 경우 10년 넘게 세계관, 인물, 과거 전사, 후사 등 모든 걸 처음부터 창조해내야 했기 때문에 정말 오래 걸린 작품 중 하나예요. 다른 원작을 각색하거나 리메이크를 해보자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에요. 다만 좋은 작가, 감독, 배우분들과 '영화사 비단길'의 이름으로 영화를 계속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리지널 창작물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오리지널이 더 재미있기도 하고, 자부심도 들어요. 그래서 꼭 오리지널만 고집하는 것도 아니고, 힘든 과정을 즐기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고 그 과정이 행복한 일이라 오리지널 작품을 계속 보여드리고 있네요. 영화사 비단길, 그리고 저는 다른 곳은 바라보지 않고 오직 좋은 영화로 세상을 조금 더 이롭게, 한 편 한 편 만들 때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워질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만으로 영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거죠. 


Q. 동아리 누에 소속의 대학생 ‘김수진’과 비단길 대표 ‘김수진’ 사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인가요? 

인간적인 면에서는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어요. 여전히 똑같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아이템 생각하거나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님들과 영화 얘기를 하는 등 똑같이 영화를 사랑하며 지내고 있어요. 하지만 환경적으로 변화된 것은, 마냥 영화를 좋아하던 학생 때와는 다르게 '책임감'이 생겼다는 점이죠. 영화를 만드는 데 다른 많은 직업들이 있지만 제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법적 책임과 자본, 작품의 완성도 등 모든 걸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과 스트레스가 많아요. 저 한 명이 틀리면 많은 사람이 손해를 보니까요. 하지만 그만큼 제작자가 되어 재밌는 일도 많아요. 특히 <승리호> 개봉 후 가장 행복한 것은 앞으로 또 다른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신뢰감을 얻은 것이에요.


Q. 이화투데이 블로그에서도 이화 출신 영화인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실제로 영화계에서 활약 중인 이화인들이 많은지 궁금합니다.

그럼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방구석 1열>에도 자주 등장하는 동창 감독 변영주 감독님이에요. 학부생 땐 카메라도 빌려주고 빌려오던 사이로, 둘 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그 밖에도 정말 많아요. 기자님과 동명이신 영화사 '집'의 이유진 대표도 있고요. (웃음)


Q.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이화의 DNA는 무엇인가요?

이화의 사람들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이에요. 이걸 학부생 때는 몰랐는데 돌이켜 보면, 그리고 세상을 살아갈수록 더 느끼는 것 같아요. 여성연대, 모든 걸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해내는 것. 도전적이고 추진력이 있어요. 그리고 옛말에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화인은 그렇지 않고 사심 없이 그 일 자체에 몰두할 수 있는 DNA가 있어요. 이화에 온 후 늘 그렇게 살아와서 차별점을 못 느꼈었는데 그게 이화의 DNA였던 거죠. 시간이 갈수록 '이화를 너무 잘 갔구나, 좋았구나.'라는 생각을 해요. 오늘도 졸업 반지를 끼고 오고 싶었는데 사이즈가 안 맞아서. (웃음) 매일 끼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이화 생각이 많이 나요.


Q. 이화의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세상에 안되는 건 없어요. “이건 못하는 거야!”라는 건 없습니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리고 노력의 차이만 있는 것이죠. 결국엔 다 해내요. 마치 <승리호>가 10년 만에 세상에 나온 것처럼 말이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나 재미있게 잘할 수 있는 일이에요. 스스로의 벽을 만들거나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특히 이화인들은 더 잘할 것 같아요. (웃음)

농담처럼 드리는 말씀이기는 하지만, 저는 <승리호>에서 김태리 배우가 연기한 '장선장'이 지구에서라면 혹시 이대를 다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웃음) 실제로 시나리오 단계에서 장선장 캐릭터를 만들어가면서 김태리 배우를 상상하며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 될 거라 확신했던 캐릭터였어요.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그 캐릭터가 딱 이화를 떠올리게 해요! (웃음)




지금까지 김수진 동문님과의 인터뷰였습니다.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일을 하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이뤄나가는 김수진 동문님을 보며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을 더 해보게 되었습니다. 김수진 동문, 그리고 비단길의 차기작도 궁금해지고 기대됩니다. 김수진 동문의 응원처럼 여러분도 일에 한계를 짓지 말고 도전하는 이화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2기 이유진, 13기 조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