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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변리사 윤선영 동문 인터뷰

  • 등록일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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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지식재산권, 특허, 권리 보호와 같은 용어들과 얼마나 익숙하신가요? 그리고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4차 산업혁명의 부흥과 함께 우리 사회의 중요한 트렌드(Trend)로 떠오른 용어 그리고 직업인 것은 알겠지만 아직은 조금 어색하고 어렵게 느껴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화투데이 리포터가 직접 대한변리사회 부회장 윤선영 동문님(화학과·90년졸)을 만나 그 궁금증을 풀어보았습니다. 특히 윤선영 동문은 지난 12월 8일(화) ‘올해의 특허엔지니어’상을 수상하시기도 했는데요.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이화인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윤선영 동문님과의 인터뷰,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 화학과 86학번 윤선영입니다. 현재 변리사로서 특허 업계에서 지식재산권 관련하여 일하고 있고, 대한변리사회 부회장이자 대통령 직속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자문위원이자 민간위원입니다. 저는 오랜 기간 법무법인이나 특허 법인에서 근무하다가 최근 신약개발과 관련한 회사로 옮겨 특허와 지식재산 자문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회사 업무를 하면서 공익적인 차원에서 일하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회사에서 긍정적으로 도와주셔서 최근에는 제 경험과 경력을 바탕으로 사회의 여러 기업이나 국가 정책을 위한 사회 공헌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Q. 변리사는 특허 출원과 관련한 일을 수행한다고 알고 있는데, 특허의 다양한 분야와 절차 중 동문님이 담당하고 계시는 업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사실은 아직까지도 변리사라는 직종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변호사와 헷갈리시는 부분도 있으실 것 같고요. (웃음) 변리사는 특허, 상표,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을 다루고 있고, 그중에서도 자신만의 특별한 전문분야가 따로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특허 중에서도 기술적인 면으로 보면 전기전자, 기계, 화학, 바이오 등의 분야로 나누어져 있고, 일반적으로 한 번 특정 분야로 일을 시작하면 계속해서 그 기술 분야로 특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화학과를 졸업했고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을 공부했어서 법무법인이나 특허 법인에서도 자연스럽게 화학 기반의 일들을 주로 맡았습니다. 예를 들어 3M, LG화학과 같은 회사의 특허사건들이죠. 제약의 경우에도 화학과 관련이 깊은 분야다 보니 노바티스, GSK와 같은 글로벌 제약회사와 일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이렇게 글로벌 수준의 특허 전략을 계속 경험하다 보니 지금은 분야를 넓혀 바이오 제약회사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제 전문분야라 한다면 화학, 화학공학, 바이오제약 분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졸업하고부터 올해로 30년, 짧지 않은 기간 지식재산권 분야에 몸담고 있다 보니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Q. 그렇다면 변리사의 전문 분야는 대부분 학부 또는 대학원 전공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요?

네, 대부분의 경우 학부 전공을 자신의 전문 분야로 삼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특정 학과를 전공했다고 해서 꼭 의무적으로 해당 분야를 고수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 경우에도 우연한 기회에 상표 사건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고, 선배들로부터 상표 쪽도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 고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분들은 변리사가 된 이후에 자신의 이전 전공과 다른 분야를 추가로 더 공부해서 관련 업무를 하기도 하세요. 이런 식으로 전문 분야 선택이 유연하게 이뤄지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자신의 전공 분야를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Q. 동문님께서 <제10회 국제지식재산보호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하신 것을 기사를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지식재산권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발표 중인 윤선영 동문


우리가 '재산'이라고 할 때 현금도 있고, 땅과 같은 부동산도 있고 다양한 종류의 재산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지식재산’이라는 것은 우리가 가진 무형의 재산입니다. #지식재산 중에서 우리가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을 꼽자면 음악 미술 등에 대한 저작권이 있고 기술의 공개를 대가로 해서 독점권을 주는 특허, '코카콜라'와 같은 상표, 그 밖에도 요즘 이슈가 되는 영업 비밀 등이 있습니다. 최근의 삼성과 애플의 지식재산권 분쟁의 핵심에는 '디자인'이 있기도 했죠. 이처럼 지식재산권이 망라하는 분야는 매우 넓습니다. 그중에는 특허·디자인·상표 등을 포함하는 산업재산권이 있고, 저작권, 최근에는 신지식재산이라고 해서 컴퓨터 프로그램, 데이터베이스 등의 기술도 지식재산권의 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1차에서부터 지금의 4차 산업혁명까지 겪은 기술의 변화는 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결국 특허를 포함하는 지식재산의 패러다임 또한 기술의 패러다임에 맞춰가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까지가 지식재산권이다'라고 특정 짓기 어려울 만큼 분야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식재산권 분야에서도 다양한 국내외 콘퍼런스를 통하여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발전시켜 나가고 있습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는 COVID-19에 대한 지식재산업계의 대응에 대해 발표를 했습니다. 


Q. 일반적으로 디자인은 예술의 영역으로 인식이 되고는 하는데 예술을 권리화한다는 것이 조금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디자인 특허는 어떤 과정을 통해 이뤄지나요?

사실 예술적 결과물에 대한 지식재산권들 간의 관계가 모호한 경우들이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문학·학술·예술의 분야에서는 저작권을 논하게 됩니다. 디자인은 미술저작물로 분류될 수 있고, 이에 대해 창작 시점부터 저작자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이 부여될 수 있습니다. 이를 디자인권으로서 특허청에 출원하게 되면 심사를 거쳐 등록을 받게 되고, 이에 대해서는 산업재산권의 하나로서 디자인권으로 보호를 받게 됩니다. 20년간 주어지죠. 두 권리는 지식재산권에 속하지만 성격과 보호범위 및 보호기간이 다르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또는 중첩하여 권리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호받는 것이 본인에게 보다 유리한가에 따라서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이 결정되고 또한 달라집니다.


Q. 최근 대학교 내에서도 많은 창업과 발명이 이뤄지고 있는데 학생들을 위해 특허와 관련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학생분들도 마찬가지고,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그것이 발명으로 현실화되었다면 이를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으로 등록해 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기술 개발을 했으면 이를 노하우로 가져갈 것인지 아니면 특허 출원하여 공개와 심사 절차를 거쳐 일정 기간 독점권을 가질 것인지 고민을 하셔야 해요.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는 기술을 노하우로 간직하기 어렵습니다. 아주 특별한 기술이면서 굉장한 비밀성이 유지되지 않는 이상 어쩌다 공개되어 버리면 사후적으로는 특허를 받지 못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변리사로서 항상 말씀드리는 것은 기술에 대한 논문, 보도 등의 공개 전에 반드시 특허 등의 지식재산권 확보 절차를 우선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권리를 확보하는 데에는 노하우와 공개할 기술의 분리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꼭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고 특허 출원을 받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좋은 기술일수록 질적으로 우수한 권리로서 설정되어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가벼운 발명으로 생각하여 비전문가에게 저렴하게 특허를 출원하게 되면 후에 아무 가치 없는 권리가 될 수 있습니다. 명확하게 기술을 특정하여 권리화하지 않으면 특허권의 보호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걸 알아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 발명의 경우 정부 지원이 있어서 비용 부담 없이 변리사와 상의할 수 있는 기회들이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서 발명을 한다면 변리사를 동아리로 초청하여 의논할 수도 있고,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라 개발의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IP-R&D 컨설팅도 가능합니다. 특허 데이터 분석을 통해 그 기술 분야의 동향과 방향을 파악하여 연구개발의 방향을 잡는 것이지요.


Q. 다양한 진로 속에서 어떤 계기로 변리사라는 직업을 선택하시게 되었는지 그 과정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괜찮을까요?

제가 졸업할 당시만 해도 처음으로 대기업에서 여성을 공채로 뽑기 시작한 때였고, 관련 연구소도 지금처럼 많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취업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는 않은 상태로 4학년 때부터 대학원 진학을 예정하고 생화학연구실에서 교수님 및 선배들과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학교에 오신 변리사분을 만나 뵐 수 있었어요. 특허 침해 분쟁이 아주 첨예한 경우 그에 대한 감정을 교수님들께 의뢰하곤 하는데, 당시에도 그런 문제로 오셨던 거였어요. 저는 그때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처음 들었었죠. 당시 물질특허가 국내에 도입되면서 특허업계가 폭발적으로 확장되던 시기였는데, 그 변리사님은 특허업무가 여성이 하기에 적합하면서 앞으로 전망도 좋은 분야로 적극 추천을 하셨습니다.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니 특허사무소에서 하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특허 조사, 분석, 명세서 작성, 번역 등의 일들이 흥미 있었고, 제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직업으로 선택하게 되었고, 우연히도 바로 다음 해 28회 변리사 시험에 우리 학교에서 수석 합격자가 나왔어요. 그러한 상황들이 저에게 매우 고무적이어서, 변리사가 되고, 지금까지도 관련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계기가 되었어요. 


Q. 변리사라는 직업 그리고 직업환경에 대해서 만족하시나요?

예. 다행히도 저는 지식재산권 관련 업무가 적성에 잘 맞고, 기술을 보호하여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사명감도 있어 변리사라는 이 직업을 선택한 점에 대해 후회해 본 적은 없습니다. 돌아보니 벌써 30년이 되었네요. 물론 스트레스도 많고 일의 양도 많지만 제게는 적성에 맞았고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소신껏 살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입니다. 살다 보면 불의와 타협을 하거나 소신을 굽히거나 할 일이 생길 수도 있고 선택의 상황도 있을 법한데, 변리사가 하는 일에는 그럴 일이 없다는 점입니다. 대신 평생 최신 기술과 관련 법률에 대해 공부를 게을리하면 도태된다 점은 부담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변리사라는 자격을 가지면 육아 등에 있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직장 생활을 할 수 있고, 또한 잠깐 쉰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성의 직업으로 추천드릴 수 있습니다. 일반 직장에서는 출산휴가가 있고, 여성인력을 위한 근무 환경도 매우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육아 등의 어려움으로 직장을 포기하거나 경력이 단절되기도 하는데 변리사라는 자격이 있으면 일 자체를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정하는데 유리할 것 같습니다.


Q. 변리사에게 필요한 자질 또는 변리사 업무에 잘 맞는 성향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변리사에게는 기본적으로 논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방식이 요구됩니다. 또한, 성실하고 꼼꼼해야 고객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실수를 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제가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공익적인 측면의 마인드가 있어야 좋은 변리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자유분방한 분들은 변리사라는 직업 또는 업무가 조금은 틀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변리사라는 직업의 특징은 그 틀 안에도 다양한 역할과 업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법무법인이나 특허법인 외에도 기업체 내에서 매년 많은 수의 변리사를 채용하고 있고, 대학 내의 산학협력기관 또는 연구소에서 활동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변리사라 할지라도 전자, 기계, 화학, 바이오, 상표, 디자인 등 어떤 계열에서 일하는가에 있어 각각의 특성과 성격이 다르고 업무에 있어 다양한 변화 또한 가능합니다.


Q. 동문님이 변리사로 일하시는 과정 속에서 경험하셨던 뿌듯하거나 보람찼던 일 또는 힘들고 어려웠던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형 법무법인이나 특허법인에서 일하면서 주로 글로벌 제약회사나 글로벌 기업 관련 업무를 많이 했는데 업무는 재미있었지만 국내 기업을 상대로 한 분쟁 사건들을 다루다 보면 조금은 회의적인 경우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번은 국내 중소기업을 맡아 특허 기술의 무효를 막고 다른 기업의 특허침해에 대해 권리를 행사하게 되었는데, 예상과 달리 모두 승소하여 매우 보람이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모차와 관련한 기술이었는데 외국 기업의 모방 사례가 늘어나서 의뢰를 주셨고 상대적으로 작은 회사다 보니 대표님이 직접 오셔서 기술을 설명하시기도 했어요. 당시에 대형 법무법인에서는 글로벌 기업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을 때라 중소기업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저는 그 기업에 마음이 가서 그 사건에 조금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진행을 했었습니다. 그 사건을 해결 후 제가 마침 유학을 가서 한동안 그 기업의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나중에 대표님의 연락을 받게 됐습니다. 그분이 특허 관련한 일을 처음 했던 거라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제가 그 사건을 담당하면서 특허청 및 특허심판원에 내려가서 면담도 하고 실물 모형을 가져가서 직접 사용 시연을 하기도 해준 그런 과정들이 너무 고마웠다고 하시면서, 그 사업을 통해 기업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참 보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그동안 특허 분쟁에서 글로벌 외국 기업을 대리하면 상대는 주로 국내 기업이니까 이겨도 제 직업에서의 보람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국내 기업을 대리하면서 중소기업의 권리를 보호했을 때 느꼈던 것이 남달랐고 지금 회사도 그런 맥락에서 몸담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지식재산권, 특히 특허 기술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을 어려움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Q. 동문님의 이화 재학 시절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학부에서 흥미롭게 들었던 수업, 참여했던 동아리 그리고 학회 등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제가 학부 때 가입했던 동아리는 '예율회'라고 클래식기타 동아리에요. 저를 이어서 제 딸아이도 이 동아리에 가입해서 연주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화학과 편집부 활동을 했고, 연합 동아리에도 많이 참여했었어요. 저는 86년도에 입학을 해서 대학생활에 대한 꿈을 가지고 밝게 시작을 했었지만 당시는 사회적으로 어려운 시기였고, 민주화 운동이 정점에 달했을 때라 밝고 명랑한 대학생활보다는 진지하면서도 투쟁적인 대학생활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사회 민주화 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 교수님들께서 걱정을 많이 하시기도 했고요. 당시 교수님들께서 방학 때면 전공에 집중할 수 있도록 대학원 연구실에 나와 공부를 하게 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전공 공부에 집중하게 하여 당시 어려운 사회 현실에서 학생들이 덜 상처받고 보호해 주시고자 했던 제자 사랑에서 비롯된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당시의 시대적 어려움이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시기였고, 많이 헤매고 방황했던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은 과거와는 또 다른 고민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상황과 과도한 경쟁이 안타깝고 마음도 아픕니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20대, 그 나이에는 모든 게 다 힘들고 불투명하고 고민스러운 것 같습니다. 그게 그 나이대의 특징이자 특권이죠. “헤매면서 실패하는 과정이 당연하다”고, “그래도 된다"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습니다.


Q. 선배 사회인으로서 사회 진출을 앞두고 많은 후배 이화인들 위한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이화 후배들에게는 조금 더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이대 안에 있을 때는 학교에 대한 애정과 애착이 얼마나 큰지 스스로 몰라요. 또한 이대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나와보면 알아요. 실감을 합니다. 남녀공학과 비교했을 때 이대 안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어마어마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이화에서 누린 특권을 잘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다른 학교 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실감했어요.

우리 이화인들은 상대적으로 모든 일에 “열정적”이고 “주체적”이고 “주도적”입니다. 이화의 품 안에서 맘껏 뛰놀다 보면 자연히 그러한 습성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화의 DNA라 할 수 있죠. 또한 여성학과 관련해서 굉장히 훌륭한 교수님, 선배, 그리고 강의들이 있다는 점을 십분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이화인들은 사회에 나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도전하고 시도하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학교 안에서는 다 비슷하고 다들 열심히 하다 보니까 내가 좀 부족한 게 아닌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막상 나와보면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이화 안에서 이화 DNA가 주입되어 많은 성장을 합니다. 너무 겸손한 필요 없으니까 꿈과 포부는 크게 가지고 도전하라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요즘 젊은이들은 뭔가를 한 방에 이루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꼭 대기업을 가야 하고, 번듯한 곳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그거보다는 하나하나씩, 조금씩 계단 오르듯 목표에 오르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요. 만약에 글로벌 제약회사, 예를 들어 화이자에서 일하고 싶다면 그 회사 입사를 준비한다고 몇 년을 허비하는 것보다 오히려 중소제약회사에 들어가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향후 글로벌 제약사에 스카우트되는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큰 회사에서는 오히려 정말 부속처럼 극히 일부분으로 일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 더 많이 배우고 그 경험을 쌓는 것이 보다 역량이 폭발해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Q. 동문님의 앞으로의 직업으로서의 목표 또는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직업을 가진 많은 여성이 그렇듯 저 역시 가정과 일을 병행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이 컸고, 굉장히 아등바등하며 살아왔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대학을 보낸 후에 바로 사회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가 진작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했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앞으로의 시간들은 제 분야에서 사회의 영향을 미치면서, 대단한 봉사는 아니더라도 자문 역할이라든지 제가 전문가로서 의견을 정확하고 올바르게 객관적으로 낼 수 있는 사회 공헌적인 일들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변리사회에서 활동하고 있고, 대통령 직속 기구인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자문위원으로의 활동 역시 전문가로서 관련 정책의 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개최된 공학한림원 주관 제7회 IP전략포럼에서 발표하는 윤선영 동문


Q. 동문님이 생각하는 이화 DNA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화 DNA의 핵심은 ‘자주&독립’이라고 생각합니다. 몰랐는데 저도 그렇더라고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화에서 보내는 4년이 우리를 그렇게 키워준 것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고맙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인터뷰를 마치는 소감 및 후배들을 위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졸업한 지 벌써 30년이 되었다니 믿기 어려워요. 제가 이화 100주년에 입학을 했는데 저희 딸이 130주년에 입학을 해서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언제 들어도 따뜻하고 애틋한 이름 '이화'입니다. 제가 아는 이화 출신들은 정말 정직하고 공정해요. 이화에서 키워진 큰 강점이자 자부심이죠. 하지만 지연, 학연 등에 연연하지 않는 성향 때문인지 사회에서 이화 선후배들 간의 유대가 약한 부분은 좀 아쉬워요. 선배들은 이화 후배님들을 항상 응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언제든지 연락하여 조언을 구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우리 이화의 유대감 강화를 위해 저도 앞으로 노력할 생각입니다.

존경하는 이화인들, 어느 분야에서든 이화의 DNA가 폭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지금까지 윤선영 동문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변리사의 직업 세계가 지식재산권의 발전과 함께 굉장히 많은 영역으로 넓혀지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는데요. 많은 후배 이화인들께서 변리사의 진로를 꿈꾸는데 동문님의 이야기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으셨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이화인이라는 것에 자신감을 갖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보라는 동문님의 말씀처럼 모두들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단 한 발짝 더 다가가는 오늘이 되기를 응원하겠습니다!


- 이화투데이 11기 전민경 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