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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한국 대표 조명 디자이너 고기영 동문 인터뷰

  • 등록일2020.03.18
  • 6558

오늘 이화투데이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명 디자이너 고기영 동문(장식미술과·87년졸)을 만나고 왔습니다. 빛을 통해 건축 공간을 새롭게 창조하는 기업 비츠로앤파트너스의 대표로서 경복궁 마스터플랜, 광안대교·부산항 대교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강릉의 경관(景觀) 조명까지 굵직굵직한 작업을 도맡아왔으며, 본교 디자인학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계신 고기영 동문의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출처 : 패션매거진 <엘르>코리아(elle.co.kr), 포토그래퍼 맹민화 (MAENG MIN HWA)


Q. 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 83학번으로 조형예술대학교 디자인학부에서 공간디자인 을 전공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이름이 장식미술학과 였는데요, 여기서 공부를 하고 1987년도에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해 실내환경디자인을 공부했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마친 후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Architectural lighting design을 전공한 후 1992년부터 이화여자대학교로 돌아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저는 1998년도에 비츠로앤파트너스 를 창업하여 이제 22년 차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동문님이 참여하신 여러 가지 조명 프로젝트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일단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을 위한 건축과 환경에 관한 여러 가지 라이팅 디자인을 전체적으로 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과거와는 다르게 LED라는 조명이 새롭게 등장한 이후로는 미디어 등 여러 가지 아트 콘텐츠 작업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도시의 마스터플랜, 기업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디자인 매뉴얼 작업, 루미네어 디자인 및 Lighting installation 등 틀에 박힌 조명 디자인이 아닌 색다른 작업에도 많이 참여했습니다. 

비츠로앤파트너스가 오랜 시간 동안 프로젝트를 진행한 만큼 저희 손을 거친 프로젝트들은 그 숫자를 세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답니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자면, 우선 호텔 프로젝트로 JW 매리어트 호텔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 리모델링, 르메르디앙 서울 호텔, 제주 신라호텔, 신라스테이, 제주 나인 브릿지 골프 리조트, 아프리카 르완다 호텔 등 많은 호텔 조명을 디자인했습니다. 이런 류의 호텔 프로젝트들은 퍼블릭 공간, 객실 공간, 레스토랑, 바, 컨벤션 공간 등 용도에 따라 그에 알맞은 조명 디자인을 채택합니다.

JW 매리어트 호텔 프로젝트(출처 : bitzro-partners.com)


그리고 서울역 앞의 옛 대우빌딩인 #서울스퀘어 리노베이션으로 조명의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죠. ‘건물 벽 자체를 캔버스로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즉 이 건물의 외벽을 통해 시민들에게 예술을 보여주는 장으로 이용한 것이죠. 이 건물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LED미디어파사드 라는 용어가 등장했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세라믹 타일로 되어있는 건물 외벽에 LED를 심는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이 LED가 심어진 타일에 아티스트 줄리안 오피가 콘텐츠를 넣어 큰 센세이션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조명의 역사가 조금 바뀌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후 중국에서도 이 프로젝트를 본떠서 디자인을 하겠다고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어요. 

서울스퀘어 프로젝트(출처 : bitzro-partners.com)


다른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종로의 D타워, 서초동의 GT타워가 있는데요. 이 건물은 낮과 다르게 직선적으로 보이는 건물을 아지랑이 콘셉트로 건물을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표현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NC 소프트 판교, 청담동 신세계 인터내셔널 빌딩, 삼성 연수원, 한화 연수원, 두산타워, 스타필드 하남, 스타필드 부천, 부산 오페라하우스, 국립 중앙박물관 등 여러 가지 유명한 건물의 조명 디자인을 담당했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출처 : bitzro-partners.com)


그 이외에도 카타르 바이오 뱅크, 카타르 알마티 타워, 쿠웨이트 코즈웨이와 같은 해외 프로그램의 조명을 맡기도 했으며 전혀 분위기가 다른 경복궁의 마스터플랜을 책임지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찾으시는 창덕궁의 달빛 기행의 조명도 저희의 손을 거친 것이랍니다. 또한 2012 여수 엑스포, 2018 평창 올림픽 등 국제적인 행사의 조명 디자인에도 한몫을 했습니다. 

경복궁 마스터플랜 프로젝트 '경회루'(출처 : bitzro-partners.com)


요즘에는 사적인 영역인 주택부터 도시 마스터플랜까지, 더 나아가 기업의 건물의 조명 디자인도 맡고 있는데요, 업무 환경이 바뀌고 웰빙을 추구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짐에 따라 심리적인 요인을 고려한 조명에 많은 신경을 기울입니다. 이렇듯 인테리어(interior), 엑스테리어(exterior) 구분이 없이 통합적이면서 또 사람 중심적으로 조명을 어떻게 표현할지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같은 공간이어도 빛을 어떻게 만들어 주느냐에 따라서 공간의 표정이 바뀔 수 있거든요.


Q. 이러한 많은 프로젝트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먼저 건축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서 프로젝트가 시작돼요. 건축가가 기본적인 데이터를 제공해 주고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이에 기반하여 환경, 실내 실외의 관계성 등 여러 가지 상황들을 충분히 숙지하고 건축의 구조, 형태, 마감 등을 확인합니다. #익스테리어 의 경우 꽃의 종류, 계절별 변화와 같은 외적 요인을 고려하고 #인테리어 의 경우에는 가구, 마감재의 종류 등 여러 가지의 변수에 맞추어 조명을 디자인합니다. 

이렇게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는 이유는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용자 중심으로 두고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독서를 하기 위한 조명과 편안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의 조명은 달라야 하는 것처럼요. 사용자의 요구 사항에 최대한 부합하기 위해 업라이트(uplight) 조명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등을 달지 않고 이동식의 조명을 놔둘 것인지 등 조명의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렇게 디자인의 방향이 설정되면 가구들과 어우러지도록 레이아웃을 만듭니다. 레이아웃 작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는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디자인에 사용될 제품들을 비교·분석하고 예산과 공장 상황 등 여러 현실적인 조건들을 고려합니다. 그 후 기구에 대한 디자인과 스펙 정하게 되고 시공사 선정, 감리의 과정을 거칩니다. 실제 작업 현장에서는 상황에 어떻게 흘러가는지 수시로 확인하는데요, 그 이유는 그 상황에 따라서 조명 또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무리로 빛을 조절하는 수정 작업을 통해서 마지막 파이널 터치를 한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모두 다 기억이 남긴 하는데 아무래도 저의 첫 작품인 제주 나인브릿지 프로젝트에 가장 큰 애착이 가는 거 같습니다.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전에는 리조트들이 가로등만 세워서 빛을 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조명기구가 드러나지 않는 색다른 방식의 조명을 사용했었고 그게 그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이었고 새로운 야간 환경을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울 스퀘어 프로젝트도 기억에 남는데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 ’미디어 파사드’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게 되었거든요. 그 외에도 너무 고생하면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지만 많은 분들이 보시고 행복해했던 때, 아쉬운 부분이 있는 프로젝트들도 기억에 남습니다.

제주 나인브릿지 프로젝트(출처 : bitzro-partners.com)


Q. 조명 디자이너로서 일을 하시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실 때와 가장 힘들다고 느끼실 때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먼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저희한테 조명 프로젝트를 의뢰하신 클라이언트 분들이 완성된 공간을 행복하게 쓰실 때입니다. 프로젝트 과정에서 시간이 촉박하거나 여러 사람들과 갈등이 있더라도 만족해하시는 클라이언트들을 보면 그런 속상함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가장 힘든 점은 아무래도 체력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조명 디자인이 생각보다 많은 체력을 요구하는 분야입니다. 조명이라는 것 자체가 밤에 빛을 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명의 테스팅 등 여러 가지 작업을 대부분 밤에 진행하거든요. 게다가 낮에는 환경에 대한 리뷰, 서치, 분석과 외부 미팅 등 여러 가지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래서 거의 하루 종일 조명에 대한 작업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라서 많은 체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실 좀 육체적으로 많이 힘든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보다도 어떠한 새로운 분야를 만들어서 세상이 나로 인해서 좋은 쪽으로 발전되고 있다고 느낄 때, 그리고 저희가 일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많은 분들이 느낄 때 더 큰 보람이 있죠. 

또 한 가지 힘든 점은 조명 디자인이라는 게 눈에 보이는 아이템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기인하는데요. 빛은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 때문에 온전히 정신적인 프로젝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경제적인 가치만 따지는 분들이 계실 때 많이 속상하죠. 그래도 최근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명 디자인의 가치를 알아줘서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습니다.



Q. 이화여대에서 하신 공부나 활동이 진로에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나요?

저는 이화에서의 6년의 생활들이 제 인생 항로에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공간 디자인이라는 전공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디자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는데요. 왜냐하면 이전과는 다르게 디자인에 환경이라는 개념을 도입했기 때문이죠. 이화의 지도 교수님들이 이 점을 상기시켜 주시면서 디자인이라는 것이 단지 장식이 아니고 인간을 존재케 하는 환경에 관한 것이라는 점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환경뿐만이 아니라 인간 자체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거시적인 안목으로 디자인을 공부할 수 있게 되었어요. 빛도 이와 같이 빛 자체를 보는 것보다 전체적인 것에 대한 공부가 필요한 분야입니다. 이화에서 전체를 보는 눈으로 공부하던 기초가 조명 디자인에 있어서 전문성을 가지게 된 데에 큰 몫을 한 것 같아요. 또한 이화가 항상 추구하는 미래 지향적인 정신과 진취적인 가르침이 전문적인 필드 안에서 한 인간으로서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습니다.


Q. 조명 디자인이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분야인데 그 길을 택하게 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저는 원래 피아노를 전공했어요. 그래서 계속 피아노에 관한 입시를 준비하다가 고3 때 전공을 바꾸어 미대에 가게 된 케이스입니다. 저는 음악과 빛이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해요. 둘 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을뿐더러 시간성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공통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항상 빛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잘 모르더라고요. 또 조명 디자인이 많이 개척되지 않은 분야기도 해서 ‘내가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 길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Q. 조명 디자인을 비롯한 여러 디자인 분야 진로를 꿈꾸는 이화인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현재만 놓고 미래를 예측하지만 현재가 있기 위해서 과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과거의 역사 속에서 흘러갔던 시간의 흐름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사람들 - 예를 들어 모차르트, 셰익스피어, 반 고흐 등 여러 위인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데이트를 한다는 느낌으로 과거의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보세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에 대해서 알게 되고 미래를 볼 수 있어요. 또한 사회적인 흐름을 보는 것이 디자인에서는 매우 중요하답니다. 피상적인 겉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 속에서 주변과의 연계성을 생각해본다면 디자인에 관한 많은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Q. 현재 이화여대를 다니고 있는 후배 벗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복이 많았던 게, 제가 학교를 다닐 때 중앙도서관이 오픈을 했어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도서관이 정말 시원해서 방학 동안 거기서 책만 보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보다는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접하는데 그렇게 흘러가는 정보도 중요하지만 책처럼 잡아놓고 계속 느낄 수 있는 정보를 자주 접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화 캠퍼스가 정말 예쁘잖아요. 사계절 내내 변화하는 풍경들이 정말 아름다운데, 학교를 다니며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사회에 나오면 정신없이 산다고 그런 여유를 느낄 시간이 없거든요. 조금은 느리게 걸으면서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겁내지 말고 도전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도전하고 많은 걸 접해보세요. 저도 대학생 때는 미래가 불안해서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거는 절대로 하면 안 되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니 놀면 노는 대로, 열심히 살면 또 열심히 사는 대로 모든 게 자기의 인생에 축적이 되어서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걱정 말고 즐기세요! 저희 때만 해도 ‘여자 혼자서 어디 가면 안 된다’ 와 같은 보수적인 말들 때문에 친구들끼리 여행도 못 가고 졸업하기 무섭게 결혼부터 하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유학 가는 거에 대한 두려움도 더 많았는데 도전하고 나니까 후회가 없어요. 실제로 경험해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 이화투데이 리포터 11기 박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