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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뉴욕 패션계를 사로잡다, 유나양 동문

  • 등록일2020.11.26
  • 6877

성큼 겨울이 다가온 듯한 11월의 어느 날, 이화투데이는 본교를 찾은 반가운 동문 한 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바로 뉴욕에서 패션디자이너로 활동 중이신 유나양 동문(서양화과·01년 졸)을 만나 뵀는데요! 이탈리아에서 패션을 공부하고, 뉴욕 패션업계를 사로잡은 자랑스러운 이화 동문 유나양의 이야기,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화여대 서양화과 96학번으로, 현재는 유나양 YUNAYANG 브랜드 오너이자 크리에이티브 오너, 패션디자이너로 활동 중입니다. 원래 본명은 양정윤인데, ‘유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애칭으로 집에서 부르던 이름이에요. 식구들이나 친구들은 유나라고 불러서 제 브랜드를 론칭하게 돼서 뉴욕 패션위크 컬렉션 10년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Q. 서양화과에서 패션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양화과 졸업을 할 때쯤 미술을 전공하는 아티스트라는 직업이 굉장히 멋있기는 하지만 작업실에서 혼자 오랜 시간 고뇌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다른 일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대학 졸업 전까지 해외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이 아니면 외국에서 살아보고 많은 것을 경험할 기회가 없겠다 싶어서 6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가기로 결심했어요. 어릴 때부터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동경했고, 이탈리아의 오페라와 음식도 좋아해왔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오랜 고민 끝에 이탈리아로 떠났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에 사는 동양인 중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이었어요. 학교 앞에 매일 아침 가는 에스프레소 바가 있었는데 하루는 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저에게 다가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이탈리아에 오고 하도 많이 들은 질문이라 평소처럼 “언어를 배우고 다양한 걸 경험하고 싶어서 왔다.”라고 말씀드리니까 직업이 무엇인지 물어보셨죠. 순간 ‘아티스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자신도 옷을 만드는 아티스트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일하는 곳을 구경해 주고 싶다고 데려가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옷을 만드는 아티스트가 무엇인지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할머니가 발렌티노 공방에서 30년 넘게 일하시던 아티스트셨습니다. 난생처음으로 쿠튀르 컬렉션을 눈앞에서 봤는데 너무 멋있었고, 옷도 하나의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마랑고니 라는 패션 학교에 남들 3년 동안 공부하는 걸 압축해서 수업하는 1년 코스가 있어서 수강하게 되었고, 그때 만난 선생님이 용기를 많이 주셔서 패션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작업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뉴욕 컬렉션 데뷔쇼가 저에겐 가장 의미 있는 컬렉션입니다. 1920년대 의상을 재해석한 컬렉션이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고 반향을 일으켰어요. 낯선 뉴욕 땅에서 8개월 만에 데뷔한 쇼였는데 결과가 좋아서 잊지 못할 컬렉션이죠. 또, 가장 마음에 드는 컬렉션을 고르라면 가장 최근인 올해 봄 시즌에 진행한 컬렉션입니다. 제 컬렉션의 목표는 ‘지난번 컬렉션보다 조금 더 잘하기’이기 때문에 그걸 지킨 것 같아 마음에 듭니다. 


2020 봄 시즌 컬렉션


가장 기억에 남는 의상을 고르라면, 2016년에 메트갈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기금 마련을 위해서 하는 패션 전시회에서의 의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메트로폴리탄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패션계의 오스카, 슈퍼볼이라고 불리며 매년 주제를 바꿔가면서 패션 전시회를 하고 오프닝 하는 첫날에 유명 디자이너들을 초청합니다. 워낙 유명한 행사이기에 초청이 되기도 힘들고 그 행사에 입고 온 옷들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됩니다. 기존의 옷을 입는 게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전시회 컨셉에 맞는 의상을 새로 제작을 해서 입히기 때문에 명품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한 패션 전시회죠. 그때 운 좋게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어머니이자 유명 패션 시니어 모델인 메이 머스크의 의상을 디자인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메트 갈라'에 앞서 모델 메이 머스크의 옷을 피팅 해주고 있는 유나양


Q. '뉴욕'을 선배님 활동의 배경으로 삼으신 이유가 궁금해요! 

이탈리아에서 10개월 공부를 하고 운이 좋게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돼서 밀라노에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다른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싶기도 했고, 패션 공부를 1년밖에 안 했기 때문에 조금 더 공부하고 싶단 생각도 들어 런던의 패션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 대학교에서 다시 공부하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런던에서 4년 좀 넘게 있다가 공부가 끝나갈 무렵 '지금처럼 다른 사람의 회사에 디자이너로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내 브랜드를 만들어 일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오래전부터 30살이 되면 제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꿈이 있었기에 과감하게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지요. 서울, 런던, 파리, 밀라노, 뉴욕 등을 선택지에 두고 고민하다가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32가부터 40가까지, 웨스트 10 에비뉴부터 7에비뉴까지 가먼트 디스트릭트라고 불리는 패션 디스트릭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섬유 에이전트, 패션 회사, 공장이 다 모여 있어서 ‘여기서라면 크게 날 도와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컬렉션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또 ‘여기서 치열하게 경쟁해서 잘 이겨내면 어디를 가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뉴욕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뉴요커를 사로잡다' 유나양 기사 바로 가기)



Q. 해외에서 아시아인 여성 디자이너로서 힘드신 점은 무엇인가요? 

최근엔 예전보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 제한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긴 해도, 아직 동양 여자가 혼자서 자기 브랜드를 하는 경우가 뉴욕에서는 흔하지 않아요. 동양 사람이라고 해도 대부분 남자 디자이너입니다. 그래서 처음 제가 브랜드를 론칭했을 때 많은 주목을 받았어요. 게다가 저는 1세대 이민자니까 외부의 선입견이 가장 힘들었던 거 같아요. 대부분 어렸을 때 <마담 버터플라이>, <미스 사이공>과 같은 책을 통해 동양 여성은 순정적이다, 리더이기보다는 보조자의 역할을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부분을 깨기 위해서 노력도 많이 했고,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극복하려고 노력을 많이 기울였습니다.


Q. 디자이너가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인가요? 

‘인내심, 자신감, 항상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자세, 다른 사람의 창조물에 대한 존중’이 중요합니다. 남의 것을 존중할 줄 알아야 자신의 것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Q. 디자이너로서 가장 뿌듯하시거나 보람을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패션디자인 분야는 영화에도 많이 나왔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고 노동집약적인 직업이에요. 밀라노의 첫 번째 직장 상사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온 미란다 스타일이었어요. 굉장히 엄하고 일을 호되게 시키셔서 매일 혼나는 게 일이었어요. 어느 날 바지를 스케치해 오라고 했는데 지퍼를 10~15개를 달아갔더니 엄청 화를 내셨어요. 디자인은 좋은데 지퍼가 너무 많아서 제작하는데 단가가 올라간다는 게 혼난 이유였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패션 쇼피스(show peace)라면 괜찮겠지만, 패션디자이너가 옷 한 벌을 판매하면 디자이너, 바이어, 봉제사, 판매원 등 스무 명이 넘는 사람에게 그 돈이 돌아가게 된다면서,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지탱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 말이 마음 한구석에 항상 남아 있습니다. 

나의 이 재능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뿌듯한 거 같아요. 누군가 제가 제작한 의상을 입고 더 좋은 커리어를 쌓아서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이슈나 문제점을 저만의 컬렉션으로 풀어내고, 그걸 보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변화에 이바지할 수 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Q. 코로나19 이후에 패션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오프라인 매장 판매도 있지만, 온라인으로 많이 대체되어 온라인 판매가 주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패션쇼를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더 많이 준비하는 거 같습니다. 세계적인 팬데믹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서 비대면, AI의 활성화와 같은 많은 변화가 일어날 거 같고, 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한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패션계 역시 변화하는 사회에 어떻게 대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거 같습니다. 앞으로 코로나19가 얼마나 더 길게 갈지, 짧게 갈지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분명히 어떻게든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선배님께 ‘이화’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이화여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해서 고등학교 때부터 이화 캠퍼스를 지나다녔었어요. 그만큼 이화가 제 인생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대에서 했던 교양수업들도 공부할 때는 힘들었지만, 지나고 돌이켜보니 굉장히 도움이 되었던 것들이 많았어요. 세계적으로 큰 여성 사립대학교인 이화여대에 대한 자부심을 지니고, 컬렉션을 하면서 여성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슈로 삼는 것도 다 이화 안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대에서 서양화과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게 개인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디자인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고민해서 호흡이 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배운 교육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작은 목표보다는 큰 목표를 가지고 도전을 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은 할 수 없을 거라고 한 제가 이루고 싶은 꿈들을 다 해낼 수 있는 게 이화에서 교육을 받은 힘 덕이라고 생각해요. 이화에서 ‘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도 뭐든 할 수 있어!’라는 이런 정신을 배울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Q. 선배님이 생각하시는 이화 DNA란 무엇인가요? 

'페미니스트'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정의가 한국에선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은 굉장히 좋은 건데, 의미가 잘못 전달이 되면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이화 역시 그런 부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여성이라고 해서 능력을 발휘하거나 꿈을 가지고 도전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없는 것이 이화 DNA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DNA가 있기 때문에 이화인들의 마음에는 여성뿐만 아니라 인종, 종교 등의 불평등한 것들에 대해서 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어떤 일이든 도전하면 잘 해낼 수 있고, 그러한 기회를 열어주는 그런 마음이 이화의 DNA가 아닐까 싶습니다.


Q. 선배님과 같은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한 말씀 부탁드려요.

패션디자이너는 어렵지만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창의적이면서도 마케팅도 잘해야 하고, 비즈니스도 잘 이해해야 하고, 아티스트 관리도 해야 하는, 매우 많은 것이 섞여 있는 직업이죠. 한마디로 패션은 아트와 비즈니스의 조합입니다. 패션계가 그만큼 치열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조금 하다가 포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에 안 힘든 일은 없는 거 같아요. 본인이 이 일을 얼마나 원하느냐, 이 일을 했을 때 얼마나 행복한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 좋겠어요. 행복한 일을 하다 보면 기대했던 목표보다 조금 덜 도달하더라도 인생이 힘들지는 않기 때문이에요. 

또, 인내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좀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실수하거나 잘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을 너무 작게 만들지 마세요. 처음에는 당연히 실수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렇게 자기를 다독거려주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패션디자이너는 조금 주관적인 평가도 필요한 분야라며 누군가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항상 너보다 잘하는 사람도 있고, 항상 너보다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까 그런 것에 개의치 마라. 어떤 디자이너가 있어도 네가 한 디자인은 세상에 하나니까.”라고 말이에요. 이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어서 일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생각하는데, 여러분에게도 말해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라는 말씀을 전해주는 유나양 동문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요! 이화인 여러분 모두가 행복한 일을 하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도전하시기를, 그리고 뉴욕 패션계를 이끌어가는 대표 패션디자이너로 자리매김할 유나양 동문의 빛나는 미래를 이투리가 응원합니다!


- 이화투데이 12기 정경은 리포터