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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방송계] YTN 통일외교안보부장 김희준 동문을 만나다

  • 등록일2020.09.02
  • 5090

“지금까지 워싱턴/상하이/도쿄에서 OOO이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서 세계 뉴스를 전하는 특파원들의 단골 클로징 멘트인데요. 오늘 저희 이투리가 소개해드릴 분은 YTN 최초 여성 특파원이시자 본교 신문방송학과 졸업생이신 김희준 동문(신문방송·91년졸)입니다. 워싱턴 특파원으로 활동 중인 김희준 동문은 올해 '제20회 이화언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김희준 동문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87학번 김희준입니다. 1991년 같은 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93년 석사로 졸업했습니다. 1994년 한국 최초의 뉴스채널 YTN에 입사해 언론인 경력을 시작했고,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정치부 통일외교안보팀, 정치선임데스크, 워싱턴 특파원 등을 거쳐 현재 통일외교안보부 부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Q. 제20회 이화 언론인상 수상하신 걸 축하드립니다.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지난 만 26년간 언론인, 방송 기자로서 걸어온 길은 결코 꽃길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경력 중 20년은 워킹 맘의 감투도 함께 썼습니다. 두 아들을 키우며 많은 분투와 눈물 끝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이번에 모교가 주신 ‘이화 언론인상’은 그런 노고에 대한 인정이자 “잘 견뎌냈다"라는 위로 같아 더없이 감사하고 영광입니다. 


Q. YTN 첫 여성 특파원이라는 타이틀을 지니셨는데, 여성 언론인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워싱턴에 부임한 때가 2016년이었으니 YTN 출범 22년 만의 첫 여성 특파원이었습니다. 그동안 워싱턴, 뉴욕, 도쿄, 베이징 등 세계 6개 지국에서 30여 명의 특파원이 배출될 때까지 단 한 명의 여기자 특파원이 없었다는 것은 그만큼 여기자에 대한 유리천장이 두터웠음을 방증합니다. 

기자 초년병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거칠고 힘든 취재 현장이나 밤을 꼬박 새는 야근이 아니었습니다. 힘든 것은 바로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입사한 1994년 당시 언론사에서 여기자는 극히 드물었고, 그마저도 문화부, 국제부 등 소위 ‘편한 부서’에 배치되기 일쑤였습니다. 정치부와 국방부, 검찰팀 등 이른바 남성들의 영역에는 여기자를 좀처럼 인사 발령 내지 않았죠. 제가 2001년 정치부 발령받았을 때 20여 명 부원 가운데 홍일점이었습니다. 이처럼 언론사 조직 내에서는 물론 취재 출입처에서도 남성 중심의 위계질서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 그 속에서 인정받기 위해 업무 성과는 물론 네트워킹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또 결혼 뒤에는 일과 육아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출산을 마친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출산휴가는 단 2달이었고 육아휴직조차 없었습니다. 기자란 직업은 휴일, 명절, 밤낮도 없는 데다 아이를 키우려면 누군가의 지원과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저 같은 경우엔 시부모님과 남편의 도움과 후원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의 이런 말이 자칫 ‘라떼는’으로 비칠까 조심스러운데요, 현재 신입 기자의 절반 정도가 여기자이고, 한 자녀 당 각 1년씩의 육아 휴직은 물론 남편의 육아 휴직도 당연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참으로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Q. 특파원으로서 활동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1학년 ‘방송학개론’ 수업 때로 기억되는데 ‘특파원은 기자의 꽃’이란 표현이 뇌리에 꽂혔습니다. 제가 졸업 후 기자가 될지 다른 길을 걸을지 모르던 때였는데 말입니다. 대학원 진학 뒤 운명처럼 방송 기자가 됐고 먼 미래의 목표로 막연히 ‘특파원’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 2001년 정치부 통일외교안보팀에 발령받아 외교안보 분야 기자의 길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2000년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뒤 남북관계가 한창 꽃을 피우던 시기여서 수차례 남북회담과 이산가족 상봉 등을 취재하며 몇날며칠 밤을 새우면서도 참으로 즐겁게 일했습니다. 기자 경력 동안 문화부, 경제부 등 여러 부처를 거쳤지만 주로 국제부와 통일외교안보팀, 정치선임데스크 (외교안보전문기자) 등을 맡으면서 국제 정치와 외교안보 분야에 전문성을 갖게 됐습니다. 2011~2012년에는 뉴욕 컬럼비아대학 ‘웨더헤드 동아시아연구소’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연수하는 기회도 주어졌습니다. 이를 통해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의 치밀한 외교 전략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됐고 한미 동맹 강화와 북핵 문제 해결 등에 더 큰 소명 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이런 제게 미국 특파원이야말로 제 경험과 인식의 지평을 한층 넓히고 더욱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해 지원하게 됐습니다. 당시 경쟁률이 5대1이었는데, 업무와 영어 능력 등에 대한 평가를 거쳐 감사하게도 YTN의 최초의 여성 특파원으로서 워싱턴에 부임하게 되는 영광을 안게 됐습니다. 


Q. 통일외교안보부의 주요 업무는 무엇인가요?

정부 부처로 말하면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가 저희 부가 담당하는 취재 출입처입니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과 남북관계, 외교, 안보 분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안을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정치부 내에 국회 팀, 청와대 팀과 함께 통일외교안보팀이 속해 있었는데 남북관계와 외교 현안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별도 부서로 독립하게 됐습니다. 다른 언론사에서도 별도 부서로 운영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통일외교안보부의 현안과 정책은 청와대, 국회 또 각국의 반응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정치부, 국제부와도 유기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6일 북한이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죠. 남북 화합의 상징인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는 향후 남북 관계를 더욱 불투명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북미, 북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큰 사안이었습니다. 이에 통일부와 국방부는 물론 청와대까지 정부 주요 부처가 대응책 마련에 숨 가쁘게 움직였습니다. 때문에 YTN은 물론 각 언론사가 뉴스 특보 체제에 돌입했는데, 저희 통일외교안보부원들과 부장인 저는 북한의 움직임과 정부의 대응을 속보로 타전하느라 며칠을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Q. 선배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나 기사는 무엇인가요?

워싱턴 특파원 시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참모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단독 인터뷰를 잇따라 성사시킨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국내 언론이 백악관과 국무부 고위인사를 연쇄 단독 대담한 것은 처음이자 유일무이한 기록입니다.


폼페이오 장관 인터뷰(2018.6.8) | 맥매스터 백악관 보좌관 인터뷰(2017.11.2)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인터뷰는 2017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이뤄졌는데요, 당시 북미 긴장이 고조되면서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과 이른바 ‘코리아 패싱’이 우려되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맥매스터 보좌관은 YTN과의 인터뷰에서 ‘코리아 패싱’과 미국의 단독 대북 군사 행동은 불가능한 일임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몇몇 국내 언론들과 해외 언론이 YTN을 인용해 이를 보도했을 때 보람이 컸습니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직전에는 백악관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독대했는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보내는 메시지를 명확히 한 인터뷰였습니다. 

이외에 싱가포르에서 열린 1차 북미정상회담과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현장에서 취재한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취재 기록입니다. 당시 백악관 기자단으로 등록해, 워싱턴에서 직항편이 없는 싱가포르와 하노이로 각각 거의 24시간을 비행한 뒤 날아가 곧바로 생방송에 투입되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수천 명의 취재진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역사적인 만남, 북미 협상 속보를 시시각각 전한 일은 기자로서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입니다. 다만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국 결과물 없는 ‘노딜’로 끝나고 남북, 북미 관계가 여전히 제자리인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Q. 선배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기자가 지녀야 할 자질 한 가지만 꼽자면?

세상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정의롭고 따뜻한 시선입니다.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 질서에 대한 깊은 관심이 있어야 언론인으로서 문제의식을 갖고 취재에 임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불공정과 부당한 것에 불편을 느끼는 정의로운 시선 또 사회 약자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을 어루만지고 더욱 공정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기자로 만들어줄 것입니다.

제20회 이화언론인상 시상식에서


Q. 이화에서의 대학생활에서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학부 생활 동안 과내 보도사진부로 활동했습니다. 매년 봄 축제 때는 교내에서, 가을에는 교외에서 전시장을 빌려 정기 전시회를 열었는데요, 특히 교외 전시회는 ‘전통문화 장인들’ ‘철거촌 사람들’ 등의 주제 있는 기획전으로 마련했습니다. 이를 위해 여름방학 동안 부원들과 행사를 기획하고 출사를 나갔으며 예산 마련을 위해 각 기업체 협찬을 얻으려 동분서주했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3학년 때는 제가 보도사진부장을 맡아 동아리를 이끌었는데 힘들었지만 보람도 컸습니다. 


Q.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독립', '도전', '화합' 세 가지 키워드가 떠오릅니다. 

'독립' - '여대'라는 것이 약점이라고 이야기하는 후배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들로만 구성된 공동체 속에서 이화인은 스스로 독립심과 리더의 자질을 키워가는 훌륭한 환경과 마주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대학원 시절 남녀공학 대학생들과 합동 수업을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다른 학교의 여학생들은 이화인에 비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의존적인 성향이 있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이화인의 DNA에 흐르는 독립심은 여러분을 성공하는 사회인으로 키워갈 것입니다. 

'도전' - 130여 년 전 한국 최초의 근대식 여성교육기관으로 출발한 ‘이화’는 이후 ‘최초’라는 많은 기록을 남기며 도전의 역사를 써왔습니다. 그 도전 정신을 체화한 수많은 이화인이 우리 사회에서 또다시 ‘여성 최초’라는 수많은 타이틀을 거머쥐며 인재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 뒤를 이을 여러 분은 ‘청출어람 청어람'으로 더욱 멋진 활약을 보여주리라 믿습니다.

'화합' - 이화 공동체는 자매애와 연대를 통해 화합과 배려의 정신을 배우게 합니다. 이런 자질 역시 사회생활을 해가면서 훌륭한 장점으로 발현되리라 생각합니다. 


Q. 앞으로 선배님의 목표가 궁금합니다.

워싱턴 특파원을 통해 제 언론 경력의 꽃을 피웠다면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노력해 더 의미 있는 결실을 맺고 싶습니다. 단순한 기사 생산에서 나아가 총성 없는 전쟁터 같은 국제 정치 현실에서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논평하고 올바른 대안을 제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10년이 채 남지 않은 저의 언론인 경력을 더욱 의미 있게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아가 저의 연륜과 경험이 쓰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디서든 봉사하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언론인을 꿈꾸는 이화인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꼭 25년 전, 초년병 기자 시절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됐습니다.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안전모를 쓰고 무너진 건물 지하로 내려갔죠. 그곳에서 건물 잔해와 흙더미에 묻혀 있던 셀 수 없이 많은 시신들을 마주했고, 혹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찾아 카메라 기자와 함께 먼지 자욱한 숨막히는 사고 현장을 헤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처럼 기자란 직업은 결코 멋지거나 화려하지 않으며 오히려 저희들끼리는 3D(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업종이라 표현할 정도입니다. 밤낮도, 휴일도 반납하기 일쑤이고 위험한 취재 현장도 마다 않고 달려가야 하니까요.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한 직업입니다. 나의 말과 글로 세상의 부조리가 조금씩 변화할 때 느끼는 희열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또 역사의 현장 어디든 달려갈 수 있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나의 인터뷰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루하루 가슴 뛰는 현장과 마주하고 올바른 역사를 써가는 데 작은 발자취라도 남기고 싶은 분이라면 누구든 이 멋진 세계로 오십시오.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남과 북의 화합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시는 YTN 통일외교안보부장 김희준 기자님을 만나보았는데요! 기자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정한 언론인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기자님의 언론인으로서의 길과, ‘독립, 도전, 화합’ 이 세 가지를 마음속에 품고 성장하는 이화인 여러분을 저희 이투리가 응원합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2기 정경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