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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DNA

[문화예술계]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외치는 빛나는 배우, 김여진 동문(독어독문, 95년 졸)

김여진

최근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에서 ‘엄마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여진 씨가 이화의 동문이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TV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김여진 동문을 이화투데이 리포터가 만나고 왔습니다. 화면 속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다르게 후배들 앞에서는 따뜻한 선배님이셨는데요! 한국의 배우로서, 한 가정의 아내, 엄마로서, 이화의 선배, 동문으로서 솔직담백하게 풀어주셨던 이야기들을 지금부터 한 번 들어 볼까요?

 

Q.안녕하세요. 간단하게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독어독문학과 91학번 김여진 동문 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연기를 하고 있어요. 

 


Q.학창시절 이과에서 독어독문학과로 진학하기 위해 문과로 전향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어독문학이라는 전공에 매료되셨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매료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얘긴데, 저는 원래 이과였어요. 그런데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을까’, ‘뭘 해야 좋을까’ 생각하면서 또래 친구들처럼 방황을 했죠. 그러다 우연히 전혜린 씨 에세이집을 보게 되었고, 점점 독일문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어요. 괴테의 『파우스트』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릴케의 시집, 하인리히 벨이나 헤르만 헤세, 루이제 린저의 작품들을 읽게 됐어요. 아주 깊이 있는 독서는 아니었지만 흥미가 생겨 계속 읽게 됐고, 그것이 원동력이 돼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부모님과 문과로의 전과를 두고 단판을 지었죠.(웃음) 

제가 기억하는 한 다섯, 여섯 살 때부터 부모님의 생각하시는 저의 장래 직업은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이과를 선택했는데, 사실 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문과였고(웃음), 전혀 이과의 재능은 없었어요. 만약 이과 공부를 계속 했으면 제가 원하는 대학에는 진학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웃음) 문과로 바꾸면서 하고 싶은 무언가가 생겼고, 공부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됐죠.

  

Q.선배님의 말씀을 들으니, 선배님께서는 독어독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넘치셨던 것 같습니다. 선배님께서 연기 인생을 살아가시는데 있어서 독어독문학이라는 전공이 도움이 되었나요?

사실 학과 공부 자체는 크게 재미는 없었어요. 입학 전에 생각했던 것과 괴리가 있었죠. 여러분 중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요? 고등학교 공부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똑같이 학점을 따기 위한, 그리고 과제를 위한 공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 자체가 어떠한 지적인 쾌감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에 진학해서는 다른 쪽에 흥미를 가지려 노력했어요. 정치학이나 여성학과 같은 교양 과목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연기를 하면서는 독문학을 공부했던 게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대학생 때 이론적인 공부를 했던 것이 이후 외국 작품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도 무리 없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문화적인 콘텐츠를 볼 때, 나만의 취향과 기준도 생겼죠.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영화나 연극도 비교적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요. 배우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기 캐릭터에 함몰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문학, 특히 독일문학을 공부했던 것이 제가 캐릭터들을 조금 넓게 볼 수 있는 바탕이 된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제가 살아가는 데 기본이 되어주는 것 같습니다.

 

Q. 이화에서의 대학생활을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이화인으로서 대학생활 중 가장 소중했던 경험이 있으시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이화여대에 다니면서  자유로웠다는 점이 기억이 나네요. 여학생들끼리만 누릴 수 있는 컴컴한 과방도, 또는 잔디밭도, 운동장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술도 조금 먹고요.(웃음) 그리고 축제도 꽤 재밌었어요. 모든 준비를 우리들끼리 다 했었던 기억이 나요. 힘쓰는 일도 많이 하고요. 그런 경험들이 제 성격의 일부가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딸 셋이 있는 집안에서 자라났고 여중-여고-여대를 나왔어요. 사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사회에 나왔을 때 처음으로 남성문화라는 걸 접하게 되었죠. 숨이 계속 턱턱 막히더라고요. 그 전까지 너무 자유롭고  ‘나’로서 살았었는데, 사회에서는  ‘여배우, 여자후배, 여성’이라는 틀에 자꾸 갇히는 느낌이 들었죠. 우리 사회에 만연한 군대문화라고 해야 할까요? 그러한 것이 저와 계속 마찰을 일으켰죠. 예를 들면, 후배가 선배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되는 것, 또는 술자리에서 술 억지로 강권하는 것 등이 있었죠. 우리 학교엔 이런 것을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그렇기에 저에게는 익숙지가 않았고, 적응하다기 보다는 싸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화에서의 생활이 고마운 일입니다.

 

Q.이화에서 수강했던 과목 중에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네, 현경 선생님이란 분이 계셨어요. 지금도 유명하신 여성 신학자이신데, 제가 그 교수님의 ‘기독교와 문화’라는 과목을 수강했었습니다. 기독교에 관련된 수업이었는데 교수님은 모든 종교적인 관점을 다 뒤집어버리셨죠. 그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하나님이 남자면, 남자가 하나님이다.” 그러시더라고요. “왜 하나님이 남자야?” 라고 처음에 질문을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대부분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잖아요? ‘신에 성별에 있을까? 성별이 있다면 남성일까? 왜?’ 라는 의문이 생긴 동시에, 모든 종교에 신이라든가 선지자라든가 예언자가 다 남자로 설정 되어있다는 것도 인지하게 되었죠. 교수님께서 ‘그러면 결국 남자가 신이 될 수밖에 없다.’ 고 하셨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1학년 때 들었던 그 수업은 저로 하여금 전복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했어요. 아직까지도 현경 교수님은 제가 존경하는 분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교수님의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강력히 권합니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라는 책이 있어요. 정말 재밌어요!(웃음)

 

Q.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과 그 이유가 있었나요?

대학로에서 공연을 봤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연극이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여자만 다섯 명이었어요. 편하게 보면서 굉장히 재밌었어요. 여자 배우들이 여자 이야기를 하는 구조가 대단한 아젠다를 던지는 게 아니라, 각자 다섯 명의 다른 삶을 사는 여자들이 자기 삶을 이야기하거든요. 그 공연을 보면서 처음 연극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 자리에서 결심했어요.(웃음) 보고 난 후에 그 자리에서 가만히 앉아 있다가, 관계자에게 '제가 포스터 붙여드리겠다. 입단할 수 있냐'고 당차게 물어봤어요.

그 때가  여성학과 대학원으로 진학 하려고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던 때여서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웃음) 대학원 갈 때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한 달 만이라도 이 연극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시작을 하게 된거죠. 그런데 불과 한 달 만에 공연에 문제가 생겨서 제가 대신해 무대를 서게 되었고, 그렇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청년 실업이 심한 요즈음, 자신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진로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세대를 초월하여 공통적인 것 같은데요. 선배님 역시 대학생 때 비슷한 고민을 하시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처럼 고민이 많고 힘들 때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저에게는 희망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학생운동을 했기 때문에 학점도 좋지 않았고, ‘간신히 졸업만 한 게 기적이다’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취업가능성을 가늠할 수 없는 처지였고, 그걸 위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웃음) 그래서 대학원 진학을 도피처로 생각해냈죠. 물론 여성학을 공부해 보고 싶은 것도 있지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마 끝까지 해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시기에 한 달 가까이를 혼자 지냈어요. 학생운동도 그만두고, 연애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친구들은 취업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을 때였죠. 그 때 저 혼자 아무것도 할 게 없는 ‘나는 어디로 가야 될까’ 이런 마음 상태에서 생활을 했어요. 수습 불가한 채플 출석을 대신하기 위한 레포트를 쓰면서 말이죠.(웃음) 

살다보면 자기가 스스로 멈추지 않으면 멈추기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가속도가 붙어 계속 떠밀려가게 되는 거죠. 그러면 진정한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지 생각도 못하면서 계속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고 관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거죠. 저 역시 그 당시에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아요. 자취방에 혼자 천장 보고 있거나 음악 듣거나 책을 본는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정신없이 살아왔던 나를 되돌아보고 비워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겠고 또 그런 것에 공허함을 느끼기도 했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연극을 보러갔다가 앞에서 언급했던 그 연극을 보게 되었고, 기회가 생기니 덥석 하겠다고 시작을 하게 된 것이죠. 그 전에 단 한 번도 연극에 흥미를 가져 본 적도, 동아리활동을 한 적도 없었습니다. 정말 ‘어쩌다보니’ 시작을 한 거예요. 

연극을 하면서 1년에 약 100만원 정도를 벌었습니다.(웃음) 남들이 보면 고생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지하철 탈 돈도 없어 걸어 다니고 밥은 극단에서 만들어 먹는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참지 못할 만큼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무대에 섰으니까요. 저에게 왜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왔을까 생각 해보면, 제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대에 서도 겁이 나지 않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오늘 펑크 났는데 네가 서 볼래?” 

“저 한 번도 안 해봤는데요.” 

“너 대사는 외우잖아.” 

“네.” 

“일단 서봐.” 

“네.” 

“정 안 되면 내가 그냥 불을 내릴게.” 

이렇게 '잘해야겠다' ‘이걸 해서 뭘 얻겠다’ '내가 앞으로 연기를 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이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대신 연극이 하고 싶어서 한 것이고 마침 기회가 왔기 때문에 ‘못하면 내려오지’ 라는 무모함으로 뛰어들었고, 결국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고 싶은가’인데,사실 그 것을 생각하기에 너무 많은 조건들이 붙죠. 하나하나 생각하다보면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 같고, 혼자 남겨지는 것이 너무 두려워집니다. 제가 저의 경험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멈춰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 학생 시절에 저 역시 많은 고민을 했었습니다. 여행이라도 가야 될 것 같고, 연애라도 해야 될 것 같았죠. 뭐든 해야만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너 요즘 어떻게 지내?” 라고 누가 물을 때, 대답할 말이 필요 했던 거죠. 그런데 그런 생각을  놓아 보는 거예요. 손을 펴고, 다 놓아보고, 힘을 빼고 멍하니 있다 보면 내 안에서 새로운 용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여진


Q. 최근 촬영하신 드라마, 솔로몬의 위증에서 주인공 어머니 역할을 맡으셨습니다. 초반부에 주인공이 학교에서 뺨을 맞고 난 후에 직접 학교에 함께 가서 항의하고, 딸의 행보를 응원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미성년자는 ‘보호’를 받아야만 하는 대상, 자기 결정권이 없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면 되는 어린 애. 취급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소위 어른들 세계, 기득권층의 부조리함을 미성년자이자, 여성인 주인공이 친구들을 이끌며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희 역시 미성년자, 특히 여성 미성년자가 우리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예술계에서 종사하시면서 이에 대해 느끼시는 점이 있으신가요?

우리나라의 미성년자들은 공부만을 위해 가두어져 있죠. 학교로부터 일탈은 너무 큰 피해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도 요즘에는 청소년 운동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이고, 특히 이번 촛불집회에서도 발언한 청소년들도 많았잖아요? 어둠 속에서도 아이들을 자라고 무언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우리나라 어떤 분야보다 매우 열악한 것이 바로 아동 인권과 청소년 인권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성인권은 상대적으로 치열하게 싸울 수 있죠. 우리나라 인구의 반이 여성이고 또 ‘성인’ 여성이 포함이 되니까요. 그래서 많이 발전을 해온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동과 청소년 문제는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아요. 자신들 역시 그 시절을 경험했던 것을 잊었기 때문이죠. 

저는 특히 아역배우의 인권문제에 많은 문제의식을 느껴요. 과연 그 아이의 인생에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고, 그저 소모하고 치워버릴 일인가. ‘저 아이는 어떻게 되나?’ 라는 생각이 들곤 하죠. 여러분이 보기에는, 아역배우스타가 계속 연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으면 열 명, 아니 그보다도 더 적겠죠. 그 뒤에는 수백 명이 존재하고 있어요. 많은 아역배우 친구들이 어려서부터 자기 의견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른의 삶을 빨리 배웁니다. 소위 어른들의 틀에 갇혀서 눈치를 보고 경쟁을 하면서 인지도에 따라 차별을 받습니다. 밖에 나갔을 때는 유명해서, 또는 유명하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어른들이 겪을 스트레스를 어린 나이 때부터 경험하기 시작하는데, 우리나라 촬영 현장은 그런 것들을 고민하지 않아요. 단지 드라마에 필요해서 쓰고, 그 다음은 책임지지 않는 것이죠. 촬영 때문에 학교에서 제대로 학습 받지 못하고, 또래 친구도 없는데 이들이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방송 쪽은 특히 어린 여성에 대한 소모가 굉장히 심합니다. 아역 배우들 역시 이런 상황에서 벌써부터 배역에 한계를 느끼고 있어요. 항상 남성에게 의존하고, 보통은 또 문제를 일으키는 역할을 맡곤 하죠. 그런 의미에서 <솔로몬의 위증>은 굉장히 특별한 드라마 이었죠. 전혀 로맨스 없이, 똑똑한 여자 아이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그렸으니까요. 아빠는 단순히 기성경찰의 역할을 하지만, 엄마(김여진 동문의 배역)는 든든한 지원자로서 주인공과 특별한 연대감을 형성했던 것 같아요. 그런 드라마가 이제 시작이 되었으니까, 앞으로는 조금씩 좋은 방향을 나아가겠죠?(미소)

 

Q.현재 여성재단 홍보대사이신 걸로 들었는데, 위키백과에 '사회운동가'로 나오실 만큼 사회참여적인 활동을 활발히 하시게 된 배경이 무엇인가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굉장히 화려해보이지만 그늘이 짙습니다. 여배우들은 특히 늘 외모에 대한 것들에 굉장히 신경을 써야만 하죠. 나의 지성, 마음 등은 필요 없고 오로지 아름다움이면 다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살다보면, 우울증이 쉽게 찾아오게 되고요. 그래서 쇼핑, 도박과 같은 것에도 중독도 많이 되죠. 저 역시도 배우 생활을 하면서 공허했던 것 같아요. 초반에 연극할 때 느꼈던 행복은 줄어들고, 연예계 내에서의 나의 위치를 계속 보게 되니까 속상한 일이 많아졌었죠. 늘 ‘내가 다음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했었어요. 그럴 때 조금 씩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죠. 처음에는 구호활동 아시아 지역의 극빈국에 가서 구호활동을 하고, 환경문제와 통일 문제 등 시야를 조금씩 넓혀갔어요. 나의 문제만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돌려 밖을 보게 되었을 때, 저의 문제를 조금 객관적으로, 제 3자처럼 볼 수 있게 되었죠. 인도로 구호활동을 하러 불가촉천민 마을에 갔었는데 그곳의 아이들을 보면서, 더 유명해지지 못해 아픈 내 마음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 문제였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북한의 기아문제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아이들이 굶어죽는다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같이 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같이 단식을 해봤어요. 4-5일을 굶어보니까 손끝부터 머리끝까지 아픔을 느꼈고, 이보다 더한 고통에서 사람이 아닌 상태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되었죠. 그 아이들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단순히 ‘북한’의 아이들이라는 이유였죠. 왜 그 아이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을 하는지.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하나하나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면서, ‘사회운동가’라는 타이틀이 생긴 것 같습니다. 

 

Q. 최근 드라마나 영화에서 남성들을 주인공을 세워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이 대다수입니다. 이를 보면서 한국에서 ‘여성 배우’로서 그 입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없어요. 입지가.(쓴웃음) 특히 40대 여성 배우의 입지는 거의 없다시피 해요. 우리나라의 영화는 아주 극심한 편식을 하는데, 오로지 남성만 필요한 것 같아요. 저번에 건달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이번에 검사하고, 저번에 형사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이번에 건달 역할을 하고. 이것을 보면서 남성 카르텔 이라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실제로 거기에 낄 수 있는 여성은 소수이고요. 그래서 여성 배우들이 요즘 눈을 많이 돌리는 것이 독립영화죠. 

그런데 감독과 배우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이유는 관객들이 그와 같은 영화들을 선택해서 본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영화들이 나오고 또 흥행하기 때문에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최근 헐리웃의 경우에는 경향이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여성 중심의 영화들이 많이 힘을 받고 있는 상황이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20-30대 여성 배우들의 경우에는 스크린에서 잘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독립영화이고,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는 그러한 흐름을 응원하고 있고요. 저 역시 독립영화를 찍고 있는데, 독립영화에서 여자배우가 주도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굉장히 고맙죠.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여성 감독 분들이 많이 생겨야 하고 배우 뿐 아니라 감독, 시나리오 작가, 스텝, 기획자 등 현장 전체에 여성 인력이 많이 유입되어야 해요. 그리고 우리사회가 최근에 겪은 많은 변화를 여성의 시각, 여성을 주인공으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 이화에서 벌어졌던 일들 역시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웃음) 

 

Q.여성이라면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특히,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임신과 출산은 마냥 기쁘고 행복한 일만은 아닌데요. 이는 여성의 사회진출의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새 많은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대신 자신의 커리어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연기자라는 사회생활과 아내, 어머니의 역할을 병행하시면서 힘드셨던 일은 없으셨나요?

제도보다는 자신이 선택해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제도들은 어떻게든 바뀌어 갈 거예요. 그렇다고해도 각 개인이 짊어져야 하고 선택해야 하는 것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 거예요. 획기적으로 변화 하려면 한 300년은 지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가 바뀌어야 해요. 물적으로 토대가 많이 마련되지 않는 이상,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제도적으로 육아 휴직을 보장하고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고 하더라도, 남성과 여성을 포함해 개인들의 생각이 변화하지 않으면 어려워요. 지금은 변해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후배에게 개인적으로 조언을 해준다면, ‘좋은 남자’를 만나야 합니다.여기서 좋은 남자란, 돈이 많고 잘생긴 의미에서의 좋은 남자가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함께 아이를 키워나갈 수 있는 남자를 의미합니다. 육아휴직을 쓰고 혼자라도 육아할 수 있는 남자를 말하는 거예요. 육아와 임신은 몇 백 년 동안 오롯이 여성들의 몫이었잖아요. 그래서 육아와 임신의 개념이 남성들에게는 두려움과 미지의 세계인 것이라 생각해요. 그냥 여자가 해야 할 일로 놓아두고 싶은 거죠. 

아이는 엄마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에 자기가 잘 아는 냄새, 아는 몸이기에 자연스럽게 엄마와 더 교감을 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엄마도 이 과정 속에서 모성애가 생기고요. 그 고리를 떼어 놓는 것은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불행한 일이에요. 제가 아이를 낳아보니까 젖 먹이를 떼어 놓고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겠더라고요. 아기가 너무나 절박하게 엄마를 찾거든요. 그럴 때 일 년 동안은 엄마가 아이를 돌보고, 그 다음 일 년은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아이를 돌보며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육아휴직이 무조건 의무화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처럼 동등하게 엄마와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함께 아이를 돌보는 것이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행복한 길이에요. 아[바른말 고운말을 사용합시다.] 적어도 아이를 일 년 정도는 키워 보아야 내 아이라는 것이 더 크게 느껴지고 더 큰 책임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무조건 육아휴직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앞서 말한 것 처럼, 서로 의견이 통할 수 있는 소통이 되고 설득이 되는 남자를 만나야 해요. 저는 다행히 그런 남자 만나서 잘 살고 있습니다. 틀렸으면 틀렸다 말할 수 있고, 논쟁을 하면 논쟁이 되는. 그리고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다’는 등의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생각도 많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지만 서로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남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후배들도 이런 남자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화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했기에 사회 생활하면서 더 예민해지고 힘든 부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로 인해 인생에 대한 확고한 기준을 가지게 될 수 있었고, 남편 과 같은 좋은 남자를 만나 지금의 가정을 꾸리게 될 수 있었죠.(웃음) 

 


Q.이 전 이화투데이 기사에서 선배님께서 대학생활에 많은 책을 보라고 조언해주신 것을 보았습니다. 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20대에  꼭 읽어야 하는 책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 중에서 한 권 정도는 진짜 고전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플라톤 같은. 이런 책을 진짜 완독하는 거예요. 들어는 봤으나 제대로 읽어본 적은 거의 없겠죠. 대학을 나온 사람이라면, 진짜 지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전을 제대로 읽게 되면, 정말 인생이 바뀌어요. 플라톤 같은 경우에는 2000년간 살아남은 책이잖아요. 이런 책은 또 없어요. 이 책을 읽게 되면 인류 최대의 지성을 알게 되는 거예요. 1년을 잡고 한 권이라도 읽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특히, 플라톤은 대화식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또, 공자 맹자, 성경도 제대로 읽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기독교가 얼마나 많은 과정을 겪었는지 알 수 있어요. 여러분의 삶을 살아가는데 훨씬 수월해질 것이고, 어딜 가도 ‘남들과는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Q.선배님께서 생각하시는 이화 DNA란 무엇인가요?

‘개인주의’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 것이 굉장히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긍정적 의미의 개인문화를 가지고 있는 대학은 이화여자대학교 외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개인주의 문화가 이번 이화의 시위에서도 긍정적으로 발현되었다고 생각해요. 수평적 구조에서 대화가 가능한 것이죠. 누구 한 명이 끌고 나가거나, 조직화 또는 체계화가 되어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지금처럼 SNS가 발달한 자유로운 사회에서 그 많은 체계와 조직화는 굉장히 불필요하죠. 이를 정확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이화가 이끌어낸 변화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의 고충을 제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저 역시 이화에서 느끼고 배웠던 개인의 자유와, 요즘 아이들 말로 하면, ‘개썅마이웨이’(웃음)라는 확고한 태도입니다. 앞으로 사회로 들어가는 순간 전체주의의 공기에서 숨이 막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자신만의 생각을 잊지 않고 나가는 힘이 필요해요. 우리 사회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아직 이화를 따라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화는 똑똑한 여성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한 발 앞서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삶을 살아갈수록 이화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게 될 거예요.

 

Q.이화에서 많은 후배들이 사회에 진출해 각자의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이화여대 졸업생으로서, 여성으로서 살아갈 후배들에게 한마디 조언 부탁드립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웃음) 앞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숨이 턱턱 막힐 거예요. 그러한 20대의 시기를 앞서 말한 것처럼 옆도 뒤도 보지 말고, 자신의 안을 계속 보세요. 내가 어떻게 해야 정말 행복한가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어요. 여러분의 인생이 행복해보이기 위한 삶을 살기 시작하면 진짜 행복을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는 모든 것이 단지 행복해 보이기 위한 제스쳐인지, 내가 진짜 행복해서 하는 것인지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남이 보기에 '적어도 이 정도 되어야 하지 않냐'는 생각에 매여 있으면 남들과 비슷한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삼성에 입사를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어요. 또 공무원이 된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물론 행복한 공무원이 되면 좋겠죠. 자신도 행복할 수 있고, 자신를 찾아오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거든요. 의사도 마찬가지고 무엇이든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안의 행복을 찾는 일입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책을 보는 것이고 연애도 하는 것이고, 실패도 해보는 것이죠.


*이화투데이 리포터 9기 정영주(역사교육과 16), 이화투데이 리포터 9기 김채영(독어독문학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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